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서평 | 기후변화 대응책으로서의 이주

오늘날 기후변화 담론은 어떻게 기후변화를 막을 것인가에 집중한다. 이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기후변화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경시되고는 한다. ‘이주’는 기후변화 앞에 선 인류 개개인이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선택지다. 과학작가이자 UCL 인류세연구소의 명예 선임연구원인 가이아 빈스는 그의 책 『인류세, 엑소더스』에서 인류가 인류세를 살아가는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 이주를 제안한다. 한편 『인류, 이주, 생존』의 저자인 과학 저널리스트 소니아 샤는 인류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이동해 온 역사를 생명체의 본능으로 설명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겨난 이주에 대한 거부감의 기원을 따져 본다.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인류 이주의 기원과 기후변화의 현실, 그리고 이주의 미래를 살펴봄으로써 인류가 필연적으로 마주할 이주의 미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인류세에서 이주는 답이 될 수 있을까? 인류는 이주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인류세, 떠나야 산다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의 활동이 지구의 지질 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지질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인류가 버린 플라스틱 입자, 핵실험으로 인해 변화한 토양 등이 인류세의 지질을 구성한다. 인류세에서 지구의 물리·화학적 구조의 극적인 변화와 그에 따른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체감되기 시작하면서 1950년 이후의 지질 시대를 학술적으로 인류세로 규정하자는 논의가 지질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기후변화가 이미 심각한 수준까지 진행돼 인류세의 세계적인 선포가 눈 앞에 다가왔지만, 인류의 활동이 초래한 지구 환경의 변화는 멈출 기미 없이 더욱 심각해지는 모양새다. 인간이 태운 화석연료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지난 20년 동안 600Gt(기가톤)이다. 『인류세, 엑소더스』의 저자 가이아 빈스는 6,600만 년 전 공룡의 멸종과 함께 백악기를 끝낸 소행성 충돌로 약 600~1,000Gt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됐음을 상기하며 인류가 초래하는 지구 환경 변화는 지구에 떨어진 하나의 소행성의 영향력과 같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로 ‘지구가열화’가 진행돼 지구 온도가 4도 상승하게 되면 지구는 전에 없던 모습으로 변할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파괴적인 자연재해가 일상화될 것이라 이른다. 구체적으로는 화재, 폭염, 가뭄, 홍수를 ‘인류세의 네 기수’로 칭하고 인류세에서 끊임없이 발생할 이 네 가지 자연재해가 인류의 생존을 특히 더 위협할 것이라고도 짚는다.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의 흐름은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으나 인류가 생존을 모색할 수 있는 출구가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다. 지구 내에서도 기후변화의 양상은 상이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저위도는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더워지고 건조해지지만 북위 45도 이상의 고위도는 기온이 올라가면서 저위도에 비해 인간이 살기 적합해진다. 해안가 등의 저지대는 침수 위험이 높아지지만 내륙의 고지대는 기온 상승으로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다. 이에 가이아는 기후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간이 생존에 보다 유리한 지역으로 ‘이주’하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주는 할 수밖에 없고 해야 하는 것이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주는 태초부터 인류에게 자연스럽게 수용돼 온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이주자 출신인 소니아 샤는 『인류, 이주, 생존』에서 이주가 인류의 본능적 행동이라며 인류를 ‘호모 미그라티오’(Homo migratio), 즉 이주하는 사람이라고 지칭한다. 소니아의 논의는 동물적 본능에서 시작한다. 그는 바둑판점박이나비가 생존에 적합한 기후를 찾아다니며 생존한다는 연구 사례를 들어 기후변화로 자신의 터전을 위협받으면 이주하는 것이 생명체의 본능이라는 점을 제시한다. 또한 각 대륙의 여성에게서 미토콘드리아를 추출해 본 결과, 인류는 각 정착지에서 개별적으로 발달한 것이 아니라 환경 변화에 맞춰 아프리카에서부터 이주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지금의 인류도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위기마다 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것이다. 

