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피의 통증

박규리

 

 문 너머로 어른거리는 실루엣은 퍽 익숙한 자태라 나는 문이 열리기 전부터 당황했다. 흐릿하게 얽혀지는 인물상 사이로, 그는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하필 감색 코트 차림이었다. 마지막으로 나와 만났을 때도 입었던 그 코트. 덕분에 바로 그를 알아볼 수 있었고 아는 체를 숨길 수도 없었다. 나는 감정을 그대로 얼굴에 드러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공백의 틈 사이로 그가 치고 들어온다.
 “우선 뭐라도 마시면서 말을 나눌까요?”
 “네, 선배. 음료는 뭘로 드시겠어요?”
 그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난 주로 뭘 마셨나요?”라고 묻는다.
 반사적으로 한 마디 뜸을 들이며 차분히, 차분히 답하자고 되뇌인다.
 “따듯한 드립 커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사뿐한 호기심이 그의 얼굴에 순간 떠오르더니 기다리겠다며 구석의 테이블로 가 앉았다.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원두를 붓고 드립용 가는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물을 부으며 자꾸 그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다스렸다. 알맞게 부푼 원두가 서서히 꺼지고, 다시 한번 물을 붓는다. 이번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물을 부으며 새로 산 분재를 수조에 어떻게 배치할지를 생각하려 애썼다. 혼자 커피 내려 마실 때를 위해 비축한 앵무새 모양의 각설탕으로 손을 뻗으며 결국 그를 흘낏 보고 말았다. 그는 천연덕스럽다고 해야 할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 지 감이 안 잡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통! 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 각설탕이 검게 풀어 헤쳐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걸음을 옮겼다.
 뭉근한 커피 향기가 피어오르는 잔을 내려놓으며 그를 마구 응시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는 김 선배였다. 6년 전과 별반 달라진 점이 없는 이목구비는 오히려 너무 달라진 점이 없어 내가 잘못 기억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특별한 생김새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지만, 주연배우같은 아우라가 있어 쉬이 잊혀질 만한 이는 아니었다. 정확히는 인기 없는 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였다. 처음으로 이 표현을 쓴 자는 연신 내 팔을 흔들며 내 동의를 구하려했다. 나는 어떻게 화답했는가, 아마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특별히 잘생겼다는 뜻으로 한 비유는 아니다. 따지고 본다면 평범하게 생긴 축에 속한다. 그러나 군중 속에서도 그를 주목하게 만드는 몇몇 요소들이 있었다. 우선 특유의 홑꺼풀의 눈매가 만들어 낸 흐릿한 인상을 짙은 눈썹과 살짝 굴곡진 매부리코가 흩트려 놓는 기묘한 조화를 손꼽을 수 있겠다. 듣기 좋은 목소리도 한몫했다. 퍼스럭한 입술이 열리면 티끌 없는 음성이 울려 퍼져 처음 보는 사람이 꼭 목소리가 참 좋다는 칭찬을 하게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말쑥한 차림새와 어우러져 무던하면서도 톡톡 튀는 분위기를 풍긴다고 그때도, 지금도 생각한다.
 기억의 군데군데가 지워져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건 그와 나는 동류였다. 튕겨 나간 이들. 숨죽인 시간들의 의미를 함께 짓밟던 사이. 멀지 않은 아스라한 과거를 나눈 우리. 어떤 애틋한 관계로 평범하게 정의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저 과거에 알고 지내던 지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다. 특히 마지막 만남 이후로 더. 이번에도 그가 입을 뗀다.
 “우선 저는 우리가 서로 알던 사이라는 사실만 알고 여기 왔습니다.”
 짧은 목 넘김 소리.
 “커피가 고소하니 맛있습니다. 커피에 일가견이 있다고 말하진 못하지만, 제게는 아주 맛있는 커피입니다. 예전의 취향이 몸에 밴 걸지도 모르겠네요. 뇌가 달라졌어도 미뢰는 기억한다, 뭐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죠. 아, 저는 김 씨 안에 들어 있는 렙틸리언입니다.”
 짧은 침묵 후 찾아오는 안도감.
 “역시 김 선배는 죽었군요.”
 “저는 진짜 렙틸리언입니다.”
