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영신연와로 살피는 근대유산의 의의와 과제

'멀지 않은 과거, 그래서 더 소중한’.  영신연와보존시민모임이 수원의 근대유산 영신연와를 보존하기 위해 내거는 문구다. 우리 곁에는 수많은 근대유산이 있지만, 여러 이유로 그 가치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근대유산은 수백 년의 역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뒤로는 재개발이 한창인 영신연와의 굴뚝.
뒤로는 재개발이 한창인 영신연와의 굴뚝.

 

현재의 삶과 함께하는 근대유산

수원 고색중학교의 귀퉁이를 돌아,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장소를 찾았다. 이곳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굴뚝이 있는 영신연와다. 1972년 지어진 벽돌공장으로, 현재는 가동을 중단한 상태다. 영신연와는 1970년대 당시의 삶과 산업의 기억을 가득 안고 있는 장소다. 영신연와로 가는 길에는 적벽돌과 흑벽돌로 만들어진 영신연와의 노동자 사택과 벽돌을 젠가처럼 쌓아 만든 건축물이 보였고, 영신연와 공장 터에 다다르자 적벽돌이 촘촘히 쌓여 성벽을 연상케 하는 공장 외벽이 남아 있었다. 영신연와 주변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영신연와보존시민모임에서 활동 중인 서동수 씨(시각디자이너·57)는 “영신연와는 나에게 친구들과 함께 놀던 놀이터이자, 서수원 시민의 역사가 담긴 생활의 터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안창모 교수(경기대 건축학과)는 “영신연와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독일 호프만식 가마가 완벽하게 남은 곳으로 보존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강조했다.

영신연와처럼 근대에 형성된 동산·부동산 유산을 통상적으로 근대유산이라고 지칭한다. 이런 근대유산은 등록문화재 제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등록문화재는 문화재보호법상 “지정문화재가 아닌 문화재 중 건설·제작·형성된 후 50년 이상이 지난 것”으로서 근대유산 소유자가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녔다고 판단해 등록 신청한 유산이다. 이것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후 문화재청의 승인으로 최종 등록된다. 국가가 직접 보호하는 지정문화재와 달리 등록문화재 제도는 역사가 짧고, 국가가 모두 관리하기에는 수가 많은 근대유산을 소유자가 자발적으로 보존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이광표 교수(서원대 휴머니티교양대학)는 “많은 근대유산을 국가가 다 관리할 수 없는 현실에서 비지정문화재인 근대유산 보존을 장려하기 위해 등록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졌다”라며 “등록문화재는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수리비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소유자의 자주적인 등록과 보호에 의존한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철거된 스카라 극장과 옛 대한증권거래소가 대표적인 등록문화재”라고 덧붙였다.

근대유산은 아득히 먼 과거가 아니라 동시대에 존재하는 유산으로서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전종한 교수(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는 “근대유산은 현대 도시 경관의 일부이고 일상적 시민 생활과 맞닿아 있다”라고 전했다. 이광표 교수는 “근대유산은 삼국·고려 시대의 전통적인 문화유산이 아니라 1952년에 만들어진 라디오, 1975년에 생산된 포니 자동차처럼 친숙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근대유산은 근대 역사를 성찰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서동수 씨는 “영신연와는 우리나라 초창기 노동자가 어떤 생활을 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다”라고 짚었다. 안창모 교수는 “근대유산은 우여곡절이 많은 우리 근대사를 기억하게 하는 기억의 매체”라고 강조했다.

 

사라져가는 근대유산

그러나 영신연와를 비롯한 근대유산은 개발 논리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서동수 씨는 “현재 개발조합이 꾸려져 영신연와가 위치한 고색지구에 건물을 지을 건설사 계약까지 완료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기자가 목격한 영신연와는 앞으로는 중고차 매매단지를, 뒤로는 아파트 재개발 현장을 마주하며 허허벌판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서 씨는 “소수의 사람만이 영신연와 보존에 관심을 보일 뿐, 개발이익이 중요한 대다수의 사람은 그것이 흉물이라며 철거를 주장하는 상황”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송석기 교수(군산대 건축공학부)는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며 이익만을 좇는 개발에 급급해 근대 건축물을 비롯한 근대유산이 철거되기 일쑤였다”라고 설명했다. 

근대유산 보존을 장려하기 위해 등록문화재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 제도는 전적으로 소유자의 의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는 근대유산이 많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영신연와는 50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등록문화재의 기준을 충족했지만, 소유자가 등록 의사를 밝히지 않아 등록문화재로 등재되지 못했다. 게다가 등록문화재에 등록되더라도, 등록문화재 제도의 규제는 강제성이 없어 근대유산 보존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광표 교수는 “등록문화재 제도 덕분에 근대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현상 변경 시 지정문화재는 개인 소유물이더라도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등록문화재는 현상 변경에 법적 규제가 없어 훼손되고 철거되는 일이 허다하다”라고 전했다.

 

근대유산이 오래도록 남기 위해서는

그러나 등록문화재 관리에 강제성을 부여해 국가가 관리하는 지정문화재처럼 관리하는 방식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안창모 교수는 “정부가 그 많은 근대유산을 관리할 예산과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했다. 이광표 교수는 “국보나 보물 같은 지정문화재가 아니며,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근대유산에 지정문화재와 똑같은 법적 강제성을 적용할 경우 재산권 침해가 우려된다”라고 설명했다. 등록문화재는 역사가 짧다 보니 그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 사유재산권 침해에 대한 심한 반발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결국 현행 등록문화재 제도 내에서 근대유산을 잘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를 소유하는 민간의 인식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광표 교수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내가 소유한 근대유산이 공익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라고 전했다. 안창모 교수는 “지자체와 문화재청은 용적률 허용 범위를 늘려주는 등 보상 체계를 강화해 시민사회가 근대유산을 자발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지원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근대유산을 보존하는 소유자가 과거의 맥락을 잘 담아내 활용하는 자세 역시 필요하다. 이 교수는 “오늘날 근대 건축물 활용은 박물관, 카페 등으로 획일적인 양상을 보인다”라며 “근대유산을 그 의미와 맥락을 잘 전달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할 시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서동수 씨는 “예컨대 영신연와의 경우 서수원의 정체성이 담긴 장소로 활용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세상이 빠르게 바뀌면서 과거의 것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근대유산도 ‘근대’를 떼고 몇백 년의 역사를 갖게 되는 때가 올 것이다. 이광표 교수는 “먼 훗날 ‘왜 21세기의 건물이 남아 있지 않지’라는 후대의 의문이 제기되지 않도록 근대유산에 대해 각별한 보존 의식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오늘날 몇백 년 전 역사를 볼 수 있듯, 후대도 우리의 유산을 누릴 수 있도록 장기적인 안목이 요구된다.

 

사진: 김진희 기자

jh020720@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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