김남희 강사(윤리교육과)
김남희 강사(윤리교육과)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 몇 세기의 가장 훌륭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는 주인공 조셉이 딸 머피에게 웜홀(wormhole)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영특했던 딸 머피가 모스부호로 전달되는 ‘STAY’라는 메시지를 해독해 과거의 자신에게 전해주기를, 그래서 과거의 자신이 우주로 떠나지 않고 지구에 머물며 딸과 영영 이별하지 않기를 원했다. 따라서 절박한 심정으로 우주의 시간과 공간의 벽에 난 구멍을 찾아 그 웜홀을 통해 과거에 있는 딸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웜홀로 연출된 공간이 바로 많은 책이 꽂힌 책장이라는 점이다. 책에는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에 머물렀던 누군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특히 고전을 읽는 것은 현재의 내가 과거의 현명한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가성비 좋은 시간 여행과도 같다. 

대학이라는 배움의 공간 안에 머물고 있는 우리가 ‘배움’(學)에 관련한 메시지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웜홀이 바로 『논어』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의 기쁨과 즐거움을 진정으로 누렸던 대표적인 사상가 공자가 현재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공자는 “생이지지한 사람이 인간으로서 가장 으뜸이고, 학이지지한 사람이 그 다음이며, 곤이학지한 사람이 또 그 다음이지만, 곤이불학한 사람은 가장 인간답지 못하다”(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라고 했다. 얼핏 보면 인간의 수준을 네 단계로 나눠 타고난 천재와 우둔한 느림보의 등급과 위계를 구분 짓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공자가 보낸 메시지를 우리가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공자가 가장 으뜸이라고 했던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란 태어나면서부터 알게 된 사람들, 쉽게 말해 다방면에서 고도의 지능을 타고난 이들이다. 이들은 공부에 매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보편 진리를 깨닫고 이를 몸소 실천한 인류의 스승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 문명의 비전을 제시했던 선각자라는 측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솔직히 이런 사람들은 경전 속에서나 등장할 뿐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다음으로 제시된 유형이 바로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인데 이들은 공부를 통해 진정한 앎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배움의 과정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과 식견이 뛰어나며 인격적으로도 아주 성숙한 경지에 도달한 이들이다. 그러나 많이 배웠다고 해서, 아는 것이 많다고 해서 학이지지자라고 칭할 수는 없다. 모범적 인격은 갖추지 못한 채, 도덕적인 행동과는 괴리된 채, 지식만 쌓아가는 것은 진정한 앎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이지지자 역시 이상적인 방향으로 제시된 것이지 인간의 등급을 구분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공자가 그 다음으로 제시한 곤이학지(困而學之)란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배워나가는 것을 말한다. 뛰어난 머리나 좋은 환경을 타고나지는 않았기에 뭐 하나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참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또한 실패와 시련을 본인이 직접 겪고서야 비로소 삶의 지혜들을 하나씩 깨닫고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며 배움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이들이 생이지지자, 학이지지자보다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곤이학지라도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 그 도달점에 있어서는 생이지지, 학이지지와 다를 것이 없다. 목표를 갖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둔한 말이라도 결승점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고, 설령 절름발이 자라일지라도 천 리를 갈 수 있다. 

하지만 곤경에 처해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 실패를 맛보면 그동안의 배움을 놔버리는 사람, 많이 배우기는 했으나 어려운 상황을 핑계로 배운 것을 실천으로 옮기지 않은 사람, 즉 곤이불학(困而不學)한 사람도 있다. 아니 실은 많다. 배움의 공간 안에 머물고 있는 우리 대부분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이런 곤이불학자들을 가장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곤이학지로 나아갈 것을 요구한다. 배움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걸어 나가라는 것.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올바른 삶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학문 수양 과정에 선 우리가 공자에게서 얻을 수 있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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