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이후”를 걸어가기
- 박솔뫼 소설에 등장하는 광주 표상

안세진

 

1. 들어가며 - “광주 이후”라는 시공간

5월 광주 이후, 그날의 진실을 알리는 일이 곧 민주화운동이 되었습니다.
5월 광주 없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는 우리 모두는 광주에 빚진 사람들입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감사합니다.1)

 

 2021년 5월 18일 거행된 제 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김부겸 전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광주 이후”2)라는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한다. 그는 “광주 이후” 그날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진상 규명의 작업을 언급한다. 그는 “광주 이후” 비로소 가능해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호명한다. 그는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시민에게 남겨진 책무를 이야기한다. 그것은 당연해 보인다. 표현은 마땅하고 자연스럽다. 이곳에는 어떠한 위화감도 없다. 
 본고는 “광주 이후”라는 표현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에게 어떠한 위화감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지적하면서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서울 이후’, ‘부산 이후’와 같은 표현이 불가능한 것과 대조적으로 일상적인 대화 그리고 공식적인 기념사에서조차 우리가 “광주 이후”라는 수사를 위화감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왜 “광주 이후”라는 표현을 사용할 수 있는가. “광주 이후”는 어째서 가능한가. “광주 이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우슈비츠 이후’라는 표현의 의미값을 연구한 미셸 루스버그의 통찰은 “광주 이후”라는 문제적 표현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열어 보인다. 루스버그는 아도르노의 악명 높은 격언 ‘아우슈비츠 이후에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로부터 ‘아우슈비츠 이후(After[Nach] Auschwitz)’라는 수사를 따로 떼어내어 문제화한다. 루스버그에 따르면 ‘아우슈비츠 이후(After Auschwitz)’라는 수사의 존재가 방증하는 것은 ‘아우슈비츠’가 이미 시간성(After)과 공간성(Auschwitz)이 서로 교차하는 하나의 시공간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당 수사에서 ‘아우슈비츠’라는 용어는 나치 독일이 건설한 대규모 수용소와 그곳에서 일어난 대절멸이라는 사건을 중첩적으로 지시하고 있으며, 본래 폴란드 남서쪽 접경지대의 작은 공업도시를 가리키던 ‘아우슈비츠’라는 용어는 이제 수용소라는 ‘공간’과 대학살이라는 ‘시간’이 끈끈하게 묶여 하나로 덩어리진 분리 불가능한 시공간의 형태로만 포착된다. 
 루스버그의 통찰을 원용한다면, “광주 이후”라는 표현의 존재는 무엇보다도 ‘광주’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이미 하나의 시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당 수사에서 ‘광주’라는 단어는 특정한 공간을 가리키는 것을 넘어 ‘1980년 5월 18일’이라는 특정한 시간을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것은 금남로라는 ‘공간’과 1980년도 5월 18일이라는 ‘시간’을 우리의 눈앞에 동시에 현상한다. 불가역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광주의 시공간이 재생하는 총성과 함께 선연해지는 것은, 광주라는 공간이 언제까지나 1980년 5월 18일이라는 시간에 붙들려 있을 것이라는, 그리고 1980년 5월 18일이라는 시간이 언제까지나 광주의 거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광주 이후”는 우리가 상징적으로 기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으로 남겨진 것 같기도 하다. 광주라는 공간이 언제까지나 1980년도 5월 18일이라는 시간 속에 남겨져 있다면, 광주에서 살아가는 것은 결국 “광주 이후”의 시공간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광주에서 살고 있지만 결코 광주에 도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는 다만 ‘광주를 쫓아가고(After Gwangju)’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3) 광주는 이미 발생했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이후의 시공간뿐이라면, “광주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언제나 뒤늦은 시간과 뒤편의 공간에서 그날의 광주라는 도달할 수 없는 시공간을 쫓아가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실천적 과제를 부여한다. ‘김남주 이후’라는 수사로부터 착안하여 특정 대상을 ‘이후’라는 용어로 수식하는 행위가 담고 있는 상이한 의미망을 탐구한 진태원의 연구를 원용하자면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실천을 의미하게 된다.4) 첫째로, 그것은 1980년 5월 18일 광주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그것은 광주를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하나의 상징적 기점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로, 그것은 광주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역사화해야 할 후속 세대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광주 이후”의 시공간에 남겨진 주체는 광주라는 지나간 시공간을 상징적 기점으로 호명함으로써 그 이후의 존재로 스스로를 정체화함과 동시에 후속 세대로서 그것을 상속해야 할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것은 “광주 이후”라는 표현이 암시하는 시공간적인 이접(移接) 속에서 우리가 위악과 망각 없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박솔뫼의 소설 속에서 우리는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한 소설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1985년 광주에서 태어난 박솔뫼는 그의 소설에서 광주라는 시공간을 세 번에 걸쳐 방문한다. 본고는 각각 4년간의 시간을 둔 채 이루어진 이 세 번의 방문(「그럼 무얼 부르지」(2011),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2015),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2019))과 그가 남긴 짧은 메모 하나(「겨울 도쿄에서」(2016))를 경유하여 박솔뫼가 “광주 이후”에서 광주를 이야기하는 방식이 회의와 수정의 과정을 거쳐 구체화되어가는 과정을 바라보고자 한다. 박솔뫼의 소설은 “광주 이후”라는 시공간에 남겨진 우리에게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 


