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 연구자로서의 대학원생

대학원생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학원에 다니며 연구와 실험을 진행하고 논문을 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질지도 모른다. 혹은 대학원 밈(meme)에 등장하는 대학원생이라는 인물과 서사가 연상되기도 한다. 대학원생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기자는 대학원 연구 환경에 대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대학원생들과 면담을 진행하면서 대학원생의 주요 활동인 연구가 어떤 조건에서 이뤄지고 있는지, 그리고 연구자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게 되는 고충은 없는지를 들어봤다.

 

지식 소비자에서 지식 생산자로

대학원은 학부를 마친 이들이 교육과 연구에 종사하는 최상층의 교육 기관이라고 정의된다. 그 때문에 대학원생은 단순히 교육을 받는 지식 소비자를 넘어 스스로 연구를 수행하는 지식 생산자라는 사실이 대학교와 대학원을,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구분하는 척도가 된다. 

지식 생산자로서 대학원생은 한 명의 연구자다. 대학원생이 수행하는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는데, 학위 수여를 위해 논문을 작성하며 진행되는 연구와 정부 및 기업 등의 연구 개발(R&D)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연구 프로젝트가 있다. 이 중 R&D 지원을 통한 연구 프로젝트의 경우 이공계 대학원의 연구가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일부 사회과학계 대학원에서도 이뤄진다. 한편 전체 R&D 예산에서 1.5% 내외만을 차지하는 순수 인문사회계에서는 대부분의 연구가 학위 논문 작성이나 학술지 기고를 위해 진행된다.

연구자로서 대학원생에게 예상하지 못한 난관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이 ‘대학원은 대학생이 잘못해서 가는 곳’ 등의 대학원 밈이다. 그들의 ‘웃픈’ 표현들 속에 숨겨진 다소 씁쓸한 일면은 무엇일까?

 

대학원생의 교육과 연구 권리

◇자신의 연구에서 소외된 대학원생=연구자로서 대학원생이 마주할지도 모르는 첫 번째 어려움은 교육과 연구의 권리에 관한 것이다. 물론 대학원의 교육과 연구의 권리를 둘러싼 문제는 계열별로, 또 연구실별로도 다르게 나타난다. 우선 인문사회계 대학원의 경우 대학원생 혼자서 연구를 주도해 나가다가 필요에 따라 지도교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서울대는 대학원 교과과정에 ‘대학원논문연구’ 과목을 개설해 대학원생이 자신의 논문작업을 집중적으로 준비하고 지도교수로부터 심층적인 세부 전공을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대학원논문연구 과목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일례로 올해 1월 대학원총학생회(원총)가 서울대 대학원생 32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학원논문연구 수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원논문연구 과목을 통한 논문 지도가 수업의 형태로 진행된 경우는 단 7%에 불과했으며, 미진행된 경우도 42%에 달했다. 대학원생 A씨(사회대 석사과정)는 “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교수님의 지도가 매우 중요한데, 현재로서는 논문 지도가 체계화돼 있지 않다”라며 “대학원논문연구도 이렇다 할 형식이 없어 교수님의 상황과 성격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한국에서 박사하기』의 저자로 한국 전반의 대학원에 관한 비판적 논의를 이어 온 이우창 교수(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는 “논문지도는 단순히 논문 하나만을 위한 피드백에서 나아가, 대학생의 연구 전반에 대한 지도로 이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면서도 “현행 대학원논문연구 과목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에 미흡한 측면이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이 교수는 “대학원논문연구 과목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교수의 지도에 대한 대학 차원의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시간 등 교수의 품이 많이 드는 지도의 특성상 유인이 없는 상황에서는 대학원생 연구에 대한 양질의 지도가 이뤄지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또한 원총 이도연 회장(보건대학원 박사수료)은 “학생들이 연구 과정에서 체계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대학원 커리큘럼에 대한 세밀한 권고 및 가이드라인이 공유될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자유로운 연구를 위해서는=한편 대개 랩(연구실) 체제로 운영되는 이공계 대학원은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고 임금이 지급된다. 이에 따라 이공계 대학원의 연구는 랩 내에서 따로 조직된 팀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때 팀에는 대학원생, 연구책임자인 교수, 보조책임자인 조교수, 박사 후 연구원(포닥) 등이 포함된다. 다양한 지위의 연구자가 팀을 이루는 것은 연구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함이지만, 때때로 서로 다른 지위는 수직적인 위계로 변모해 심할 경우 대학원생의 자율적인 연구에 제약을 가하기도 한다. 대학원생 B씨(자연대 석박사통합과정)는 “포닥과 몇몇 학위과정생만이 연구를 리드하고, 남은 대학원생 연구자들은 포닥의 명령에 맞춰 단순 업무를 반복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라고 짚었다. 대학원생 C씨(자연대 박사수료)는 “한 번은 내가 잡은 세부 연구주제를 같은 연구실 선배의 지시로 바꾸게 된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저 선배가 그 주제를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 변경 이유였다”라고 토로했다. 

