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은 취재부장
박세은 취재부장

춥고, 캠퍼스 곳곳에 큰 종이 상자가 드문드문 놓여있고, 가끔가다 ‘총학생회 선거 투표하세요!’라는 문구가 크게 박혀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수업에서 만나게 되는 계절이다. 지난주는 제64대 총학생회(총학) 선거 본투표 기간이었다. 경선으로 이뤄졌던 지난 제63대 총학 선거와 달리 이번 선거에는 하나의 선거운동본부(선본)가 단독 출마했다. 그러나 본투표는 잠정 투표율 24.4%를 기록하며 개표 기준인 50%를 넘기지 못했고,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는 연장 투표 없이 선거 무산을 결정했다.

저조한 투표율은 비단 이번 선거만의 일이 아니다. 제63대 총학 선거도 한 차례의 연장 투표를 진행했으며, 제62대 총학은 6번에 걸친 재선거 끝에야 당선될 수 있었다. 단과대학생회 선거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총 12개의 단과대에서 학생회 선거가 진행됐으나 투표율 미달로 다수의 단과대가 연장 투표를 결정했다. 투표율이 계속해서 저조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학생회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일 선본 출마가 많은 요즘의 선거를 선거시행세칙이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현재 총학 선거에서는 가투표율이 과반일 때만 개표할 수 있으며, 개표 결과 최다 득표한 선본이 당선된다. 그러나 1개의 선본만이 등록한 경우에는 찬성에 기표한 표가 과반일 때만 당선이 결정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단일 선본이 출마한 총학 선거가 최종 투표율 50%로 성사된 상황을 가정해 보자. 그 50% 중 40%는 찬성에 기표한 표이고 나머지 10%는 반대에 기표한 표일 때, 찬성에 기표한 표가 과반에 해당하므로 선거시행세칙에 따라 해당 선본은 당선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10%에 달하는 반대표의 의미는 완전히 소실된다. 10%의 반대표가 그들 자신이 투표하지 않았더라면 무산됐을 선거를 성사시키며 역으로 선본의 당선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반대표가 찬성표로 작동하게 되는 모순이다. 

한편 현재의 선거시행세칙은 단일 선본이 출마한 경우 선관위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선거시행세칙은 총학 선거가 가능한 한 많은 학생이 선거 기간 전반에 걸쳐 참여함으로써 다음 총학을 건설하는 축제의 장으로 기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선거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기구인 선관위는 해당 원칙에 따라 최대한 많은 학생의 투표를 독려하고 선거가 성사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그러나 투표 행위가 단일 선본에 대한 지지로 치환돼 버린 지금,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선관위는 갈 곳을 잃는다.

최근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단일 출마한 선본을 지지하지 않는 일부 구성원들이 투표하는 행위 자체를 비난하며 ‘투표하지 말자’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구성원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권리 중 하나인 투표권이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진정 행사할 수 있는 것’이 돼 버린 현재 상황은 분명 개선돼야 한다. 투표가 잃어버린 제 의미를 되찾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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