 

이주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 

이처럼 이주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현상이지만 오늘날 재앙으로 여겨진다. 소니아는 이주를 악마화하는 언론과 정치인의 행태를 지적한다. 유럽 언론은 연일 중동 및 아프리카 이주자들의 범죄를 보도하며 대중의 반(反)이주심리를 자극한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의회 연설에서 이주자가 미국에 부담을 지운다고 주장했다. 이주자가 마이애미의 노동시장에 들어와 고등학교 중퇴자들이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됐다는 미국의 경제학자 보르하스의 연구가 이 연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이주자들이 발생시키는 편익을 누락하고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연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국제 사회에 존재하는 이주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소니아는 이 같은 이주에 대한 거부감을 18세기 서구의 인종차별적 학문 패러다임에서 찾는다. 린네는 『자연의 체계』에서 인간종이 생물학적으로 구별된다며 ‘호모 사피엔스유러파에우스’, ‘호모 사피엔스아시아티쿠스’, ‘호모 사피엔스아메리카누스’, ‘호모 사피엔스아페르’ 등 몇 가지 아종으로 분류했다. 이때 그는 각 종의 특징을 설명할 때 유럽인은 진지·영리 등의 단어로 기술한 반면, 이외의 인간 아종들은 오만·멍청 등의 단어로 표현해 단순히 인종을 구별하는 것을 넘어 인종차별적 인식을 드러냈다. 당시 린네의 생물분류체계는 근대 자연 연구의 근간이 됐지만, 동시에 유럽 중심적 시각에서 다른 지역의 인간을 열등한 존재로 묘사하며 이주민에 대한 근원적 차별을 부추기고 인류 이주 역사를 부정했다. 이런 인종주의적 시각은 서양의 예시지만, 우리 역시 비슷한 논리로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무엇보다도 현실적 차원에서 이주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한 민족, 한 국가를 주창하는 배타적인 국민국가 개념과 이를 지탱하는 민족주의다. 오늘날 이런 배타적인 국민국가에서 국경은 존재 자체로 외부인을 타자화한다. 이런 뚜렷한 경계는 국경 내 인간과 국경 밖 인간을 구별 지어, 국경 내 자원을 국경 밖에서 온 사람들이 사용하고 누리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일종의 상식처럼 받아들이도록 한다. 결국 오늘날 이주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 인프라에 무임승차 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져, 세계 곳곳에 이주자를 막기 위한 물리적·제도적 장벽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중이다. 소니아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스로 이주하려던 하크야 가족이 임시 텐트촌에서 겪는 비인도적 상황을 그리며, 국경이 국경 밖 인간에게 만들어 내는 폭력을 재고해 보게 한다. 

 

이주를 맞이하는 거버넌스는

이 같은 배타적 국민국가는 근대 이후 절대적인 정치체로 여겨지지만, 가이아는 국민국가의 개념이 반드시 고정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국민국가는 역사적인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기에 이는 다시 필요에 따라 해체될 수 있다. 공동체의 구성은 지금의 국민국가보다 포용적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소니아는 국경의 제약을 줄여 이주자를 적극 수용하는 포용적 국민국가를 제안한다. 이주자들의 안전한 이동이 담보될 수 있도록 지구적인 차원의 제도적 통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런 안전한 이주는 국제연합(UN)의 ‘안전하고 평화롭고 규칙적인 이주를 위한 세계협약’에서 추구하는 바기도 하다. 협약은 이주자를 받아들이는 국가를 지원하고 이주자에 대한 정보가 공유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니아가 제시한 안전한 이주가 보장되는 거버넌스는 국제적 합의를 통해 인간의 상호 안전을 보장함으로써 이주민과 국민국가의 긴장을 해결할 방안을 시사한다.

나아가 가이아는 국경의 제약을 줄이는 것을 넘어 국경을 해체해 이주민을 포용하는 방식으로 국민국가 개념을 다시 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기후위기에 영향을 덜 받는 국가들이 더 영향받는 국가의 토지를 매입하는 대신 이주민을 그 영토에 살게 해주면서 각자의 주권을 인정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민국가를 구성하자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이 새로운 국민국가에서는 안정된 시스템이 국경 내부의 이주자를 관리하면서도, 외부적으로는 국제적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와 이주에 대응할 수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국민국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주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기후난민은 약 3,260만 명으로, 전쟁난민(약 2,830만 명)보다 많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온난화와 해수면 상승이 세계 평균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난민을 걱정하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 우리가 난민이 돼 이주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다. 이주해 가는 것, 이주해 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주를 다룰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류세, 엑소더스

가이아 빈스

김명주 옮김

384쪽

곰출판

2023년 11월 13일

인류, 이주, 생존

인류, 이주, 생존

소니아 샤

성원 옮김

432쪽

메디치미디어

2021년

 

 

삽화: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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