 무언가 어긋남을 감지한 그는 재차 말한다. “당신이 알던 김 선배는 죽었고, 저는 그의 거죽을 뒤집어쓴 렙틸리언입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그의 동생이 일 년 전 문자로 형의 실종 선고 사실을 알려왔을 때, 나는 이미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거의 확신했다. 마지막 만남 때 보여준 그의 태도는 완연히 종말을 받아들인 자의 태도였다. 입고 온 그의 감색 코트에서는 부처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오고 있었다. 이름 모를 풀잎과 연한 찻잎을 따다가 한데 그러모아 폭 쪄내면 그런 냄새가 날 것 같았다. 초탈한 자의 쌉쌀한 냄새야. 나는 멋대로 정의 내렸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느꼈고, 그가 세상의 순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면 나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만사를 단순하게 뭉그러뜨려 버리던 시절이었다.
 후회는 언제 시작되었는가. 외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같은 냄새를 감지했을 때이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발을 디뎌본 장례식장에는 그 냄새가 흘렀다. 익숙하지만 어디서 맡아 본 향인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단절된 기억의 모퉁이에서 맴돌다, 엄마한테 툭 질문을 던졌다. 원래 장례식장에는 쌉쌀한 풀 냄새 같은 게 나는 거냐고.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엄마는 아니라고 답했다. 손님 대접할 음식이 많아 보통의 장례식장에는 부엌 내음이 난다고. 그런데 외할머니는 몸에 음식 냄새 배는 걸 가장 싫어했으니까, 막내 이모가 디퓨저 같은 걸 갖다 둔 거라고. 생전 즐거움이란 걸 잘 누리지 못한 분이었지만 가끔 절에 가서 공양을 드리고 차를 얻어 마시곤 하셨다고. 더 이상 녹차 한 잔의 여유는 못 누리시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찻 내음이라도 즐기게 해드리고 싶은가 보다며 눈물을 글썽였고, 나는 떨떠름하게 등을 토닥여 드렸다. 
 그저 죽음의 냄새였을 뿐이다. 나는 김 선배를 멋대로 재단하고 판단해 결과적으론 그를 외면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가 마지막으로 날 찾아온 건 구해달라는 마지막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두 번의 겨울을 이겨내고서 세 번째 겨울이 너무 힘들어 찾아왔을 수도 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최후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는 동사(凍死)를 꿈꿨다. 눈들이 서걱거리며 쌓여가고 만물이 정지한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자신도 숨을 멈추고 싶다고 했다. 따듯한 방에서 뱅쇼라도 홀짝이며 느긋하게 죽는 거라면 모를까 그건 너무 고생스럽지 않냐고 볼멘소리를 내자, 그가 뭐라고 했더라. 얼음땡과 같은 원리라고 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초등학교 때 얼음땡을 하던 경험을 생각해 보라고, 술래가 안 보이면 우선 ‘얼음!’부터 외치고 보지 않냐고 했다. 모두가 얼어붙은 와중에 술래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안 보여 일단 얼음부터 외치는 그런 심리라고 설명했다. 허공에 있는 듯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너무나도 고요해서 나도 모르게 얼음을 외치는 거야….
 세상과 함께 얼어가는 그의 모습이 점점이 멀어지는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덜컥 겁이 나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나는 구석에서 갑자기 나타난 술래를 만난 것 마냥 놀래 멀리, 저 멀리 달아난다. 기억으로부터 나를 꼭꼭 잠근다. 숨을 돌리고, 마음을 놓고 있으면 과거의 기억들은 어느새 빗장을 풀어 헤치고 나를 쫓아오곤 했다. 지독히도 반복되는, 느슨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굴레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그 – 정확히는 ‘저것’의 말이 나에겐 구원으로 다가왔다. 김 선배는 자신이라는 종(種)의 멸망을 자살의 방식으로 구현한 거야. 세상과 함께 영원한 얼음땡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외롭지 않아. 세상이 그와 한 편이니까. 마음 한 켠에서는 단단히 얼어붙은 대지에 동화 되어가는 육신의 이미지가 시작한다.
 “그런데 왜 저를 찾아오신거죠?”
 물끄러미 잔 속을 들여다보고 있던 그것은 짐짓 흥미로운 표정을 자아낸다.
 “렙틸리언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는 점이 되려 절 놀라게 하는군요. 저의 존재가 놀랍지 않으신가요?”