‘2023 대학원생 인권지표 개발 및 실태조사’에서도 이런 문제 제기가 있었다. 교육 및 연구의 권리 개선 방안을 묻는 주관식 응답 항목에서, 조사에 참여한 대학원생들은 대학원 연구 환경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을 요청했다. 이는 본부 주도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전반적인 연구 환경 및 제도를 개선하고, 대학원생의 연구 상황 및 처우를 제고할 방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대학원생의 연구와 연구비

◇의미 있는 연구를 위한 필요조건=작년 제28대 총장 선거를 맞아 원총이 진행한 ‘제28대 서울대 총장 선거 관련 대학원생 설문조사’ 중 연구·교육 과정의 내실화를 위해 필요한 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복수 응답은 △경제적 지원 확대 82.4% △연구 프로젝트 및 조교 참여 기회 확대 43.2% △학술 네트워크 운영 지원 37.9% △취업 및 진로 개발 프로그램 지원 32% △학술 저널 접근 권한 및 도서 확충 24.7%로 집계됐다. 이처럼 대학원생의 연구는 연구비라는 경제적 문제와 밀접하다. 기자가 만나 본 대학원생의 경우, 이들은 순수학문 분야에 대한 연구비 지원이 부족하다는 문제와 연구비 운용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연구=연구비 부족 문제는 특히 순수 학문을 연구하는 일부 인문사회계·자연계 대학원에서 발생할 확률이 높다. 원총 운영위원 박송이 씨(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는 “사회복지학과 특성상 정책과 제도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나 국가 정책 과제로 연구비를 지원받는 경우가 있다“라면서도 “그러나 사회복지학 중에서도 순수 학문에 가까운 주제를 연구하고자 하면 연구비 지원이 전무한 수준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주위의 많은 대학원생 지인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 대신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주제로 바꿔 연구를 진행한다”라며 “이 때문에 소위 돈 되는 분야의 연구만 이뤄진다”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자연계 대학원 또한 연구비 부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생명과학부 대학원자치회 김예린 자치회장(생명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은 “순수 자연과학 연구를 진행하는 랩은 연구 결과가 신속히 나오지 않기에 정부 프로젝트나 기업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내기 어렵다”라며 “기초과학에 관한 연구를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순수 자연과학 분야에도 충분하고 장기적인 연구비 지원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연구비 운용의 체계성?=한편 연구비의 운용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대학원생 D씨(자연대 석박사통합과정)는 “연구마다 연구비가 변동성이 심한데, 연구비 체계가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연구비가 넉넉하다가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시기에는 자기 돈으로 연구비를 충당해야 할 때도 있다”라고 밝혔다. 대학원생 E씨(자연대 박사수료)도 “연구비가 연 단위로 지원되는데 연구를 종료하고도 연구비가 남으면 연말에는 ‘벽돌갈기’라는 방식으로 연구비를 낭비하는 문제도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연구를 이어가기 위한 인건비

◇대학원생의 임금 수준, 적당한가=지난 5월 인권센터가 발표한 ‘대학원생 인권지표 개발 및 실태조사’ 중 ‘수행한 업무의 노동 강도와 업무량을 감안할 때, 그 대가로 받는 임금 수준이 얼마나 적정하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응답은 △매우 적은 편 24.6% △다소 적은 편 36.2%로, 임금 수준이 적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60.8%를 차지했다. 이도연 회장은 “대학원생이 수행하는 연구 활동에 비해 지급되는 인건비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생활비나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교나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정작 자기 연구를 할 시간이 부족해져 연구의 질이 하락할 수 있다는 문제까지 발생한다”라고 전했다. 

◇인건비가 생성되는 과정의 잡음=일각에서는 인건비 책정 과정을 보다 세밀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원생의 인건비 지급은 법적 제도를 통해 보장되는데, 한국의 경우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의 행정명령인 ‘국가연구개발사업 연구개발비 사용 기준’에서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정하고 있다. 지난 3월 정부는 2008년 이뤄진 인상 이후로 15년째 동결된 대학원생 인건비에 물가상승률이 반영돼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학생연구자의 인건비를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인건비를 책정할 때 표준선으로 사용되는 계상기준이 석사의 경우 기존 180만 원에서 220만 원으로, 박사의 경우 25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실제 임금 상승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들의 최종적인 인건비는 계상기준 외에도 학생연구자의 연구 참여 비율을 측정하는 ‘계상율’에 따라 변동되기 때문이다. 가령 계상기준이 300만 원인 박사과정 대학원생의 계상율이 50%라면 실제 그가 지급받는 금액은 그 둘을 곱한 150만 원이다. 그런데 계상율의 경우 정해진 기준이 없어 연구책임자인 교수의 결정을 따른다. 대학원생 F씨(자연대 석사과정)는 “거의 모든 연구 과정에 성실히 참여했더라도 계상율이 잘못 책정되면 적은 인건비를 받게 된다”라며 계상율의 임의적 적용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그는 “계상기준으로 인건비의 상한선은 정해지지만, 현행법은 최저 임금에 해당하는 하한선을 설정하고 있지는 않다”라며 “인건비의 하한선을 규정하고 인건비를 책정하는 과정에 대한 관리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라고 제언했다.

 

연구자로서 대학원생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교육과 연구의 권리에서부터 일상생활을 영위할 권리에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한다. 연구자로서 서울대 대학원생들이 경험하는 어려움을 인식하는 것은, 단지 씁쓸히 웃고 넘기는 대학원 밈 너머의 대학원과 대학원생을 바라볼 단초가 된다. 이제는 대학원생의 연구 환경에 대한 깊은 논의와 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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