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crimosa

- 예정된 슬픈 운명 - 

김연진


인간

 “너는 앞으로 그것들로 살게 될 거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자연히 수명이 다하거나, 운이 좋아 천적에게 잡아 먹힌다면 다음 생으로 넘어가겠지. 끝까지 살아낸다면 그땐 네가 원하는 삶을 주마. 정해진 기한은 없다. 몇 개의 삶을 살게 될지 그것 또한 알 수 없다. 언젠가 충분히 준비가 되면 다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너의 선택이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아. 그만두고 싶다면 언제든 그렇게 해라. 방법은 네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말에 동의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의 내 생은 끝을 맺었다. 그리고 곧바로 두 번째 생이 시작되었다.


나비

 다시 태어난 나는 나비였다. 대체로 노란 바탕에 검은 무늬가 빼곡한 것이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했다. 보통의 나비들은 평생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 테지만 얼마 전까지 인간이었던 나는 달랐다. 풀잎에 맺힌 이슬, 땅에 고인 물웅덩이 따위가 모두 내 거울이었다.

 몸이 작고 움직임이 굼떠 온갖 포식자들을 두려워했던 애벌레 시절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번데기 옷을 벗고 날개를 말리던 순간부터 내 마음은 환희로 차올랐다. 마침내 이름 모를 들풀 줄기에서 날아올랐을 때, 세상이 뒤집히는 짜릿한 전율에 휩싸였다. 나는 꽃꿀의 달콤한 향기마저 외면한 채 한참을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그러다 숨이 차면 빨갛고 노오란 꽃잎에 내려앉아 숨을 돌리고 다시 날아오르기를 반복했다. 아주 고상한 삶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기준으로 채 며칠은 흘렀을까. 양옆으로 높게 자란 풀잎 사이를 비행하던 나는 덜컥, 하고 몸이 걸리는 것을 느꼈다.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옆구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열심히 날개를 퍼덕여 보았지만 이내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졸음이 밀려오는 탓에 나는 속절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거미

 다시 눈을 뜨니 세상이 어지러웠다. 처음에는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화면은 정지해있었다. 다만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모든 방향을 볼 수 있었다. 마치 360도 전 방향을 탐지하는 구식 CCTV 화면 같았다. 나비일 때의 경험을 살려 비교적 맑은 물웅덩이를 찾았다. 아주 익숙하고도 징그러운 모습이 수면에 비치고 있었다. 나는 여덟 개의 눈으로 그 형상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풀잎 꼭대기에 엉덩이를 붙이고 힘을 주었다. 곧 실 한 가닥이 삐져나와 내 몸을 지탱했다. 나는 본능이 이끄는 대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실을 뿜어냈다. 약간 탈진하여 배 속이 허하다고 느낄 때쯤 그럴듯한 보금자리가 완성되었다. 내집마련은 거미에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공들인 보람은 있어서 날파리며 나방 같은 것들이 꽤 쏠쏠하게 걸려들었다. 나비 시절에 꽃꿀을 빠는 것에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는데, 아무래도 벌레를 먹는 데는 마음의 결심 같은 것이 필요했다. 예상과 달리 그것들의 체액은 달콤쌉싸름해 맛이 좋았다. 가끔 나비나 무당벌레처럼 아름다운 것들이 그물에 걸릴 때면 나는 고급 식당에라도 온 사람처럼 격식을 갖춰 식사했다. 그것들은 특별히 맛이 좋았다.

 터를 잡은 이후 나쁘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몸에 변고가 찾아왔음을 눈치챘다. 어엿한 성체가 된 나는 이 육체가 짝짓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 시절에 보았던 다큐멘터리에서 짝짓기 도중 잡아먹히는 거미를 본 기억이 떠올라 일순 두려움이 일었다. 하지만 본능에 못 이겨 구애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보다 훨씬 큰 암컷이 찾아왔고, 나는 절정의 순간 짝짓기 상대인 그녀에게 잡아먹혔다.


다시, 거미

 다시 눈을 뜬 나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풍선 줄에 매달린 어린아이처럼, 꽁무니에 매달린 작은 실타래로 바람을 타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행을 즐겼다. 땅에 내려서고 나서야 내 정체를 알았다. 탁 트인 너른 시야와 여덟 개의 다리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발디딤이 반가웠다. 지난 생과 같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무당거미였다.

