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인 기자(취재부)
유혜인 기자(취재부)

나는 한평생 서울을 벗어난 적 없는 이른바 ‘도시 촌놈’이다. 지금껏 한 동네에서만 살았으니 친구들과 만나거나 노는 장소, 공부하는 곳이 정해져 있었고 지하철을 타고 밖으로 나가도 5호선과 9호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대학교 입학 후 관악구까지 통학하는 것은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같은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관악구는 매우 새로웠다. 지하철에서도 풍기는 냄새나 습도가 달랐고 길거리의 분위기도 달랐다. 대학교에 들어와 다양한 지역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며, 생각했던 것보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지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시작된 도시에 대한 관심은 ‘런던 도시 브랜딩’을 취재하도록 이끌었다. 기획 기사의 요점은 ‘가치를 담은 공공 디자인이 도시 브랜드에 기여한다’라는 것이었지만, 사실 내가 더 궁금했던 것은 어떤 방식으로 도시가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지였다. 이에 도시 계획과 공공 디자인을 전공으로 하는 교수님, 브랜드 컨설턴트 기관에서 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취재를 하면 할수록 내가 세운 전제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과연 도시는 일방적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존재일까? 

생생한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사진기 1대, 캠코더 2대, 짐벌과 삼각대라는 장비로 무장하고 직접 마주한 런던은 곧바로 내 질문에 해답을 줬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은 그저 도시의 영향을 받는 객체가 아니라 도시를 형성하는 주체라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일깨워 준 것은 런던 시민들의 ‘친절함’이었다. 조금만 스쳐도 “쏘리”라고 말해주고 사소한 배려에도 “땡큐”라는 말을 건네 주며, 아이가 울어도 크게 눈치를 주지 않았다. 이런 친절함이 모여 런던의 가치를 형성하고 곧 런던을 기억하는 방식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방식, 먹는 방법, 도시의 공간을 사용하는 과정 모두 도시 브랜딩에 영향을 미친다. 공공 디자인과 도시의 모습이 무대라면 시민은 배우다. 무대가 아무리 웅장하고 아름답더라도, 배우의 연기가 부실하다면 그 공연은 절대 성공적일 수 없다. 우리는 모두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주체이며, 존재 자체만으로 도시의 일부이기도 하다. 도시와 도시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한 것인데, 이런 점을 잊고 살아왔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제 서울은 공감, 포용, 공헌, 회복, 지속 가능성이라는 5개의 새로운 가치를 토대로 ‘디자인서울2.0’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서울에 살고 있는 주체로서의 나는 위의 5개의 가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의 반성이 모두의 반성과 개선으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며 홀가분하게 기획 기사를 세상에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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