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며칠 전, 지난 16일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국어 영역 문제지를 찾아본 일이 있었다. 대학 입학 이후 단 한 번도 눈여겨본 적 없던 수능 국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설가 박태원의 「골목 안」이 문제로 출제됐다는 뜻밖의 소식 때문이었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나 『천변풍경』이 아닌 「골목 안」이라니! 수능 시험에 좋아하는 소설이 나왔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 한편으로 나의 10대 시절과 비교해 그동안 국어 교과서나 시험 문제에 등장하는 문학 작품들이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박태원이라면 ‘구보 씨’, 이상이라면 ‘날개’가 쉽게 연상되는 것처럼, 몇몇 문학사적 공식이 쉽게 잊히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청소년기를 함께했던 각종 국어 교재와 시험 덕분일 것이다. 어떤 문학 작품이 ‘정전’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초·중·고 국어 교육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문학사에서 정전이 될 만한 작품을 먼저 선별하는 일은 문학 연구자나 비평가의 몫이지만, 실제 그런 작품들이 대중에게 정전으로 인식되는 단계에서 공교육과 대학입시는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수능 국어에서의 문학은 입시 제도, 문학 교육, 문학(사) 연구라는 세 차원이 맞닿아 있는 장(場)이자, 앞으로 ‘무엇을 (정전으로) 읽어야 하는가’를 가리키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대학의 한국문학 전공자만큼이나 한국문학사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대입을 앞둔 전국의 고등학생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입시제도의 변천과 한국근현대소설의 정전화 과정 연구」(이종호, 2020)라는 논문에서는 이미 1960-70년대에 한국문학을 찾아 읽는 고등학생들 중 상당수가 대입 준비를 목적으로 삼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사실은 교양 습득이나 읽는 재미 자체를 위한 독서와는 다른 종류의 독서 행태가 존재했음을 가리킨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지금도 여전히 ‘시험용’ 문학 독서(혹은 독해)는 고등학생들이 한국문학과 만나는 가장 보편적인 방식일 것이다.

물론 그렇게 입시를 목적으로 한국문학을 접하게 될 때의 아쉬움은 적지 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수많은 고등학생들이 한국문학을 잘 읽어내기 위해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서광이나 문학청년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등학생이 수행하는 건조하지만 성실한 읽기야말로 한국문학을 중요한 앎의 대상으로서 존속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동안 한국 근현대문학 연구자들이 각 시대마다 청년들이 무엇을 열독했는가를 중심으로 지성사를 재구성하는 데 주력해 왔다면, 세대를 초월해 나타나는 ‘비-문청’ 학생들의 시험용 문학 읽기가 대중의 영역에서 어떻게 한국문학사에 관한 보편적인 상(像)을 만들어왔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분석과 논의를 필요로 할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고등학교 내내 ‘도대체 이것을 배워 무얼 하나?’를 되물으면서도 열심히 한국문학 지문을 읽었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전공자가 된 현재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하지만 비록 읽기의 태도나 방식은 다를지라도 이렇게 ‘한국문학은 왜 중요한가’를 물으며 읽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한국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언제나 섣부른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언젠가 박태원, 하면 ‘구보 씨!’가 아닌 ‘골목 안!’을 말하는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허민석 간사 

rabbi199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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