 다시 거미로 태어난 나는 의아했으나 일단은 하던 대로 적당한 자리에 집부터 짓기로 했다. 지난 생에서 가로등 밑에 줄을 친 거미가 밤마다 몰려드는 나방들로 포식하던 것을 봐둔 터라, 목 좋은 자리에 그물을 치고 호의호식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거미의 삶은 아주 만족스러웠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었고 밤에는 사방이 훤히 밝혀져 있어 마음 놓고 식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에 드는 먹이만 취해 맛을 음미했다. 포동포동 살이 오른 나는 매력적인 암컷이 되었다.

 또다시 짝짓기 철이 다가왔고, 이번에는 내가 결정권을 갖게 되었다. 여덟 개의 눈이 똘망하고 다리가 제법 늠름한 수컷을 골라 관계를 맺었다. 목적을 이룬 뒤에는 그를 깨끗이 먹어 치웠다. 거미의 몸으로 같은 거미를 먹는 행위는 알 수 없는 쾌락을 안겨주었다. 인간일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내가 잡아먹은 수컷의 정자로 알들을 수정시켰다. 인간 시절에는 남성이었던지라 아이를 낳는 경험이 무척 낯설었다. 느껴지는 몸 상태로 미루어 나는 겨울을 넘기기 어려울 듯했다. 아쉽게도 부화를 지켜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나는 몹시 빠르고 거대한 무언가에 잡아먹혔다. 배가 터지고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에도 고통은 없었다. 단지 밑에 남겨두고 온 알들이 무사히 부화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나는 이 반복되는 생에서 몇 가지 규칙을 찾아낼 수 있었다. 

 우선 종을 막론하고 어린 시절의 일은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 대체로 내가 새로운 생을 자각하는 지점은 변태를 거치거나 어느 정도 성숙한 개체가 되는 시점이었다.
 막 둥지를 벗어난 나는 몸집이 작고 회색빛이 짙게 섞인 노란 새가 되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암컷 거미의 삶을 마감하기 직전에 노랗고 큰 물체가 날아와 나를 낚아챘던 것 같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나를 잡아먹은 생물로 태어나는 것이 또 다른 규칙인 듯했다.

 이때쯤 나는 오만해졌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여러 번 새로운 삶에 완벽히 적응해 낸 데다 꽤 고등한 생물인 나는 전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실제로 거미를 비롯한 곤충뿐 아니라 작은 물고기까지도 잡아먹을 수 있었고, 나비보다 훨씬 커다란 날개로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자유롭게 하늘을 누비는 동안 많은 것을 보았다. 아득히 높은 곳에 올라 바쁘게 돌아가는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게 특히 재밌었다. 조그맣고 빽빽한 그들은 알록달록한 벌레들의 무리를 연상케 했다. 뻥 뚫린 하늘에서 나는 무한히 자유로웠다. 그 황홀한 감각에 도취되어 나는 새로 산다는 것에 깊이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점점 이전 생들이 아득해지며 처음 이 시련에 뛰어든 이유가 잘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애써 머리를 굴려도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없었다. 이래서 새대가리라는 말이 있나 싶었다. 한참 끙끙대고 나서야 가까스로 처음 “그”를 만났던 때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

 “너는 곧 죽는다.”
 
 그에게서 들은 첫 마디였다. 만약 여기가 책 속이고, 위의 대사가 그 첫 문장이라면 그것참 진부한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는지 그의 외향은 그야말로 참신했다.

 그는 두 발로 꼿꼿이 서 있었다. 내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큰 키였다. 서는데 두 개를 사용했을 뿐, 몸통에는 6개의 다리가 더 달려있었고 눈도 여러 개였다. 머리에는 둥그렇게 말린 뿔이 자리했고 피막 형태의 날개가 등 뒤로 돋아나 있었다. 몸통 일부에는 비늘이 돋고 일부는 털에 덮여 있었으며 엉덩이 아래로 가오리처럼 침이 달린 꼬리가 늘어져 있었다.