2. 당사자와 외부인 사이 -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럼 무얼 부르지」(『작가세계』, 2011년 가을호.)에서 샌프란시스코를 여행 중이던 ‘나’는 친구의 초대로 버클리 대학교 인근 카페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한국어-영어 스터디 모임에 참여한다.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교포 학생과 영어가 서툰 한국인 유학생이 섞여있는 해당 모임에서 스터디원은 한 명씩 돌아가며 자유로운 주제로 자료를 준비해와 발표를 하고, 스크립트에 적혀 있는 단어를 각각 영어와 한국어로 설명해가며 서로의 언어를 공부한다. 
 스터디에 참석한 ‘나’는 그날 모임의 주제가 5.18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광주 출신인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가 태어난 곳에서 30여 년 전에 있었던 일”5)을 듣게 되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고, 발표를 맡은 재미교포 해나 역시 ‘나’가 광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발표를 위해 해나가 가져온 자료는 5.18 재단에서 만든 영어 자료와 『뉴욕 타임즈』에 실린 5.18 관련 영문 기사의 편집본이다. 돌아가며 해당 자료를 한 문단씩 소리 내어 읽은 뒤 ‘나’는 이어지는 해나의 설명을 듣는다.
 그곳에서 영어로 전해 듣는 5.18의 내용은 “명백하고 비교적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처럼”(129) 들린다. 영어로 설명되는 “May, 18th”(128)은 ‘광주’라는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탈각된 상태로 감각된다. 『뉴욕 타임즈』 기사 위에 적혀 있는 5월의 이야기는 새삼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이나 “칠레의 피노체트가 저지른 일”(129)과 동일한 층위로 느껴지며, ‘나’는 짐짓 세계사적인 입장에서 그것을 객관적으로 조망해 보기에 이른다. 샌프란시스코라는 낯선 외국에서 ‘광주’라는 공간과 그곳에 부착되어 있는 ‘1980년 5월 18일’이라는 시간은 마치 어떠한 유보나 망설임도 없이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서술될 수 있는 종류의 사실처럼 보인다. 발표를 맡은 해나는 “광주가 어디 있는 도시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광주의 위치를 지도 위에서 손가락으로 분명히 가리킨다. 스크립트에 적힌 “massacre”가 무슨 뜻이냐는 학생의 질문에 그것이 “잔인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의미하며 한국어로는 보통 “학살”(130)로 번역된다고 설명해준다. ‘나’에게 그것은 마치 “영어가 사건에 객관을 주고 있”(129)는 듯한 마술과도 같은 풍경으로 감각된다. 
 이는 한국에 남겨져 있는 5.18이 언제나 극도의 모호함 속에 잠겨 있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경험했던 5.18의 모습과는 달리, 미국에서 돌아온 ‘나’가 한국어로 경험하는 5.18은 민감하고, 애매하고, 해석 불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침묵에 속(해야)하는 것처럼 감각된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광주는 5.18로부터 30주년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용했고 딱히 다른 날과 다르지 않”(136)다. 사람들은 특별히 소리 내어 무언가를 말하지 않고 대개는 입을 닫고 도청 주변을 걸어 다닌다. ‘나’를 둘러싼 한국어의 세계 속에서 5.18은 이야기되지 않고 불러지지 않는다. 도청 앞에서 말러 교향곡 <부활>을 연주하기로 한 기념행사는 기상 문제로 인해 취소된다. 술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어달라는 한 남자의 요구는 “그 노래를 들어서 뭐 해요? (…) 정말 듣고 싶지가 않으니까”(141)라는 다른 손님의 항의에 의하여 묵살된다. “왜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광장에서] 부를 수 없게”된 그 노래는 술집에서조차 불리지 못하고, 오직 그것을 대신하는 “레퀴엠”(141)만이 어색한 은유처럼 가게에 울려 퍼질 뿐이다. 
 객관적으로 조망되고 세계사적으로 위치 지어지는 ‘샌프란시스코의 광주’와 극도의 모호함과 침묵 속에 잠겨 있는 ‘한국의 광주’ 사이의 메워지지 않는 격차는 소설 속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나’는 먼저 자신이 샌프란시스코의 세계 속으로 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5.18이 어떠한 유보도 없이 말해질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시공간 앞에서 강한 위화감을 느낀다. 그곳에서 영어로 이야기되는 ‘May, 18th’는 광주에서 한국어로 이야기되거나 이야기되지 못하는 ‘5.18’과 겹쳐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해나와 달리 ‘나’는 광주라는 공간을 지도 위에서 손가락으로 짚어내지 못하며 그날 광주에서 일어난 것이 학살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지도 못한다. ‘나’에게 광주는 “아주 복잡한 지도”(145)처럼 보이며, 그것은 한편으로는 어디에나 있는 시간인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디에도 없는 공간인 것 같기도 하다. 그날의 진실은 이제 해석의 프레임 속에서 오직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 있을 따름이며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137)는 현실을 ‘나’는 누구보다 강하게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가 광주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 허락되는 것도 아니다. 광주의 술집에서 ‘나’는 몇 년 전 교토의 한 술집에서 우연히 중년 일본인 남성과 광주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곳에서 ‘나’는 일본인 남성으로부터 “너는 광주 사람이니까 너도 다 아는 사람이지”(146)라는 질문을 받고 대답하지 못한다. 회상 속에서 ‘나’는 자신이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정확히는 “광주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날의 ‘광주’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또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당사자로서 진실을 담보하기에는 지극히 연약하고 뒤늦은 이후 세대로서의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며, ‘나’는 다만 “어떻게 다 알아요? (…)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은 거요. 거기에 사람들이 있었던 거요”(146)라는 수화자 없는 질문을 공중에 내뱉는다.
 소설에서 샌프란시스코와 광주라는 두 공간을 경유하며 ‘나’가 획득하게 된 것은 자신이 둘 중 어떠한 세계에도 속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나’는 광주의 세계에도 샌프란시스코의 세계에도 진입할 수 없다. ‘나’는 5.18을 자신의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당사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을 완전한 바깥의 시선으로 조감할 수 있는 외부인도 아니다. ‘나’는 광주라는 시공간 속에 완전히 속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거기에서 빠져나와 샌프란시스코의 시공간으로 도약할 수도 없다. ‘나’는 그와 같은 “명확한 세계”(145)로 결코 진입할 수 없는 스스로의 중간적 존재 조건을 직시하고,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막”(145)의 존재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화자에게 허락된 세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샌프란시스코’와 ‘광주’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의 공간, ‘May, 18th’와 ‘오일팔’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의 시간인 것처럼 보인다. 서론의 논의를 경유한다면 우리는 화자에게 허락된 이와 같은 시공간을 ‘이후의 세계’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 것이다. 박솔뫼의 소설은 이와 같은 ‘이후의 세계’ 속에서, 광주에 완전히 근접할 수도 또 광주로부터 완전히 멀어질 수도 없는 방식으로 바로 그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나는 거기 서 있는 사람은 아니고 거기 서 있는 건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손가락으로 광주가 어디 있는지 짚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고 단지 손바닥을 허공에 내미는 사람이었다. 저기 누가 서 있어 하고 뒤돌아 걸으며 혼잣말을 내뱉는 사람. 빗방울을 모아 캔에 흘려보내는 사람. (146, 강조는 인용자)

