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금서의 역사와 형태의 변화

압수당하고 불타는 책, 사상적으로 불온한 책, 출판과 판매가 금지된 책. 그런 금서는 이제 없다. 하지만 금서는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형태로 한국 사회에 남아 누군가의 읽을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

◇금서, 사회 탄압의 그을음=금서의 역사는 검열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조성면 문학평론가는 “금서는 그 시대의 기득권이 가장 불편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비협조적인 인사들을 탄압하고 정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사상이 확산하는 것을 막고자 금서를 지정했다. 1970년대 유신 정권은 정부 비판적인 도서를 반국가 및 반사회적인 불온 도서로 몰아 출판을 금지하고 서점을 압수 수색해 해당 도서를 몰수했다. 민주화 이념과 방법을 제시하는 『황토』(김지하, 1970), 『궁핍한 시대의 시인』(김우창, 1977)과 같은 책이 대표적인 금서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에서는 도서에 대한 검열이 한층 심화돼 표현의 자유가 전례 없이 억압됐다. 당시 정부는 국가보안법을 무차별적으로 적용해 수많은 사회주의 서적, 북한 관련 서적,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서적을 검열했으며,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1974), 『해방전후사의 인식』(송건호 외, 1979)이 이 시기 대표적인 금서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부에 의한 금서 지정은 계속됐다. 이 시기에는 강화된 풍속검열에 따라 많은 도서가 금서로 지정됐다. 정부는 『즐거운 사라』(마광수, 1991)와 『내게 거짓말을 해봐』(장정일, 1996) 등의 도서들이 사회에서 허용할 수 있는 외설의 정도를 넘어섰다며 금서로 지정했고 출판인을 구속시키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도 도서 검열은 계속됐다. 반정부, 반미, 북한 찬양의 내용을 담았다는 이유로 일부 도서가 금서로 지정됐다. 2008년 국방부가 『지상에 숟가락 하나』(현기영, 1999),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2007) 등의 책을 국군장병이 읽거나 소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금서의 새로운 국면=국가가 나서 도서의 출판 유통을 금지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시민 사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앞세워 도서 검열에 앞장서고 있다. 일부 이익집단은 그들의 의견과 다른 내용을 담은 도서를 자체적으로 금서로 지정하고 다른 시민들이 책을 읽을 수 없게 행동에 나선다. 이들이 도서 출판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공도서관에 특정 도서를 비치하지 못하도록 민원을 넣는 등의 방식으로 자유로운 독서권을 제한한다. 금서를 정하는 주체가 정부에서 일반 시민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봉범 초빙교수(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는 “금서의 핵심은 주체나 범위와 관계없이 책이 독자에게 수용되는 것을 제한하고 억압하는지 여부”라며 최근 시민에 의해 도서관에서 접근이 제한된 책들도 금서라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성공회 예산성당 심규용 신부는 “문화 현상이 아닌 정치적 맥락으로 금서 논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충남 공공도서관 도서 열람 제한 사건은 금서를 둘러싼 최근의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지난 5월 충남 공공도서관에 특정 성교육 및 성평등 도서의 금서 조치를 요구하는 학부모단체와 보수개신교단체의 민원이 쇄도했다. 이들은 해당 도서가 불필요한 성적 호기심과 잘못된 성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결국 지난 7월 김태흠 충청남도지사는 도내 전체 36개 도서관에서 『걸스 토크』(이다, 2019),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페르닐라 스탈펠트, 2016),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페르 홀름 크누센, 2017) 등 성교육 및 성평등 도서 10권의 열람을 제한했다. 금서로 지정된 도서 중 하나인 『걸스 토크』의 저자 이다는 “어린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긍정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여성의 성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여성의 성욕이 당연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라고 책의 내용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책으로 미리 배우지 않으면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더 자극적이고 그릇된 성 지식을 습득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충남 공공도서관을 시작으로 전국의 다른 도서관 역시 성교육 및 성평등 도서 열람을 제한하라는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이봉범 초빙교수는 “금서가 표현의 자유와 이념을 둘러싼 주체 대립의 전쟁터가 됐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런 대립이 점점 심해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충남 공공도서관 사태와 비슷한 사례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추세가 읽을 자유를 훼손하고 사회적으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우려도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 몽 공동집행위원장은 “앞으로 사서가 어떤 도서를 구입하고 도서관에 비치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검열이 심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금서에 맞서는 독자의 움직임=한편 많은 시민들이 이런 우려에 공감해 금서 지정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6일(월) 충남 대한성공회 예산성당 마르코 책방에서는 충남 공공도서관 금서 지정에 대항하는 〈릴레이 금서 전시회〉가 열렸다. 이에 앞서 지난 8월에는 차제연이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금서를 지정하고 시민들은 이를 강제로 수용해야만 했던 과거와는 달리, 시민들은 자신이 읽고자 하는 책이 금서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면서 금서를 둘러싼 논의는 다층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몽 공동집행위원장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할 시민이 먼저 지식에 접근할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라며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강력한 시도가 있을 때 그것에 저항하는 힘을 더 크게 보여주는 것이 시민 사회의 역할”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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