 온갖 생물들의 특징을 잡다하게 섞어놓은 모습이었으나, 그 모든 게 이상하리만치 조화로워 전체적인 인상은 단정했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곧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살길을 알려주마. 하지만 죽는 것만 못할 수 있다. 그래도 살고 싶나?”
 나는 일단 기다렸다. 깊이 고민했던 건 아니고 그냥 상황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수상한 사람이 위와 같은 제안을 하면 먼저 의심부터 하는 게 마땅하나, 죽을병에 걸린 소년에게는 딱히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는 수상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둥글게 말려 올라간 뿔을 쓰다듬거나, 별안간 꼬리를 탁탁 내려치기도 했다. 내가 잠자코 있으니 그가 말을 이었다.

 “도중에 포기해도 좋다. 원하는 생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겠지. 내게 허락을 구할 필요도 없다. 모든 선택은 네 몫이다.”
 나는 하겠다고 답했다. 그 이상의 말은 덧대지 않았고 그도 딱히 이유를 묻지 않았다.
 “네가 죽는 날 다시 돌아오마. 궁금한 게 있다면 지금 말해라.”
 딱히 궁금한 게 없어서 이름을 물었다.
 “...라크리모사.”
 기억하기 힘든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용건을 마친 그는 미련 없이 떠났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화창한 여름이었다. 우리는 병실 창밖의 단풍이 채 붉게 물들기도 전에 다시 만나게 되었다.

 “예정대로라면 나를 다시 보는 건 삼 년 후였어야 했다. 창문으로 뛰어내렸더군.”
 
 ‘날아오른 겁니다.’라고 답했다. 이유를 묻기에 ‘기다리기 지루해서’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냉기가 돌았다. 의외였다. 저리 험상궂게 생긴 존재가 목숨을 담보로 한 제안을 할 때는 응당 원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듯, 그도 나를 애타게 기다렸으리라 여겼는데 반가운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땅을 디딘 둘과 팔짱을 낀 둘을 제외한 나머지 네 개의 다리로 무언가 셈을 하는듯했다.

 그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나비의 생이 시작되었고, 살다 보니 지금은 새가 되었다. 여태까지는 꽤 만족스러웠다. 좁은 침상에 누워 죽을 날만 기다리던 때보다는 지금이 낫다. 그걸로 족했다.

 생각이 정리되자 나는 다시 새의 삶으로 돌아왔다. 복잡한 것들은 전부 잊고 그저 날개를 펼치고 싶었다.

 젊고 부주의했던 나는 점점 더 빠르게, 더 멀리 날았고, 어느 날 보이지 않는 유리창에 부딪혀 머리가 깨짐으로써 짧은 생을 마감했다.


개미

 정신을 차린 어느 날, 나는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늘을 누비던 날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번에는 또 어떤 삶을 살게 된 것일까. 문득 아랫배가 뻐근하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내렸으나 앞이 어둡고 흐렸다. 눈이 잘 보이지 않아 당황했지만 이내 다른 감각이 대신 작동하고 있음을 느꼈다.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느낌인데, 몸이 잠깐 찌릿, 하고 나면 머릿속에 해야 할 일이 떠오르는 식이었다.

 그래도 몇 번의 생을 거치며 경험이 쌓인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몸에 신경을 집중했다. 꼼지락거리는 다리는 여섯 개가 달려있고, 머리와 배 부분을 각각 다른 각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머리에는 더듬이가 돋아나 있었고 강인한 턱도 느껴졌다. 여러 가지를 조합해보자 개미라는 결론이 나왔다. 순간 허탈했다. 새 다음이 벌레라니, 한순간에 자유인에서 노예로 추락한 심정이었다. 그래도 개미는 곤충에 속하니 이번 생이 그렇게 길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몇 마리의 개미가 내 앞으로 음식을 날랐다. 나는 잠깐 어리둥절했지만, 배가 고팠던 관계로 일단 먹었다. 그런데 개미들은 계속해서 내 방으로 음식을 밀어 넣었다. 별다른 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면서도 페로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느 개미들과는 다르게 커다랗고 뒤룩뒤룩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어느 습한 저녁, 나는 처음으로 굴 밖을 나갈 수 있었다. 내게는 다른 개미들에게 없는 한 쌍의 날개가 달려있었다. 새의 그것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내 작은 몸을 띄우기에는 충분했다. 하늘을 나는 동안 잠시 과거의 영광을 만끽했다. 그리고 예의 그 찌릿한 신호가 찾아온 순간 영문도 모른 채 여러 수개미와 관계를 맺었다. 정사를 곁들인 난잡한 비행을 마치자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여왕이 되었다.