 놀랍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김 선배의 죽음에 대한 후련함이 먼저 날 덮쳤을 뿐이었다. 줄곧 나를 괴롭혀 왔던 상상 속 그의 최후가 완성되자 얼핏 해방감까지 들었다. 한시름이 놓이면서, 불쑥 이 망측한 렙틸리언을 골려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길래 태연한 척을 했다.
 “기왕이면 설명도 듣고 싶군요.”
 “굳이 따지자면 우리는 렙틸리언이 아닙니다. 렙틸리언은 인간의 모습을 한 파충류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인간이 되어가고자 하는 미지의 생물입니다. 렙틸리언이라고 저를 소개한 것은 설명의 편의성을 위해서입니다. 갑자기 나타나서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렙틸리언입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이해가 빠르지 않나요? 어차피 받아들이기 힘든 건 매한가지인데 말입니다. 딱히 우리를 칭하는 말도 존재하지 않아 그냥 제멋대로 렙틸리언입네, 하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연치 않게 만난 한 동족은 ‘이름 없는 괴물’이라고 지었다고 하더군요. 존재 방식이나 삶의 형태를 고려한다면 상당히 설득력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름 없는 괴물로 소개할까요? 어느 쪽이 더 편하게 다가오나요?”
 특별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침묵을 지키자, 그는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어간다.
 ”당연하게도 렙틸리언의 존재와 그 생태에 대해 전혀 모르실 거라 생각됩니다만, 우리는 죽은 이들의 시신에 기생하는 존재들입니다.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면 우리는 파고듭니다. 그렇게 거죽, 즉 사람의 외형을 얻은 후에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어쩌면 일종의 기생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잠시 말을 멈추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우리는 거죽을 얻은 후에 ‘융화’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거죽에는 이전 사용자의 정보가 잔뜩 남아 있습니다. 시냅스라든지, 면역 세포라든지 본인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자잘한 정보들이 즐비합니다. 따라서 새로 얻은 몸을 잘 운용하기 위해서는 이 융화 단계가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융화라는 작업은 아주 까다롭습니다. 이전 사용자에 대한 정보나 기억 따위를 얻어야 진행이 되는데, 우리가 거죽을 얻고 난 후 이전 사용자가 누군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거든요. 눈을 떴는데 뒷주머니에 지갑이라도 놓여있는 경우는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죠. 저는 그보다도 운이 더 좋아서 전 사용자의 일기도 바로 발견해 빠르게 융화할 수 있었습니다. 아, 말하지 않아도 물어보고 싶은 말을 알겠네요. 그만큼 융화가 되었는데 왜 굳이 당신을 찾아온 건지 궁금한거죠?”
 새삼스럽게 아무도 없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것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저는 아주 욕심이 많은 렙틸리언입니다. 자기 향상심, 효능감 뭐 이런 거에 큰 관심을 두고 있죠. 실제로 거죽을 얻은 후 수십 권의 자기계발서를 섭렵했습니다. 하여간 저는 얻을 수 있는 전 사용자의 정보란 정보는 모조리 얻어서 보다 높은 융화율을 달성하고 싶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도움이 아주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렙틸리언은 ‘아주’라는 표현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런 목적이라면 저보다 김 선배의 동생을 찾아가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쌍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아, 제가 아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죠? 나머지 하나는, 개인적인 호기심입니다. 아까 전 사용자의 일기로 대부분의 융화를 이뤄냈다고 했는데, 그러면서 정말 여러 번 그 일기를 읽게 되었거든요.”
 그것은 미지근해진 커피를 단숨에 입에 털어 넣었다.
 “그 일기에 당신이 꽤 자주 등장했습니다. 참고로 전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이니 구체적인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일기 안에서 당신은 ‘@’으로 불렸습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자, 커피잔에 남아 있던 약간의 커피를 찍어내더니 냅킨 위에 ‘@’을 그려준다.
 “글쎄요, 여전히 제가 왜 ‘@’인지 모르겠는데요.”
 “나 참, 이걸 모르겠다니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꼴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내는데 고생깨나 한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기 뭣한 감은 있습니다만, 본인 이름을 떠올려 보세요. 정소라. 맞죠? 소라이지 않습니까. 소라와 골뱅이는 같은 고둥류 아닙니까. 적어도 저와 인간 보다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유치한 별명 센스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오히려 김 선배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엉뚱한 사물 간에 공통점을 찾아내는 발군의 재주가 있었다. 이러한 그의 재능은 스케치 퀴즈 같은 상황에서 남김없이 발휘되어 곧잘 장난스러운 환호를 받곤 했다.