 하지만 그렇다면 “광주 이후” 우리가 대체 무엇을 행위할 수 있단 말인가? 위의 인용문에 정리되어 있는 화자의 자기인식에 따르면, ‘나’는 1980년 5월 18일 금남로 위에 서 있던 당사자도 아니고, 광주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그 곳에 서 있던 사람의 정체를 밝혀 나갈 수 있는 외부인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손바닥을 허공에 내밀어 다만 파편적으로 감각되는 그 날의 기억을 손 위에 모으려고 시도하지만,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결코 “큰 비”(142)로 합쳐지지 못하며, ‘나’는 그것을 막연히 흘려보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박솔뫼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금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 따르면 “광주 이후” 우리는 동일시할 수 없고(서 있을 수 없음), 해석할 수 없고(누구라고 말할 수 없음), 이해할 수 없다(빗방울을 모을 수 없음). 겸손과 주저의 경계에서 판단은 중지되고 연기된다. 주체는 마치 어떤 가사(假死) 상태에 머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위의 인용문을 세심하게 읽어낸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유일하게 어떤 ‘봄(見)’의 행위가 금지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동일시할 수도, 해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기 누가 서 있”다는 것을 본다. “광주 이후”의 시공간에서 주체는 무언가를 ‘본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언가가 주체에게 ‘보인다’. 비록 ‘나’는 그것을 이해하거나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나’가 누군가를 보았다는 사실은 “뒤돌아 걸으며 [내뱉는] 혼잣말”로 사라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나’가 그곳으로부터 무언가를 보았다는 사실이다. 
 박솔뫼에 따르면, “광주 이후”의 시공간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볼 수 있다. 그것은 “광주 이후”의 윤리에 대한 박솔뫼의 탐구가 도달한 잠정적인 결론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많은 질문을 낳는다. “광주 이후”의 시공간에서 무언가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언가를 봄으로써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봄’의 행위성은 대체 무엇인가? 「그럼 무얼 부르지」 이후 박솔뫼는 그의 소설에서 ‘보(이)는 것’의 문제에 천착하며 이와 같은 질문들에 하나씩 답한다. 