 그날의 비행 이후 날개가 돋은 부위가 간지럽고 점차 물러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잔뜩 힘을 주며 버텼다. 새로운 군락이 세워졌고, 산란을 시작했다. 다행히 암컷 거미 시절에 알을 낳아본 경험이 있어 당황이 덜했지만 고통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고백건대, 내가 낳은 알들이 훌륭한 일개미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모성이라는 것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우습게도. 사랑스런 그들은 제 어미가 선물한 강인한 턱으로 그녀의 유일한 자랑거리인 날개를 뜯어냈다. 나는 끔찍한 배신감에 몸부림쳤다.

 나는 그들의 몸을 창조했으되 영혼을 불어넣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렇게 위대한 존재일 수 없었다. 나는 직책상 여왕이었지만, 나와 일개미들 모두가 빌어먹을 페로몬의 노예일 뿐이었다.

 산란공장으로서의 내 역할은 계속됐다. 배가 계속해서 불러왔고 나는 끊임없이 알을 낳아야만 했다. 좁은 굴에 갇혀 꾸역꾸역 음식을 받아먹으며 그 짓을 반복했다. 언젠가 끝나겠지, 하며 버텼지만 아주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몸은 전혀 쇠하지 않았다. 먹고 낳고, 또다시 먹고 낳고를 반복했다. 나는 그만 미쳐버릴 것 같았다.

  끊임없이 불러오는 배와 경쟁하듯, 원래도 먼지만 했던 뇌는 갈수록 쪼그라들고 있었다.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 버거웠다. 어느 시점이 지나자 고통은 사라지고 무언가에 취한 듯 몽롱한 날들이 이어졌다. 나는 때때로 나비가 되어 분홍 꽃잎을 붙들고 춤을 추었다. 어느 날은 거미가 되어 그물 위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펼쳤으며, 가끔은 새가 되어 드높은 하늘에서 날개를 접고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딱 한 번, 두 다리로 땅을 딛고 섰던 인간 시절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게도 그토록 자유로운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검고 탄력적인 여섯 개의 다리를 가지고 그 어디에도 갈 수 없었다. 그 지옥 같던 날들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늙고 쇠하여 알을 낳지 못하게 된 나는 무리에서 버려졌고 깊은 땅속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지렁이

 작고 쭈글쭈글한 벌레 한 마리를 어떤 짐승이 먹어주었던가. 나는 또다시 새로운 생을 시작했고 흐릿했던 시력마저 완전히 잃게 되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거기에 작은 소리조차 들리지 않으니 우주 한가운데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급하게 숨을 들이켜자 온몸으로 산소가 스며들었다. 놀랍게도 나는 피부로 숨을 쉬고 있었다. 사방에서 조여드는 축축한 느낌을 통해 내가 땅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지식이나 지난 생의 경험 따위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 몸에서는 팔다리는 고사하고 눈코입의 형태조차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란하게 몸을 꿈틀거리는 것뿐이었다. 

 나는 본능에 따라 흙을 먹고 열심히 소화시켜 똥으로 내보냈다. 하는 꼴을 보니 지렁이라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여왕개미일 때는 먹고 낳는 것이 전부였는데, 그나마 낳는 것이 싸는 것으로 격하되었다. 문득 이 상황이 우스워졌다. 내게는 성대라고 부를만한 고급 기관이 없었으므로 온몸을 비틀며 열심히 웃음을 터뜨렸다.

 개미의 삶이 꽉 들어찬 고통이었다면, 지렁이는 단조로운 우울의 연속이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그런 고민은 사치에 불과했다. 고민해본들 이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개미가 물속을 헤엄치려 하지 않고, 물고기가 뭍에서 걸으려 들지 않듯, 지렁이인 나는 땅속을 기는 것 외에 다른 것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그저 이 삶이 끝나기만을 무력하게 기다렸다. 진득한 절망이 체절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나는 열심히 흙을 빚어 그의 형상을 만들었다. 달랑 머리만 완성된 그가 축축한 입을 열었다. 그래 봐야 들을 수 있는 건 내가 기억하는 말뿐이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면 그것도 좋다. 인간일 때 해봤으니 방법은 알고 있겠지? 누가 알겠나. 진짜 구원은 네 안에 있을지도.’
 