 “웬만큼 인간 세상에 자리 잡고 난 후 저는 이 ‘@’의 정체를 찾는데 몰두했습니다. 일기에도 구체적으로 함께 뭘 했다 같은 내용은 없고 ‘@과 나는 삶의 한 조각을 나눠 먹은 사이다.’ 따위의 표현만 가득해 도대체 @가 누군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삶의 한 조각을 나눠 먹었다니, 너무 아름다운 것 아닌가. 우리는 그저 한 계절을 함께 견뎠을 뿐이다. 벚꽃이 피고, 녹음이 지고, 낙엽이 휘날려도 우리의 계절은 내내 겨울이었다. 언젠가 이런 말도 나눴다. 겨울이 오면 그제야 다른 이들과 같은 계절을 보내는 것 같아 오히려 기쁘지 않냐고. 그는 고개를 가만히 내저었다. 오히려 겨울이 되면 내가 얼마나 차가운 시간을 보내왔는지 체감하게 되어서 겨울이 제일 싫다고 했다. 남들이 봄, 여름, 가을을 보낼 동안 혼자 겨울을 지내는 것은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모두가 같은 겨울을 보내게 되면 새삼스럽게 자신의 절대 온도를 체감하게 된다고 했다. 겨울보다 더한 혹한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울적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래도 용케 절 찾아내셨네요.”
 “하하, 칭찬을 들으니 괜히 뿌듯해지고 막 그러네요. 추측건대, 점점 융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해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저에게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내가 김 선배에게 도움을 준다니, 정확히는 김 선배의 탈을 쓴 자칭 렙틸리언이지만. 명백히 다른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자꾸 김 선배를 떠올리는 건 내가 속한 종이 시각적 정보에 쉽게 휘둘리는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필요한 겁니까?”
 “저에게 주기적으로 시간을 내어주시길 바랍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면 적당할 것 같군요. 반나절 정도 함께 노닥거리며 과거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하곤 했었다는 점을 기탄없이 말해주시면 됩니다. 물론 소정의 보수는 드릴 생각입니다만, 아직 벌이가 시원찮은 편이라 생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점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제 제안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김 선배에 대한 의리나 동정심에서 우러난 마음은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갖는 호기심이 주된 이유로 작동하고 있었다. 세상에, 렙틸리언이라니. 여태 인간 외적인 생명체라고 하면 초록색 덩어리진 외계인만을 생각했었다. 여상한 말투를 구사하는 기생 생명체는 생각지도 못했던 세상의 비밀이었다.
 “네, 저로서는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 해주세요.”
 “우선 저는 이 카페의 사장입니다. 주 6일 근무하고요. 하루 쉬기는 합니다만, 그날엔 밀린 집안일이라든지 할 일이 많아 따로 시간을 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따라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은데요, 카페 영업일 중 하루 이곳을 찾아와 제 일을 도와주시면 어떤가요? 꽤 친밀했던 사이인데 보수를 받기도 좀 그렇고 그 대신 하루 동안 간단한 잡무를 맡아 주시는 것으로 하죠. 여유 시간에는 드립 커피 내리는 법을 알려드리는 것도 원활한 융화에 도움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주 커피를 내려 마셨거든요.”
 그는 여태껏 지었던 표정 중 가장 환한 낯색을 띠었다.
 “좋습니다. 어떤 요일에 올까요?”
 “목요일이 가장 좋겠습니다. 그날 손님이 가장 적거든요. 혹여나 정체가 탄로나면 위험하잖아요?”
 그는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 원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감색 코트를 휘감고 사라졌다.
 그다음 주에 찾아온 그는 여전히 감색 코트 차림이었다. 힘차게 등장한 그는 손에 들린 구움 과자 세트를 번쩍 들어 흔들었다.
 “커피랑 함께 곁들일 만한 마들렌을 좀 사 와 봤어요. 가게 메뉴에 마들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센스 있게 잘 사 왔죠?”
 “고마워요. 얼른 커피 내릴게요. 가서 앉아 있으세요.”