3. 보이는 것을 보기 -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현대문학』, 2015년 2월호.)에서 추석을 맞아 광주로 돌아온 ‘나’는 공사 중인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을 본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그 공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건립을 위해 5.18 당시의 역사가 남은 구도청을 일부 철거해야 한다는 문제로 착공 전부터 많은 반발에 부딪혔던 아시아문화전당 공사는 그것이 시작된 이후로도 시내 한복판에서 몇 년 동안 지속되며 광주의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갉아먹”6)고 있다. ‘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갉아먹어야 무언가 올라가고 세워진다는”(160) 사실을 새삼 대단한 진리처럼 깨닫는 한편,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좀처럼 멀어질 수 없는 그 거대한 공사장 앞에서 가벼운 좌절감을 느낀다.
 ‘나’는 공사장을 기웃거리다 공사장을 가리고 있는 금속판 너머 한쪽에 놓인 간이화장실을 발견한다. 이전의 다른 곳에서도 종종 보았던 간이화장실이지만, 허물어지는 광주 구도청 앞에서 마주한 간이화장실은 왜인지 “새삼스럽게 보[여]”(164) ‘나’로 하여금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한 일본 극단의 연극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천황의 변소에 아이를 버린 조선인 위안부가 그곳에 다시 찾아와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에게 아이를 돌려달라고 애원한다는 다소 난삽하고 황당한 플롯7)으로 진행되는 연극의 내용은 작중 한 페이지를 넘겨 길게 서술된다. 
 ‘나’는 그것을 시작으로 광주에서 무언가를 자꾸 보기 시작한다. ‘나’는 구도청의 금이 간 창문 너머에서 “누구를 부르고 뭐를 찾으려 하고 아니면 입을 다물고 눈을 뜨고 걸”어다니는 “여자와 귀신”(173)들을 본다. ‘나’는 공사장 안쪽 간이화장실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버리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179)을 본다. “옛날 나조차도 본 적 없고 라디오에서나 그림책에서나 들어본 (…) 누군가 불을 밝히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고 그런 감각은 기억은”(179)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 모든 것은 어느 순간 ‘나’에게 보이고 ‘나’는 다만 그것을 본다. ‘나’는 다음과 같이 내뱉는다: “왠지 거기서 뭔가 발굴될 것 같고 그것을 찾으러 온갖 여자와 귀신 들이 밤중에 조용히 들를 것이다. (…) 나는 그런 것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168)
 ‘나’는 공사장을 떠나 광주의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보이는 것들을 본다. 이제 화자에게 광주의 모든 골목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174) 느껴진다. ‘나’가 간신히 손으로 잡고 있는 그 “팽팽하게” 당겨진 온갖 이야기들은 “놓아버리면 놓쳐버리면 줄자처럼 말려들어가 버”(174)릴 것만 같다. ‘나’는 구도청을 허물며 건설되고 있는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 대해 “무얼 할 수는 없”고 오직 허물어지고 있는 구도청의 “옆모습 일부만”(179)을 간신히 보고 있을 뿐이지만, 그곳에서 ‘나’는 버린 아이를 찾으러 돌아온 조선인 위안부를, 무엇인가를 찾으며 둥둥 떠다니는 귀신을, 깨진 유리창 앞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여자를 본다. 광주 곳곳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그것은 차라리 ‘나’를 “덮쳐오는”(174) 것에 가까워 보인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화자가 보는 것들이 소설 속에서 전혀 의미화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인 위안부와 조선인 노동자가 변소에서 만나는 일본 연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이 간 구도청 창문 뒤에 어른거리는 여자와 귀신이 대체 누구인지, 소설 속에서는 어떠한 단서도 찾을 수 없다. 화자에게는 그가 광주를 걸어 다니며 본 것을 해석하고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이 부재하며 그가 본 것은 해석되지 않은 채 남겨진다. 화자는 ‘거기 서 있’거나 ‘거기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지 못하고 다만 ‘거기에 누군가가 서 있다’는 사실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화자는 의도적으로 멈춰있으며 마치 의미화 되기 이전의 공간에 집요하게 머물고자 하는 것 같다.
 동 해 겨울 작성한 작가 노트 「9월 도쿄에서」에서 박솔뫼는 광주를 소설로 재현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해당 글에서 박솔뫼는 「그럼 무얼 부르지」와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에서 자신이 했던 작업이 결국 “멈춰 그 자리에 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238)는 것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많은 글에서 당연히 이루어지는 혹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방식대로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것을 해석하고 설명하며 그것을 의미화하고, “의의와 지켜야 할 가치”를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이윽고 “대단원의 막”(237)에 가닿는 것과는 다르다. 