 나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가 언급한 구원을 행복보다는 안락에 가까운 의미로 받아들였다. 어느 쪽이든 이제 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인간의 생이 끝난 후로 한 번도 그를 보지 못했으니까.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나는 죽기 위한 삶을 살았다. 늘 죽음을 노래하면서도 살기 위해 발악했다. 비가 와서 땅에 물이 차면 꾸역꾸역 밖으로 기어나갔다. 게걸스레 흙을 퍼먹으며 식물의 부스러기나 동물의 배설물을 소화 시켰다. 비참한 삶이었지만 팔다리가 없는 내겐 스스로 생을 마칠 힘조차 없었다. 그저 어느 고등한 생물이 내 몸을 취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팔다리만 달려있다면, 하다못해 앞이라도 볼 수 있는 생물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그러나 지렁이 하나의 죽음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자는 없었다. 이미 인간일 때의 시간 감각은 흐려진 지 오래이나, 못해도 수년이 흘렀을 것이다. 지렁이에게는 일생에 해당하는 시간이었으므로 느끼기에 억겁과도 같았다.

 일대에서 가장 나이 든 토룡이 되어 꿈틀할 기력조차 남지 않았을 무렵, 무언가 불쑥 땅을 뚫고 들어와 나를 잡아챘다. 밖으로 끌려나가는 찰나의 순간, 기쁨보다는 ‘이제 와서?’라는 허탈함이 먼저 찾아왔다. 이내 뜨겁고 건조한 입자들이 내 몸으로 쏟아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빛이었다. 나를 집은 그것은 무척 뜨겁고 단단했다. 나는 늙은 장님이요 귀머거리였지만 본능적으로 그 거대한 것이 인간의 손가락임을 알았다. 한때 인간이었던 지렁이인 나만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드디어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인가?’
 일순 희망이 깃들었다. 하지만 나는 미물이 된 지 너무 오래되어 뇌까지 퇴화한 것이 틀림없었다. 당연한 사실 하나를 잊고 있었으니 말이다. 먹을 것이 풍부한 요즘 세상에 지렁이를 먹으려 드는 인간은 잘 없다. 나는 산채로 바늘에 꿰뚫렸고, 그대로 허공을 날아 짜디짠 물속에 내던져졌다. 피부로 호흡하는 내게 그것은 너무도 끔찍한 고통이었다.


물고기

 이어지는 생은 무척 나른했다. 땅속에 한참을 파묻혀 있던 끝에 마침내 드넓은 바다에 태어난 것은 어쩌면 그의 배려였을 것이다. 내가 이 시련을 포기하지 않도록 던져준 당근이랄까. 솔직히 별 감흥은 없었다.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별반 놀랍지 않았다. 물살을 가르는 은빛 지느러미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런 것들에 일일이 반응하다가는 이 영원한 굴레 속에서 정신이 버티지 못할 것이었다. 내가 어떤 어종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눈만큼은 동태를 쏙 빼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는 되는 대로 먹고, 다시 그만큼 배설하면서 지극히 물고기다운 일생을 보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다른 물고기에게 잡아 먹히겠지. 혹은 수명이 다해 밑바닥에 가라앉아 게나 불가사리 따위에게 몸을 내어줄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은 바다에서 살게 되리라 짐작했다. 

 물이 유난히 차던 어느 날 반가운 존재를 만났다. 늘 지나는 산호 길목에 웬 지렁이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짠물이 피부로 스며들어 온몸이 미칠 듯이 타오르는 느낌, 나는 저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한입에 지렁이를 집어삼켰고, 곧 엄청난 속도로 끌려 올라갔다. 나는 건조하고 단단한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숨이 끊기기 직전에 낚시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기억은 없지만 그 순간에 나는 지독한 환희를 느꼈으리라.