 나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원두를 붓고 드립용 가는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준비했다. 짐을 내려둔 그가 어느샌가 매대 안쪽으로 들어와 내가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보고 있었다. 천천히 시계 방향으로 물을 부으며 뭐라도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입을 열었다.
 “드립 커피를 내릴 때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일정한 속도를 갖고 물을 부어줘야 원두 본연의 맛을 잘 살릴 수 있어요.”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이런 종류가 아닌 것 같아 머뭇거린다.
 “김 선배가 알려준 거예요, 드립 커피에 관한 거요.”
 그는 계속 말해보란 듯이 눈을 맞춰주었다.
 “선배를 만나기 전에는 커피는 카페에서 사 마실 줄만 알았지 직접 타 마실 생각은 못 했어요. 어느 날엔가, 아마 서로 친하게 지낸 지 얼마 안 지나서일 거예요. 선배가 손수 드립 커피를 내려줬고, 과방에 드립 기구랑 원두를 두고 지내니 편하게 타 마시라고 해 줬어요. 그 이후로 뭐 가끔씩 내려 마시다가 커피에 흥미를 붙이게 됐죠.”
 “굉장히 맛있는 커피였나 보네요.”
 “뭐, 값싼 학교 커피보다야는 맛있었지만 아마추어가 내린 커피니까 특별한 맛이라곤 할 수 없었어요. 그냥 보통의, 따듯하고 고소한 커피였죠. 맛 때문에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게 된 건 아니었어요.”
 “그럼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요?”
 “향이죠. 잘 내리든, 못 내리든 드립 커피는 늘 향긋하니까요.”
 드립백을 제거한 후 앵무새 모양의 각설탕 병을 찾아냈다.
 “이게 제 드립 커피의 킥이에요. 하나 넣어 젓지 않고 저절로 녹아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마시는 게 김 선배의 방식이에요.”
 우리는 그대로 멈춰서 갈색 배경으로 빨려 들어가는 작은 각설탕을 관찰했다. 마지막 알갱이마저 자취를 감추자, 그는 그대로 잔을 들어 한 모금 음미한다.
 “역시 오늘도 맛있네요. 이렇게나 맛있는데 왜 메뉴에는 드립 커피가 없죠?”
 “그야 뭐 원두 관리 문제도 있고, 내리는 데 시간도 많이 들고 신경도 써야 해서 메뉴로 파는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여유로울 때 가끔 나를 위해 한 잔 내려 마시는 용이죠.”
 “이렇게나마 마실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이런 인연을 만들어 준 전 사용자에게 더욱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종을 뛰어넘는 유머를 승화시킬 능청함이 부족한 탓이다.
 “마침 손님이 안 계시니 편하게 테이블에서 먹죠. 거기 있는 접시에 마들렌 좀 담아줄래요?”
 그와 나는 나란히 쟁반과 접시를 들고 중앙의 커다란 테이블로 향했다. 공부하거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학생 손님들이 주로 앉는 널찍한 6인용 테이블은 주말과 달리 한산했다.
 “오늘은 홍차네요?”
 “어라, 마들렌 하면 홍차 아닌가요?”
 “김 선배가 그러던가요?”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은 마들렌 먹을 때는 커피를 곁들였어요. 홍차와 마들렌을 함께 먹게 되면 어떤 소설 속 내용처럼 한도 끝도 없이 회상에 빠질지도 모른다나 뭐라나. 김 선배는 그런 엉뚱한 구석이 많았어요.”
 노르스름한 배꼽을 자랑하는 레몬 마들렌은 척 보기에도 맛있어 보였다. 고맙다고 중얼거린 후 하나를 집어 들어 홍차에 적셨다. 폭 젖어 든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자 김 선배가 한 경고가 허튼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를 부어 밀크티를 만들며 회상의 포문을 열었다.
 “우린 같은 경제학과였어요. 같은 과라 해도 뭐, 겨우 얼굴이나 알고 지냈지 두 학번 차이니 많은 접점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어요. 더군다나 나는 과 생활도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어서.”
 밀크티를 마시려 잠시 말을 멈춘 거였지만, 말을 이어가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 들어섰다.
 “제대로 만난 건 7년 전쯤의 겨울 초입 때였어요. 한 집단 상담 프로그램에서였죠. 눈치껏 아는 체는 안 했는데, 먼저 김 선배가 다가왔어요. 상당히 의외였달까요. 저는 만약 그렇게 남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면 민망해서라도 모르는 척했을 거예요.”