이전에 나는 어머니에게 5.18 당시의 이야기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다가 사람들은 길가에 우르르 나가서 구경을 많이 했다고 했다,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하러 나갔다고 했다,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고 길에 사람들이 한번에 우르르 다니니 무슨 일이 있나 구경을 다니고 그런 이야기에는 그 말 자체를 둘러싼 여러 가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니 여전히 나는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에서 멈춰 그 자리에 앉아서 더 나아가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238-239, 강조는 인용자)

 박솔뫼는 의미를 향해 나아가지 않는다. 그는 의미화 이전의 자리에 멈춰선 채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에 집중한다. 박솔뫼의 예시에 따르면 그것은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라는 한 5.18 생존자의 사적인 증언에 멈춰 서서 그것을 더 해석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박솔뫼가 광주로 진입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처럼 보인다. 박솔뫼는 소박한 증언의 자리에 앉아, “지나치게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246), 오직 그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그리고 그의 시선이 가닿고 또 멈추는 곳은 어디일지를 생각한다. 그는 말한다: “역사라는 것[이] (…) 결국 의미화될 수밖에 없고 의미화 되어야만 하는 것일지라도 거기에 앉아 있는 상태 같은 것을 어떤 식으로든 계속 쓰고 싶었다.”(237-238) 
 박솔뫼에게 “광주 이후”라는 시공간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보이는 것을 적어 내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다양한 기억이 교차하는 “광주 이후”에서 박솔뫼는 의미화의 세계로 나아가지 않고 끈질기게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오직 자신에게 보이는 것만을 본다. 그것은 무기력하거나, 무의미하거나, 무정치적이거나, 심지어 반동적이라고 이야기될 수도 있을 테지만, 박솔뫼는 그것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러한 비난에 맞서 “여기 안에는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이 있다”(236)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하나의 선언처럼 들리며, 작게 울려 퍼지는 구호와 함께 그는 다시 광주의 골목 속으로 들어간다: “길을 계속 걸으면 어디선가 누군가 뛰어나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귓가의 목소리는 떨칠 수 없고 어깨에 짐을 진 것처럼 움츠러든 채로 계속 걷는다. 여전히 지나는 사람 없는 거리를 계속.”(「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180)


4. 산책하는 영매 -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9)