다시, 인간

 나는 인간에게 먹혔다.
그리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어느 때보다 유심히 내 모습을 살폈다. 아이의 모습이면서도 눈동자가 노랗고 탁했다. 그 안에는 어떠한 상념 같은 것들이 넘실거리는 듯했다. 나는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수일이 흘러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애가 달아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물론 다시 이 모습으로,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났음을 알았을 땐 몹시 반가운 마음이었다. 개미와 지렁이 시절이 너무도 힘겨웠기 때문일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거의 전능한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을 안겨줄 정도였다. 그래서 그가 나타날 때까지 이 달콤한 보상을 즐기려 했다. 하지만 몰라야 할 것들을 알아 버린 인간의 생이란 감히 그 어떤 형벌과도 비견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소홀히 넘길 수 없었다. 하찮은 지렁이 한 마리,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언젠가는 나였던 존재들이었다. 거미와 나비, 새와 물고기 역시 그러했다. 어쩌면 수명이 너무 짧았거나, 새끼일 때 잡아먹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생에서 나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주위를 둘러싼 작은 존재들의 안에서 나를 보았다. 그래서 그것들이 두려웠다. 인간이 인간을 먹을 수 없는 것처럼, 나는 감히 그것들을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동물만 그러할까? 내가 식물이 아니었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인간은 본래 잡식성이다, 개인의 기호나 신념에 따라 먹을 대상을 가리기도 하지만, 채식과 육식을 모두 금지당한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 이때까지 먹어왔을 수많은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입에 넣지 못한 채 빼빼 말라 갔다. 이러다가 굶어 죽기라도 한다면 사체를 처리하러 온 자연의 청소부들, 그러니까 바퀴나 파리 따위에게 먹혀 다시 그 지옥 같은 굴레에 끌려 들어갈지도 몰랐다. 나는 허기와 두려움에 지쳐 정신을 잃고 깨기를 반복했다.

 문득 몸 이곳저곳이 가렵다고 느끼며 눈을 떴을 때 아주 익숙한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바닥에 엎어진 나를 향해 여러 군상들이 슬금슬금 몰려들고 있었다.

 시커먼 개미 떼는 내 팔다리를 갉아냈다. 대부분 일개미처럼 보였고, 그 사이에 덩치 큰 한 마리는 어떻게 봐도 여왕이었다. 지렁이 몇 마리가 엉덩이 살을 파고드는 것도 보였다. 이가 없는 관계로 몸에서 가장 무른 부위를 녹여내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한쪽 시야로 길쭉한 무언가가 드리워 있었는데 따끔한 고통과 함께 앞이 점차 어두워졌다. 이빨로 추정되는 두 개의 송곳이 교차로 움직이며 내 눈을 씹고 있는듯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마 거미였을 것이다. 날개를 접고 고고하게 내려앉은 새는 열심히 내 등을 쪼았고, 나비와 물고기가 기회를 노리며 허공을 헤엄치는 모습도 보였다.

 내가 정신을 차렸음을 눈치챘는지 그들 중 일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나를 잡아먹는 건가?”
 개미군단을 이끄는 여왕이 누릇한 목소리로 답했다.
 “보시다시피.”
 “왜?”
 “이유가 필요합니까? 어차피 당신은 죽을 텐데요.”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를 만날 때까지는 죽을 수 없어.”
 “그가 오면 뭐가 달라지기라도 한답니까.”
 “그는 내게 원하는 삶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지난 모든 생을 버텨냈고 끝끝내 다시 인간으로 태어났다. 이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할 때가 온 거지.”
 “그게 아니었을 텐데요. 그는 분명 ‘준비가 되면’이라고 말했을 거예요. 그 끝이 인간이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럴 리가. 그럼 아직도 시련이 더 남았단 말인가?”
 “나야 모르지요. 난 그저 내 역할을 할 뿐입니다.”
 “네 역할이 뭔데.”
 “개미의 삶을 살아내는 것. 당신과 똑같아요, 인간.”
 “똑같다고? 그럼 네게도 다음 삶이 있다는 말인가. 설마, 그가 너에게도 찾아왔었나?”
 “그럼 당신에게만 온 줄 알았나요? 오만하군요. 참으로 인간다워요. 라크리모사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라도 그를 만나게 되죠. 모두가 그의 제안을 수락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결코 적은 수도 아닐 겁니다. 우리는 모두 당신과 같은 숙제를 안고 있어요. 그리고 내게 개미의 삶이 마지막이 아니듯, 당신에게도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나는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더 이상의 생을 살아갈 힘은 내게 없었다. 꿈쩍도 하지 않는 몸을 대신해 열심히 목울대를 출렁이며 절규했다. 여왕은 내 꼴을 잠시 구경하다가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보다 아래쪽에서 축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부탁인데 조금 진정하지. 식사에 방해되네.”

