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원 기자 (취재부)
신승원 기자 (취재부)

“부끄럽지만 장애학생복지위원회의 존재도 잘 몰랐어요. 사실 무슨 위원회들은 되게 많아요. 그런데 저희의 일상이 실제로 달라지는 건 많이 없거든요. 어떤 문제는 5년, 10년이 지나도 안 바뀌니까, 옛날에는 되게 관심 많았는데, 이제는 희망 고문 같기도 해요. 그런데 여전히 희망은 있어요. 조금씩 변하는 것도 있기는 있어요…”

장애학생으로서 겪어 온 무력감을 들려주는 취재원의 목소리는, 차분하게 이어져 온 대화의 리듬과 대비되게 약간 고조돼 있었다. 그 음성은 그의 마음을 닮았을 것이다. 거기에는 그동안 응어리처럼 쌓여 왔을 분노와 체념, 그리고 그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미약한 희망이 배어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말해진 것보다 더 큰 것을 품고 있다. 이야기의 선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실타래가 나온다. 기자는 그것을 차근히 모으고 엮어가며 글을 쓴다. 소설가라면 엉킨 실타래가 한 사람의 내면에서 꼬이고 풀리는 과정을 쓰겠지만, 기자라면 그것들을 다시 사실로 분해하고, 맥락으로 엮어 종합적인 관점을 내비치는 글을 쓴다. 기자는 취재로 생각하고, 기사로 말한다. 

취재할 때는 실타래 하나하나에 최대한 밀착하게 된다. 누군가가 확인해주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취재의 동력은 하고 싶은 말을 떠올리는 데에서 나오지만, 취재의 실제는 할 수 있는 말을 차곡차곡 모으는 과정이다. 열 편쯤의 기사를 쓰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기자는 작가보다 하나의 뉴런에 가깝다는 것이다. 기자의 글쓰기는 무수한 사람들, 사건들과 연결되기에 가능해진다. 

기사 쓰기는 취재원의 실타래에서 빌려온 실들을 엮어 가는 일이다. 그러나 기사의 형식은 때로 야속하리만치 냉철하다. 묘사는 간결해야 하고, 표현은 절제돼야 한다. 개개의 이야기들로부터 다시 거리를 두고 최대한 중심을 잡아야 한다. 때로는 누군가의 생생한 경험을 살리지 못해 절망스럽고, 때로는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취재를 거부해 답답하다. 그래서 어떤 경험의 부피감이나, 어떤 목소리의 절실한 울림 같은 것은 많은 경우 취재수첩에 갇힌다. 운이 좋다면, 기사의 행간으로 겨우 스며든다.

그러나 그렇게 취재수첩에 남은 것들은 다음 기사로 나를 이어준다. 계속 연결되고 말을 하게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더딘 변화 속에서 장애학생이 겪는 무력감의 크기가 그랬다. 장애학생에게 일상의 고충은 불편을 넘어 쉽게 위협이 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해도 변화는 더디고, 때로는 냉담한 답변과 시선 앞에 움츠러든다. 그럼에도 계속 행동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를 말하고, 공유하며, 함께 안타까워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를 엮어서 남기기 위해서, 나는 기사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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