 박솔뫼에게 “광주 이후”를 이야기한다는 행위는 보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무언가를 보는 것만이 유일한 행위성으로 남아있다. 보이는 것을 정직하게 적어 내리는 것이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주체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재현의 방법론으로 고안될 때, 이제 중요한 것은 ‘더 많은 것’을 ‘더 잘’ 보는 것이 된다. 요컨대, ‘봄’이라는 행위성이 가능해지는 잠재적인 만남의 공간을 최대화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는가? 그것들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볼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보기 위해 박솔뫼가 제안하는 방식은 산책이다. ‘나’는 마치 마주치기 위해 산책하는 것처럼 보인다.10) 박솔뫼의 소설에서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그것들은 주로 특정한 장소에 부착된 형태로 등장하며, 마치 <파이널 판타지>류 게임에서 필드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적을 마주치게 되는 랜덤 인카운터(random encounter)처럼 박솔뫼의 화자는 어딘가를 걸어 다니다가 보이지 않는 것을 갑자기 마주친다. ‘나’는 광주의 골목을 산책하며 눈앞을 흐릿하게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것들을 본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그것들은 유령, 그림자, 기호, 망상, 목소리, 그리고 실루엣처럼 “흐리게 나타나지만 뚜렷하게 존재하”11)며 ‘나’는 “강제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나를 붙잡고 당기”12)지만 별로 “선택적이지 않”13)은 그들의 목소리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을 고요히 바라본다. 
 박솔뫼가 ‘보이지 않는 것과의 만남’을 위해 시도하고 있는 이와 같은 산책의 행위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기호와의 우연한 만남’이라는 테마로 읽어낸 들뢰즈의 작업을 참고할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의 맛에 의해 주인공인 ‘나’의 기억이 상기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소설의 서막을 여는 이 장면은 바로 ‘나’와 기호의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이다. 우연히 마주한 프루스트의 마들렌은 ‘나’에게 비의지적/무의식적 상기를 강요하며, 만남에 후행하는 기호의 폭력 내지 강제의 작용에 의해서 비로소 ‘나’는 사유하기 시작하고 진리에 도달한다. 들뢰즈는 프루스트의 작품을 경유하여 인간의 사유가 오직 기호와의 우연적 만남을 통해서만 촉발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은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게끔 되며, 진리는 항상 어쩔 수 없이 사유하게 됨의 결과로서 획득된다.14) 그리고 프루스트의 작품은 언제나 이와 같은 인간 사유의 절대적 수동성, 즉 ‘생각하기 위해 우리는 우선 기호와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테마로써 지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자리에서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사유를 강제하는 기호와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만남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공간’을 조직하는 것이다. 물론 만남의 장면을 구체적으로 직조하고 만남을 직접적으로 유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기호들이 교차하는 ‘만남의 공간’을 조직하고 그 우연의 장에 직접 뛰어들어 예상치 못한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다.15)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일말의 능동성은 이 지점에서만 기능한다. 들뢰즈는 자신이 전시나 영화를 보러 집 밖을 돌아다니는 행위는 모두 사유를 촉발할 만남을 위한 투자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나가고, 주의를 기울여. 만남을 위한 재료가 있을지. 영화 속에서, 회화 속에서… 나는 미술이나 영화를 보러 가는 걸 내가 하는 투자라고 이해해, 신중하게…”16)
 그러한 의미에서 박솔뫼의 산책은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주체가 감행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동성이 된다. 그것은 만남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공간을 조직하고 그 우연의 장에 뛰어들어 예상치 못한 만남을 기다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솔뫼의 인물은 광주라는 시공간 속으로 어떤 방어막도 없이 스스로를 내던지고 자신에게 도래할 만남이라는 사건을 기다린다. 강보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산책은 그렇게 거기에 있는 사물들을 만나고 그것들의 그곳에 있음을 확인하는 방법이다.”17)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창작과비평』, 2019년 가을호.)의 주인공 영우는 영화감독 이두현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생이다. 그는 생전 이두현에게 영화 자금을 후원했던 투자자 조구택의 인터뷰를 위해 광주로 향한다. 조구택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도중 영우는 막연하게 자신이 광주에서 “1980년 5월의 기억을 길을 걷는 중간에 맞닥뜨리게 될 것”18)이라는 생각을 한다. 영우는 자신이 마주치게 될 것을 설명하기 위해 “흔적이라는 말과 증거, 자취라는 말”을 생각해 보지만 그 모두가 “적절하지 않다”(205)고 느낀다. 왜냐하면 그가 산책 도중 보게 될 기억은 어떠한 측면에서 의미화되고 유용화되어 흔적이나 증거 또는 자취로 사용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것은 의미화의 과정 이전에 놓여 있는 기억 그 자체, 장소에 부착되어 있는 설명할 수 없는 것, 어떤 실재의 “등가물”19)에 가깝다. 영우는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인적 드문 광주의 골목을 홀로 걷는다. 