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정신질환 치료 시스템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지난 1월 강원 태백에서 119 구급대가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다가 4시간 40분 만에 환자를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이송한 사례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지난 2월 울산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가 3시간 만에 경주까지 가서야 진료 가능한 병원을 찾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급성 정신질환자가 입원할 병상을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정신질환자가 겪는 어려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사회로 나선 이후에도 이들을 치료하고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들을 치료하는 과정 전반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정신질환자의 치료권 보장을 위해 정신 의료 체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아봤다.

 

갈 곳 잃은 정신질환자

급성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병상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정신과 병동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개방 병동과 폐쇄병동(보호병동) 2가지로 구분된다. 주로 증상이 심한 급성 정신질환자가 입원하는 곳은 보호병동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정신질환자 지속치료 지원 시범사업 평가 연구」에 의하면 상급종합병원의 정신과 보호병동은 2011년 1,021병상에서 2018년 말 기준 857병상으로 약 18% 감소했다. 이에 대해 한국정신사회재활협회 유제춘 이사장은 “급성 정신질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상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렇게 급성 정신질환자를 위한 병상이 줄어드는 원인 중 하나는 현재 정신병원의 수가 체계가 급성 환자와 만성 환자의 특성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울장애 △불면증 △불안장애 △조현병과 같은 병의 증상이 갑작스럽게 심해지는 시기를 급성기라고 한다. 급성 증상이 호전돼 꾸준한 관리를 요하는 만성 정신질환자와 달리, 이런 급성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격리 보호 및 응급입원을 위한 병상 마련 등 더욱 많은 의료서비스와 재원이 투입돼야 한다. 현재 정신 의료 수가 체계는 질환의 중증도를 제외한 채 의료급여만을 기준으로 책정되고 있다. 빈곤층 의료 지원을 위해 도입된 의료급여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에게 진료비를 지원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의료급여 입원환자에게는 일정 금액으로 정해진 진료비만을 받는 정액수가제를, 기타 환자에게는 치료에 따라 차등적인 진료비를 받는 행위별수가제를 적용하고 있다. 이때 현행 수가 체계에서는 급성기 병상에 별도의 수가를 책정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의료서비스가 투입되는 급성기 병상에 대해서는 병원이 정당한 대가를 받기 어려워진다. 이에 병원에서는 많은 비용을 들여 급성 정신질환자를 치료하는 것보다 만성질환자를 장기입원시키는 방향으로 운영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인권연대 카미 권오용 대표는 “정신병원에서 급성–만성 정신질환자를 구별하지 않고 환자를 치료할 때 적용되는 수가가 같다는 것이 결국 문제”라며 이것이 “급성 정신질환자 병상이 줄어드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환자 못 돌보는 정신병원, 외면하는 지역사회

정신병원의 문제는 병상 부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선 장애인 인권단체와 전문가들은 현재의 정신질환 치료는 비약물요법보다 약물요법을 지나치게 우선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2022년 발표한 보도 자료에 의하면 2022년 1월부터 6월까지 만 17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93만 건 이상의 정신과 약물이 처방된 것으로 드러났다. 세심한 주의가 요구되는 아동의 경우에도 이렇게 높은 수치의 약물 처방이 확인되는 것은 정신질환 치료에 있어 우리 사회의 높은 약물 의존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오용 대표는 “한국의 정신질환 치료는 약물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라며 “회복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 등은 소홀히 운영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이한결 전략기획본부장 역시 “병원이 약물 치료 외의 정신질환 치료 방법을 제공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치료가 끝난 이후에도 사회 시스템 안에서 이들을 돌보기란 쉽지 않다. 현재 한국에는 정신질환자의 사회적응을 돕는 정신재활시설이 마련돼 있긴 하나,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정신재활시설은 349곳뿐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의 수만 대략 5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권오용 대표는 “약을 처방하는 정신병원 외에도 정신질환자를 언제든지 돌볼 수 있는 정신건강센터가 필요하지만 관련 기관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역사회 내 정신질환 치료 기반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신질환자는 정신병원에서 쉽사리 퇴원하지 못하게 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1년 발표한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의 정신 및 행동 장애 환자의 평균 재원 기간은 176.4일이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00일 이상의 재원 기간을 보였으며 영국의 35.2일, 프랑스의 23일과 비교했을 때도 터무니없이 높은 수치다. 권오용 대표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정신질환자의 재원 기간이 너무 높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신질환자의 치료권 보장을 위해서는

정신 의료 체계가 바로 서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급성 정신질환자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유제춘 이사장은 “급성 정신질환자의 치료권 보장을 위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상이 늘어나야 한다”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급성 정신질환자를 진료하는 병상에는 만성 정신질환자 진료 병상보다 적어도 5~10배 정도 높은 수가가 책정될 수 있도록 현행 체계를 조정하는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권오용 대표는 “병원 측에서 항시 응급 환자를 위한 병상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라며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정부가 제도의 기반을 닦아줘야 한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기존 약물 중심의 치료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치료 체계를 갖추려는 장기적인 노력도 시작돼야 한다. 예컨대 노르웨이의 정신병원 ‘휘달셴 리커버리센터’와 같은 해외 일부 정신병원은 불필요한 약물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대신 식단 관리와 조직적인 질병 관리로 정신질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특히 해당 병원은 비약물적 치료 방법이 정신질환의 재발을 억제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한결 전략기획본부장은 “노르웨이의 경우, 약물 치료를 최소화하며 정신병원을 운영하고 있다”라며 약물만이 정신질환 치료에 능사가 아니라고 말했다. 권오용 대표 또한 한국의 정신질환 치료체계가 약물 의존적인 치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역사회에서의 정신질환 치료 시스템 도입도 필수적이다. 이한결 전략기획본부장은 “정신질환자들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회생활을 지지해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라며 “미국의 경우 정신질환을 경험한 사람끼리 도와주는 동료지원 서비스가 잘 갖춰져 있다”라고 선진 사례를 설명했다. 미국은 정신장애인을 위한 지원 제도가 마련되면서 정신질환자의 탈시설을 가속화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동료지원가 교육 프로그램이 2001년 조지아 주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는 많은 주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40~100시간의 동료지원가 교육을 수료한 뒤 정신질환자를 위한 지지와 응원을 보내면서 그들의 사회적응을 돕는 식이다. 이 프로그램은 정신장애인이 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정신 의료 체계 전반에서 발생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돼 왔지만, 여전히 정신질환자가 성숙한 의료 체계의 보호 아래 치료받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는 오랫동안 묵은 문제를 해소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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