 나는 거미가 씹다 남긴 반쪽 눈을 아래로 향했다. 온몸에 검붉은 흙을 묻힌 지렁이 한 마리가 머리를 내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흙이 아니라 내 엉덩이 살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게 괴로우면 그만 끝내지 그러나. 혀를 물어도 되고, 방법은 많을 텐데?”
 그 무심함이 나를 자극했다.
 “그럴 수는 없다. 다음에 또 어떤 생이 찾아올 줄 알고?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까지 지나온 길은 살아서 겪는 지옥이었다.”
 “그 지옥 같은 생이라는 게 저기 있는 여왕과 나의 것을 말하는 거라면, 그것참 대단하군. 손이 있다면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야.”
 “비아냥대지 말아라. 내가 원해서 살았던 삶이 아니었다.”
 “지렁이로 태어난 것이 그리도 억울하던가?”
 “내게 물을 필요가 있나? 그저 땅속에서 꿈틀대며 먹고 싸는 게 전부였다. 내가 뭘 어쨌어야 한단 말이냐. 스스로의 생사조차 선택할 수 없는 그 무력함은 당신이 제일 잘 알 텐데.”
 “진심으로 하는 소리라면 그야말로 안쓰럽군. 다시 생각해보게. 그건 정말 자네의 선택이었나?”
 “그게 무슨 뜻이냐.”
 “정말 죽는 게 불가능했냐는 말이야. 자네가 그러기 싫었던 건 아니고?”
 “......”
 숨이 턱 막혔다.
 “나는 아닐세. 마음만 먹으면 볕이 내리쬐는 땅으로 나가 천천히 말라 죽을 수가 있어. 하물며 저기 있는 여왕은 어떤가? 당장에라도 강력한 턱으로 자기 배를 찢어놓을 수 있겠지.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죽고 사는 문제 정도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럼에도 자네는 살고자 했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도움이 될 것이네.” 
 그 말을 끝으로 지렁이는 다시 몸속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곧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거미가 내 눈을 파먹고 그 자리에 들어앉았다. 사라진 팔다리가 있던 자리엔 개미들이 우글댔으며, 새가 쪼아먹은 자리엔 날개가 돋고, 지렁이는 뾰족한 꼬리뼈에 철썩 들러붙었다. 뒤늦게 합류한 나비와 물고기는 내 몸에 각각 더듬이와 비늘을 남겼다. 그것들 모두가 꿈틀대며 나를 이루고 있음이 생생히 느껴졌다. 나는, 우리는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이때쯤 나는 고통을 잊고 단 하나의 질문에 잠식되어갔다. ‘이 미련한 삶의 끝에서 나는 무엇을 얻고자 했던가?’ 나는 가장 고등하던 시절, 첫 번째 인간의 생을 스스로 매듭지었다. 그리고 가장 미천하던 시절에 가장 간절히 살고자 했다. 그 거대한 모순의 틈새에서 라크리모사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큰 키에 여덟 개의 다리, 둥글게 말린 뿔, 길쭉한 꼬리. 이질적인 단정함이 눈에 띄는 모습 그대로였다. 순간 나를 이루는 모든 존재가 그를 향했다. 마치 온몸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뭐라도 말을 꺼내고자 했지만 이미 피까지 말라붙은 목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는 차분한 빛이 감도는 노란 눈동자를 내려 나와 눈을 맞췄다. 신기하게도 머릿속으로 그의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자격은 갖춰졌다.’ 그 순간 그가 내 모든 생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지옥 같은 원망과 함께 기대감이 차올랐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에 입을 열었다.

 “시작하지.”

 그는 가장 날카로운 두 개의 앞발을 내밀어 내 몸을 부위별로 한 점씩 썰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신중히 음미했다. 나는, 우리는 산채로 그에게 잡아먹히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가는 와중에, 우습게도 이 상황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견 후련하기도 했다.