그는 마치 텅 빈 거리에서 무언가 마주치기만을 기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학생은 뭐를 찾소”라는 어느 할머니의 질문에 영우는 고개를 숙이고 다만 “산책을 한다”(215)고 대답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우의 산책에서 ‘보는 것’을 초과한 ‘되는 것’의 체험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책을 하며 광주의 거리를 걷는 동안 영우는 “자신을 찾아오는 과거의 장면”(214) 앞에서 그것을 보는 것을 넘어 스스로가 다른 사람이 되는 체험을 한다. 영우는 산책을 하다 광주 사직 도서관 지하 보관실로 들어가 자신이 그곳에 갇혀 “오래된 종이 냄새”(216)와 함께 질식하는 상상에 빠진다. 영우는 “책보다 오래된 사람” “책보다 나이든 사람” “조기택” “조구택”과 같은 무작위의 이름들을 그의 상상 속에서 내뱉으며 마치 주문을 외듯 “이대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여기서 갇혀버리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그대로 나가버리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216)라는 말을 쉬지 않고 읊조린다. 이때 영우는 무작위의 사람들을 자신의 몸속으로 순차적으로 받아들이는 체험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트랜스 상태 속에서 영우는 보관실의 오래된 책들이 펼쳐내는 다양한 기억들에 손쓸 수 없이 빨려 들어가며 이윽고 그 기억들을 자신의 몸속으로 받아들인다. 
 ‘나 아닌 누군가’가 되는 이와 같은 체험은 작품 말미 영우가 조구택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장면에서 분명해진다. 영우의 예상과 달리 인터뷰 자리에서 조구택은 자신이 젊은 시절 영화계에 자금을 투자했던 사실을 후회하며 자신이 후원했던 이두현의 영화 역시 한낱 “우스갯소리”(218)에 불과했다고 폄하한다. 작품 속에서 영우는 기실 이두현 감독에 관해 논문을 쓰게 될 것 같다는 지극히 불분명하고 허약한 의지만을 가지고 있는 대학원생에 불과하며, 실제로 이두현의 영화를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두현과 학업적인 목적 이외의 어떤 방식으로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영우 자신이 부연하듯이 그는 이두현 감독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없으며 발언을 할 마땅한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영우는 이두현을 폄하하는 조구택의 발언 앞에서 마치 자신이 이두현의 대변인 혹은 이두현 자신이 된 것처럼 까닭 모를 분노와 슬픔을 느낀다. 영우는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219)는 것 같지만 조구택에게 이두현 영화의 중요한 점을 몇 번이고 설명한다.20) 이두현을 비난하는 조구택 앞에서 “그것을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하지 못한 것”(221)에 대해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도 한참동안 괴로워한다. 그는 이두현을 평가 절하했던 조구택의 말이 진심이 아닌 거짓말이거나 애정 표현의 일종일 것이라고 애써 생각한다.
 그 순간 영우는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이두현의 모습을 본다: “영우는 이두현이 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221) 그리고 이어지는 환상적인 서술 속에서 초점화자였던 영우는 즉각적으로 사라지고 이두현의 모습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그림자처럼 어둠 속을 걷는 이두현,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어두운 술집 안으로 들어가는 이두현, “나의 영화는 우스갯소리 우스갯소리”(221)라고 이야기하며 슬프게 술주정을 하는 이두현의 모습이 카메라 프레임을 가득 채우고, 이내 문단은 종료되며 소설은 이 년 후의 시점으로 넘어간다. 자신의 어깨 위에 앉아있는 이두현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영우는 마치 소설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순간 영우는 이두현으로 대체된다. 영우는 이두현을 자신의 몸속으로 받아들이고 이두현이 되어 그의 기억 속을 걸어 다닌다. 이것은 분명 어떠한 감정이입 내지는 동일시의 구조를 초과하는 수준의 서술이다.
 “광주 이후”의 뒤늦은 시간과 공간을 걸어 다니면서 박솔뫼는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그것들을 보고 기록하며 결국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로 받아들인다. 이럴 때 박솔뫼는 전통적인 의미의 샤먼과 닮아있는데, 그가 모종의 보수나 의뢰를 받고 선택적으로 특정한 대상을 제령한다기보다는 산책하다가 마주치는 모든 것들을 가리지 않고 일단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는 아직 얼치기 영매에 불과하다. ‘나’는 최소한의 삼투성(osmotic)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21) ‘나’는 매일 매일 산책을 하는데,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속에서 시간과 역사들은 무분별하게 상호 침투하고,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일단 그것을 모두 안으로 집어넣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 안의 ‘나’는 점점 많아지고, ‘나’는 필연적으로 포화되고, 분열되고, 소진된다.22)
 ‘나’에게 반복해서 말을 거는 그것들의 정체는 아직 불명확하고 ‘나’는 그것들이 나한테 도대체 왜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그 유산과 의도를 해독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이 무엇의 흔적이고 증거이며 자취인지 판단할 수 없고 또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순간들이 접혀져 땜질을 한 것처럼 어떤 사람이랑 어떤 사람이랑 접붙인 것처럼”23) 내가 그것들을 “너무나 깊이 이해하”24)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나’는 광주에서 보이지 않는 그것을 자꾸만 본다. 듣고 기록하고 몸속으로 받아들이며 그것을 이해했다고 착각한다. 광장을 만들고 그것과의 만남을 연습한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영사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처럼 그 장소에서 영원히 반복되어 온 것처럼 느껴지고,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그것을 보고 마침내 그것이 된다.


