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넘긴다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부터의 한 편의 시, 한 편의 이야기, 한 권의 기록에 귀 기울이기 위해 우리는 숱한 시간 오랜 책들의 페이지를 넘겨왔다. 오늘은 그간 정성껏 들여다보지 못했던 학보 한 부를 집으로 가져와 페이지를 넘긴다. 

‘대학의 가성비’라는 기고에서 필자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학생의 룸메이트가 된 자신의 결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전에서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고, 사회적 신호에 무감각하며, 특별히 관심 있는 것에만 지나치게 빠져드는 신경정신 질환으로 정의한다. 필자는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의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학교 장애지원팀의 전화를 받고 이를 거절했지만, 이내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와의 흔치 않은 동거에 대한 호기심으로 반전의 선택을 감행한다. 

이런 선택은 유용함을 중시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필자가 밝히듯—그의 공부 시간을 빼앗고 생활에 불편함을 선사할 비합리적인 결정일 테다. 그러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선택들이 때로는 우리 인생에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필자의 이야기에서 아스퍼거 증후군 환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일면 무색해진다. 필자는 룸메이트로부터 한 가지에 몰두하는 집중력을 봤고 또한 주변 사람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순수한 마음의 소중한 가치를 배운다. 이는 필자에 따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들이다. 필자는 마침내 대학의 가치 또한 경제적으로 환산될 수 없는 것에 존재해야 하며, 대학의 가성비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교내 게시판에 시험 합격자 명단보다 이름 없는 시 한 편이 걸리기를 소망”하는 필자의 바람이 하나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오롯이 전해진다. 

이와 비슷한 소망이 지면을 채운다. 예컨대 무한 경쟁 사회에서 뛰어난 경쟁자로 살아가는 오늘날 학생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해 타인과 연대하기보다 타인을 견제하는 데 익숙하다. 소수의 승자는 패자에 대한 우월감에 도취하며, 그런 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연민과 공감, 인류애”는 사라진다. 여기서 필자는 협력과 화합을 요청하며 그 중심에 교육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다른 지면에는 서울대의 인재상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다. 각 대학은 인재상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우리 대학은 단과대 또는 학부·학과 차원에서의 인재상 설정을 추진해 서울대 인재상을 지금보다 더 명확히 할 수 있다고 제언한다. 『대학신문』 2081호의 페이지들을 넘기며 이야기들이 쌓이고, 어느덧 인재상이라는 굵고 큰 글자에 인간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단어를 덧붙여 본다.

 

현정선 강사

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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