 “...약속은 지켰다.”

 아직 온전히 붙어있는 한쪽 귀로 그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더는 생각하는 것조차 귀찮았다. 밀려오는 졸음을 막기 힘들었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 위로 웬 물방울 하나가 툭 떨어졌다. 말라버린 내 눈알은 물을 갈구하는 화초처럼 그것을 열심히 빨아들였다. 정체 모를 액체는 내 눈에 꼭 맞았다. 나는 내 것이 아닌 팔다리를 가지런히 모은 채 다가오는 죽음을 온몸으로 환영했다.


라크리모사

 그렇게 나는 라크리모사가 되었다. 머리 위에는 더듬이가 둥글게 말려있고, 엉덩이에서부터 시작된 두툼하고 축축한 꼬리가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원래 그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지만 이제 내가 라크리모사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머릿속에서 그의 시선으로 지켜본 나의 지난 생들이 천천히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은 관찰자의 시선 따위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 이를테면 감각과 감정이 모조리 전해지고 있었다. 얼마인지 모를 억겁의 시간 동안 그는 동굴에 갇혀 알 낳기를 반복하거나, 축축한 땅속에서 똥 만들기를 계속해왔다. 그의 생도 내 것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다만 그는 그 모든 순간을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개미일 때는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그의 기쁨이었으며, 지렁이로 태어나서는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사명이었다. 나비인 그에게는 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을 것이고, 물고기인 자신을 비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나의 모든 것을 완전히 공유했듯, 나도 그가 나를 통해 느꼈던 모든 것들을 생생히 공감할 수 있었다.

 방금까지 나는 그의 모습이되 아직 나로 존재하고 있었으나, 함께 지나온 생을 돌아보는 동안 우리는 완전히 동화되었다. 눈에서는 탁기가 빠져 노랗고 맑게 빛났다. 회상의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생과 생의 경계마저 엿볼 수 있었다. 나비에서 거미가 되고, 거미에서 새가 되고, 다시 개미가 되었다가 지렁이가 되던 그 모든 생의 틈바구니에서 그는 매번 내게 찾아와 물었다.

 “그만두고 싶다면 말해라. 이번 생이 만족스러웠다면 다시 그것으로 태어나게 해줄 수 있다. 인간이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면 그 또한 들어줄 수 있다. 이것은 시련이 아니다. 그저 네가 선택해 살아가고 있는 삶의 일부일 뿐. 어때, 계속하겠나?”

 그때마다 나는 고민을 거듭했다. 너무도 끔찍해 어떻게든 탈출하고픈 생이 있었던 반면, 영원히 머물고 싶은 만족스러운 생도 있었다. 그리고 대체로, 나는 내가 어떻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했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다음 생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던 셈이다. 얼마나 더 반복될지 모르는 무한한 굴레 속에서 매번 새로운 세상에 던져지기를 선택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이번 생에 만족한 채로 다시는 태어나지 않기를 선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살아가기를 선택했다. 대체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몸을 꿈틀거리거나 날개를 퍼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면 그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는 듯 내게 다음 생을 선물했다. 새로운 생이 시작되면 나는 이 틈새에서의 선택을 모두 잊고 다시금 삶과 죽음을 갈망하는 세계로 내던져졌다.

 그의 기억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최초에 인간이었던 나는 이 굴레의 시작점이 아니었다. 그전에도 나는 아주 작고 하찮은 생물이었거나, 거대한 호랑이나 고래 등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더랬다. 그는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매번 찾아와 내게 같은 제안을 했었다. 단지 내가 운 좋게 인간으로 태어났던 두 번의 생에서만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생에서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대가로 나는 이제 선택하는 자의 운명을 벗고 질문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나 명백하게, 이것은 축복이 아니었다. 나는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느낄 희로애락을 함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다시 나의 자리를 차지할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한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질문하는 자의 책임을 내려놓고 다시 모르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의 권능을 이어받았으니, 나는 내가 겪었던 가장 행복한 생을 택해 영원히 그 안에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고민하고 있자니 문득 발목께가 간지러웠다. 길을 잘못 든 개미 한 마리가 내 다리를 타고 오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것은 잠시 멈칫하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다시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 위에 올렸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작은이여, 그런 삶이라도 계속 살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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