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파워플랜트 공연 〈〈무조巫祖〉: 순환으로부터〉

지난 11일(토) 오후 7시 30분 파워플랜트(68동)에서 전통 무악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공연 〈〈무조巫祖〉: 순환으로부터〉가 열렸다. 이번 공연은 주관 측인 모아모아 프로덕션이 문화예술원의 파워플랜트를 대관하며 진행됐으며, 방지원 연출가가 공연을 총연출했다. 문화예술원 박수민 큐레이터는 이 공연이 “전통 음악과 현대 예술 사이 세계를 확장하는 데 의의가 있다”라며 “공연과 공간의 시너지를 기대해 대관했다”라고 전했다.

 

▲연주자의 뒤로 직선형의 후광이 비치고 무조의 빨간색 하체가 공중에 떠 있다.
▲연주자의 뒤로 직선형의 후광이 비치고 무조의 빨간색 하체가 공중에 떠 있다.

◇무조의 ‘발자국’을 찾아서=무조(巫祖)는 처용랑, 바리공주처럼 무당의 조상이나 시조로 여겨지는 신을 일컫는다. 무악은 무조를 불러오는 굿에서 무당과 악사가 부르고 연주하는 음악이다. 〈〈무조巫祖〉: 순환으로부터〉는 무조를 불러오는 무악의 과정을 순환성에 초점을 두고 예술적으로 풀어냈다.

공연은 무조를 불러들이는 과정을 표현하면서 점차 깊어진다. 공연 시작 전 흘러나오는 곡 ‘홑고사’의 창과 몽환적인 음악은 관객과 공연자가 무조를 맞이하기 전 신비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속적인 무대 장치가 그의 존재를 본격적으로 암시하기 시작한다. 무조가 사바세계로 오며 망자천*을 건너기 위해 탄다는 ‘초백이’라는 배는 흰색 돛단배로 구현돼 공중에 매달린다. 오색 깃발과 조명은 “무조가 빛깔로 나타나셨다”라는 대사를 따라 무조의 존재를 은은히 암시한다. 나아가 무악을 연주하는 연주자가 등장해 관객과 교류하면서 무조의 존재는 그 영역을 확장하기에 이른다. 실체는 보이지 않고 그저 발자국으로 표상되는 무조의 흔적을 발견하고자 하는 연주자는 즉석에서 깃발 뽑기를 진행한다. 관객이 파란색 깃발을 뽑자, 그는 “맑게 갠 기운이라 누구와도 만사가 잘 통할 것”이라며 공연에 재치를 더한다.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공연자들이 대사와 음악으로 직접 무조를 불러낸다. 이들은 공양물을 던지며 신나게 춤을 추고 “온다, 온다, 온다, 온다”라고 말하며 무조가 오고 있음을 알린다. 최후의 음악 ‘옴다비’에 이르러서는 무조의 발을 형상화한 공중의 판에 강한 조명이 비치며 비로소 무조가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관객이 볼 수 있는 것은 무조의 하체 그림자뿐, 외형 전체는 오직 상상의 영역이다. 이내 연주자의 뒤로 직선형의 후광이 비치면서 공연장 밖 현실과 괴리된 이 영적인 세계는 공연장 안을 삼켜버릴 듯 무대를 압도한다. 관객은 경건과 경외, 인간의 나약함과 무속성까지 느낀다.

*망자천: 저승에 당도하지 못하고 여러 사연을 가진 영혼들이 울부짖는 강.

 

◇무악(巫樂)에 새로운 시도를 첨가하다=무악의 전통성은 작품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관객과 직접 소통하며 즐기는 무악의 정신은 단차가 없는 무대에 반영됐다. 연주자들은 실제 무속 의례에서 사용하는 법고와 당종을 연주하며 무속적 분위기를 심화했다. 무조를 불러내고 보내는 서사 구조는 전통적인 무악의 구성을 계승했다.

한편, 전통을 넘어서는 창의적인 시도도 포착된다. 연주자들은 물레를 돌리듯 연주하는 신식 악기인 회쟁을 연주했다. 또한 전통 굿과 달리 무당의 존재를 조명과 효과 속으로 숨겨 신비함을 더했다. 공연 장소였던 파워플랜트는 콘크리트 기반의 차갑고 현대적인 느낌을 줘 전통과 현대의 오묘한 조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남창동 씨(국악과·20)는 “파워플랜트가 이 공연에서 표현한 무속 세계의 분위기와 정말 잘 어울렸다”라며 “전통 음악 본연의 느낌이 잘 전달됐다”라고 밝혔다.

 

◇되돌아오는 과거와 시간의 순환성=작품이 표현하고자 하는 ‘무조’는 무엇일까. 공연 중간에 방지원 연주자는 “우리는 흘러가는 과거가 돌아오지 않는 직선적 시간에 사는 것 같지만, 그 속에서도 순환을 경험한다”라고 전한다. 순환은 똑같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계절이 돌아오듯이, 반복 속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다. 과거는 현재로 돌아오지만 전혀 다른 형태로 돌아오며 뭉클한 감정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성스러운 시간을 무조라는 대상을 빌려와 재현하고자 한다”라며 무조가 가지는 의미를 설명했다.

작품은 무조를 표현하기 위해 무악의 무속성을 전면에 드러내기보다는 순환적 시간관에 따라 과거를 다시 불러오는 것에 집중한다. 이는 무속인보다 무조가 가지는 예술가로서의 성질을 더 부각해 그가 잇는 삶과 죽음에 대해 다뤄보겠다는 공연의 분명한 선언이다. 삶과 죽음의 연결은 무조가 망자천을 건너 현실에 당도하면서 표현된다. 원 대형을 이루며 춤을 추는 연주자와 계절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나무 영상은 순환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이처럼 공연은 무악을 구성하는 종교적 요소를 알고 있어야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작품은 무속성에 대한 적극적 믿음을 배제하고 관객에게 다가간다.

 

과연 과거는 지나간 것이며 미래는 한참 이후에 있는 것인가? 이 공연은 우리가 경험한 과거가 또 다른 미래로 계속해서 돌아온다고 답한다. 계절이 순환하면서 우리의 과거가 짙게 묻어 있는 가을과 여름이 되돌아오듯이, 기억은 그것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지속적으로 현재화된다. 이 공연의 무조, 전통 음악이 가져다주는 춤, 창과 다채로운 이미지의 향연은 이런 과거의 숭고하고 뭉클한 감각을 전달한다.

 

사진: 이수진 수습기자

polarbear2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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