 “그가 상담하면서 마구 울던가요?”
 “격하게 울었다는 점이 이상한 점은 아니었어요. 저, 그런 상담 프로그램 꽤 자주 다녔거든요. 많은 이들이 와서 오열하고 그런 풍경은 익숙해요. 그런데 김 선배의 이상한 점은, 그냥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다는 점이에요. 보통은 감정이 격해져서 크게 울거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거든요? 그런데 김 선배는 와서 눈물을 흘리고만 있었어요. 주룩주룩 일정하게, 무슨 눈물 흘리는 기계 마냥 내내 울기만 했어요.”
 “우는 이유나 왜 상담을 왔다던가 그런 것에 대해 말은 안 하던가요?”
 “그 점이 웃긴 점인데요, 상담 선생님께서 그런 점에 대해 물어보면 “아, 저는 오늘 그냥 눈물을 흘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크게 신경 쓰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아주 정중하게 말하는 거 있죠. 선배는 그저 울려고 온 사람이었어요”
 “참 이상하군요. 기이하다고 해야 할까요?”
 “처음에야 저 사람 여길 대체 왜 온 거지, 싶었지만 이내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상담 회기가 끝날 때까지 선배는 자기 차례마다 눈물을 흘렸고 나머지는 그런 선배를 존중해 줬어요.”
 “김 선배가 말을 건 건 언제였습니까?”
 “정확히 5회기 때였어요. 상담이 끝나고 나올 때 과방 가서 커피 한 잔 마시지 않겠냐고 했고 날도 춥겠다, 개인적인 궁금증도 있겠다 따라가지 않을 이유가 없어서 같이 갔어요.”
 “왜 울기만 하는지 말해주던가요?”
 “직접 물어봤어요. 왜 와서 울기만 하냐고. 말 못 할 아픔이나 슬픔이 있는 거냐고 물어봤죠.”
 “완전히 직구네요.”
 “어렸을 때니까요. 그리고 너도 힘들고 나도 힘든 거 아는 사이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하여간 그는 제 질문을 듣고 잠시 생각하더니 아직은 비밀로 두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면 언젠가는 말해주겠다는 뜻이네요.”
 그렇다. 그는 다짐이라도 하는 듯이 언젠가 꼭 말해주겠다고 먼저 약속까지 했다. 
 “그는 정말로 말해줬어요. 그렇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왜 울었는지는 다음에 이어서 얘기하죠.”
 그 이후로 목요일마다의 방문은 몇 주간 이어졌다. 그는 올 때마다 늘 쿠키 세트라던지, 김밥이라든지 주전부리를 챙겨왔다. 나는 매번 똑같이 커피를 준비하고, 그에게 조금씩 커피 내리는 법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물을 너무 빠르게 붓거나 성급하게 드립백을 뺐지만, 이제는 혼자서도 곧잘 내렸다. 그리고 늘 앵무새 설탕 조각은 잊지 않았다.
 그가 커피를 내릴 동안 나는 그와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들을 말해주었다. 선배와 내가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 주로 서로 거의 대화하지 않은 채 그는 책을 보거나 나는 뜨개질을 하거나 멍을 때렸다. - 내가 모두와의 연락을 끊고 칩거했을 때 대뜸 집으로 찾아와 스웨터를 하나 떠달라고 명령했던 일 등 자잘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졌다. 그는 바닥을 쓸거나 설거지하다가도 내가 뭔가 떠오른 것처럼 보이면 가만히 멈춰 서서 어서 얘기해 보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주절주절 잘만 떠들면서도 선배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 그 이야기만큼은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둘 다 느끼고 있었지만, 그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점점 기억나는 이야기가 적어져서 평상시에 하나씩 생각날 때마다 메모장에 적어 두는 준비성이 필요해진 때, 김 선배의 동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그가 날짜를 착각해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그러나 날 찌르는 듯한 날 선 시선을 느끼고는 김 선배의 동생임을 알아보았다. 그 시선이 아니었다면 정말 못 알아보았을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그 둘은 쌍둥이였다. 그는 숨을 가다듬기도 전에 쏘아붙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형의 미친 짓에 어울려 주지 말아요.”
 어디까지 말해도 될지 몰라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는 예전의 김 선배가 아닌 거, 알죠?”
  큰 한숨 소리. 그는 당장이라도 뻗어나갈 소리를 억지로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당신도 그 미친 소리를 믿어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우리 부모님만 머리가 이상해진 줄 알았는데 여기 한 명 더 있네, 더 있어.”
 우선 그에게 물 한 잔을 건넸다. 그는 단숨에 들이키더니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6년 전 형이 실종된 후, 올해 결국 실종 선고를 받아서 가족들도 찾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 6개월 전쯤 야산 속 동굴에서 형이 발견되어 가까스로 구조할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2년 하고도 몇 개월 동안 동굴 속에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생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극한의 상황을 버티다 정신이 이상해졌는지 집에 돌아온 이후 자꾸 자신이 예전의 형이 아닌 다른 존재라고 주장한다. 엄마도, 아빠도 처음에는 정신과에 보내 보려고도 하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자신이 렙틸리언이라는 해괴망측한 주장만 빼고는 너무나도 멀쩡해 집에서도 반 포기 상태이다. 그러나 자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 나와 같은 DNA를 가진 형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졌을 리 없다. 그래서 자신은 앞으로 몇 개월간 형을 되돌리는 데 전념하기로 결심했고, 지금 직장도 휴직한 상태이다. 형이 목요일마다 어디를 가는 것 같길래 뒤를 쫓아봤더니 당신이었다. 형이 실종됐을 때 경찰에 가서 증언도 해주고 참 고마웠지만, 형의 회복에 당신은 전혀 도움 될 것 같지 않다. 이제는 형이 방문하더라도 점잖게 돌려보내줬으면 좋겠다. - 라는 식의 이야기였다. 말을 마친 그는 왔을 때처럼 쌩하니 나가버렸다.
 나는 황망한 심정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목요일이 되었고, 나는 커피를 준비하지 않았다. 가게 문도 닫아두었다. 그저 정중앙의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할 말을 가다듬을 뿐이었다. 무언가 달라진 걸 느꼈는지 그는 멈칫거린다.
 “오늘이 마지막인 거군요.”
 “이제 말해줄 이야기는 하나만 남았으니까요.”
 그가 자리에 앉으려 코트를 벗을 때,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건 나만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처음으로 감색 코트 대신 질 좋아 보이는 까만 코트를 입고 온 것이다.
 “김 선배가 왜 맨날 울기만 했는지 말해준 건 그가 실종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였어요.”
 코가 아릴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다들 롱패딩을 껴입고 발을 동동거리며 다니는데, 김 선배는 그저 감색 코트 하나 덜렁 입고 와서 보자마자 춥지도 않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이젠 추운 것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추운 사람의 기색이 없어 나도 모르게 그런가보다 납득했다. 그러면 안됐는데.
 “갑자기 불러내 놓고는 날도 추운데 밖에서 얘기하자고 해서 따듯한 커피 한 잔 뽑아 들고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덜덜 떨며 이야기를 들었어요.”
 눈 앞의 그는 아무 말이 없다.
 “한참 말이 없다가 갑자기 불쑥 말하더군요. 내가 그토록 눈물을 흘린 건 이 껍데기가, 지독히도 오랫동안 나에게 들러붙은 이 껍데기가 지긋지긋해서라고.”
 침으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어갔다.
 “세상에 대한 불만 같은 건 아니랬어요. 그냥 태어날 때부터 세상과 자신 간에 경계가 지워진 게 불편하댔어요. 남동생은 멀쩡한 걸 보면 아, 자기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나보다 이해했대요.”
 여전히 침묵을 유지한다.
 “저한테 말을 건 것도, 나는 알맹이 없이 텅 빈 채 부유하는 껍데기 같았고 자신은 껍데기를 박박 갈아 없애 버리고 싶어서 서로 잘 맞을 것 같았다고 하더군요. 너무 무례하지 않나요? 사람보고 알맹이 없다고 말하는 게. 그렇게 도피하고 싶어 하더니, 자기 속으로 숨어 들어가니 편하던가요?”
 드디어 그의 입이 열린다.
 “박피의 고통은 탈피의 고통보다 덜하더군.”
 이렇게 뜻 모를 소리를 남기고선 그는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 김 선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 가게 메뉴에 드립 커피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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