5. 나가며, 혹은 걸어가며 

 박솔뫼의 세 소설에는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인간이 그 시공간과 관계 맺는 불가능한 시도에 대한 끝없는 탐구가 담겨있다. 「그럼 무얼 부르지」에서 ‘나’는 당사자도 외부인도 될 수 없는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고 ‘나’와 광주 사이에 드리운 장막의 존재를 직시한다.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에서 ‘나’는 다만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적어 내리기로 결심하며 ‘나’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해석하거나 의미화하지 않고 그 자체로 놓아두는 것임을 깨닫는다.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 ‘나’는 “광주 이후”라는 시공간에 스스로를 내던지고 그곳을 산책하며 보이는 것을 보고 마침내 그 모든 기억을 몸속으로 받아들여 한 명의 영매가 된다. 
 장소에 부착한 상태로 잔존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속에서 상호 침투하는 시간과 역사들. 과거-현재-미래가 무화되는 복수성의 평면 위에서 유령들은 무엇인가를 반복하고 ‘나’는 산책을 하다가 그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본다. ‘나’는 그것들을 보고 기록하며 결국 그것들을 내 속으로 받아들인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박솔뫼의 선언으로부터 우리는 후속세대의 겸손함을 보고, 모든 기억을 받아들이는 영매가 되는 것을 자처하는 박솔뫼의 몸짓으로부터 우리는 후속세대의 죄책감을 보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소설 속에서 수많은 물음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광주 이후”라는 시공간 속을 부유하는 것을 본다. 
 박솔뫼가 택한 이와 같은 감수(感受)의 구조 속에서 ‘나’는 오직 ‘지금 이 순간’ 내게 보이는(혹은 내게 들어와있는) 그것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주체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이야기할 수 없고 그것이 보이기만을 기다려야 한다.25) 한편으로 지금 주체에게 보이는 것 역시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으며 이내 보이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나’는 지금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명확히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조금만 주의를 흩트려도 금세 절단되고 분해되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박솔뫼의 말마따나 그것은 “떠오를 때가 되어 잠시 떠오”른 것이고 언제나 “다시 가라앉”26)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솔뫼에게 “광주 이후”를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이처럼 ‘순간’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시공간 위에 거주하는 불가능한 행위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광주 이후”의 시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나’에게 보이고 또 ‘나’의 안으로 들어오는 그것을 끌어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은 사라지고 ‘나’는 다시 아무것도 보지 못하며, 길은 어두워진다. 보이지 않는 것은 다만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을 뿐이다. ‘나’는 영원한 기다림 속에 남겨진다. 
 그러나 박솔뫼는 계속해서 “광주 이후”의 골목을 걷는다.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 따위의 사소한 증언이 들리고, 술주정하는 잊혀진 영화감독의 모습이 보인다. 박솔뫼는 그 자리에 앉아 그것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그것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면 다시 일어서서 길을 걸어간다. 이런 맥락에서 박솔뫼의 소설은 기다림과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그것은 또한 발신과 수신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리고 마침내 어떤 대화와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전혀 달지 않은 블랙 캔커피”에 대한 장황한 사변이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떡과 죽과 국수의 이야기”27)처럼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고 왜 내게 말을 거는지도 알 수 없는 사소한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 속에서 영원히 이어진다. 박솔뫼는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한다: “나는 길 위에 서 있고 여전히 이름들을 불러보고 있으며 계속해서 가고 있다.”28) 그의 산책은 무한히 이어질 것만 같다. 그것은 어떤 다짐이나 용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끝]

 

 

1) 김부겸,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사」,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데이터베이스, 2021.5.18. (https://www.korea.kr/archive/speechView.do?newsId=132033221).
2) 본고는 자못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광주 이후”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문제시하고 동시에 그것이 어디까지나 기념사에서 인용된 것임을 밝히기 위해 앞으로 본문에서 해당 표현을 사용할 때마다 큰따옴표 속에 넣어진 형태로 인용한다.
3) 이 때 단어 after는 “they're chasing after something that doesn't exist”와 같은 예문에서처럼 “in pursuit” 또는 “quest of”의 의미값을 가진다. (“after,” Oxford Dictionary of English, 3rd e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4) 진태원은 80년대를 대표하는 저항시인 김남주를 다만 지나간 시대의 시인으로 간주하는 오늘날의 정치적 심성에 반발하여 그를 ‘김남주 이후’라는 수사를 통해 초혼하고자 한다. 그는 호명에 앞서 특정 대상을 ‘이후’라는 용어를 통해서 수식하는 것이 담고 있는 세 가지 상이한 의미를 탐구한다. 첫째로, ‘김남주 이후’는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김남주의 다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김남주가 활동하고 타계한 8-90년대 이후의 시간을 가리킨다. 둘째로, ‘김남주 이후’는 김남주가 하나의 상징적 기점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집단이 김남주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해방과 혁명을 정초한 하나의 사건이자 기원으로 기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셋째로, ‘김남주 이후’는 김남주를 상속해야 할 후속 세대의 책임을 의미한다. 그것은 김남주라는 사건을 계승, 선별, 비판하여 종내에는 ‘김남주’라는 초월(론)적 기원 자체를 ‘이후의 김남주’로 역사화해내야 하는 상속자의 과제를 가리킨다. (진태원, 「김남주 이후」,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35-40쪽.)
5) 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2020, 129쪽. 이후의 인용에서는 쪽수만 밝힌다. 
6) 박솔뫼, 「주사위 주사위 주사위」, 『겨울의 눈빛』, 문학과지성사, 2017, 160쪽. 이후의 인용에서는 쪽수만 밝힌다. 
7) 해당 연극의 내용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그려진다: 조선인 위안부가 변소에 아이를 버린다. 아이를 버린 후 미쳐버린 위안부는 도망쳐 산에서 산다. 천황의 변소를 짓던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가 버려진 아이를 구해서 기른다. 아이를 다시 찾으러 변소에 되돌아온 위안부는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똥으로 범벅이 된 노동자를 만난다. 위안부 앞에서 조선인 노동자는 천황 행세를 하고 위안부는 노동자를 천황으로 착각하고 그에게 아이를 돌려달라고 애원한다. (161)
8) 「9월 도쿄에서」는 2017년 발표된 소설집 『겨울의 눈빛』에 작품 해설을 대신하여 수록되어 있다. 이후의 인용에서는 쪽수만 밝힌다. 
9) 4장과 5장의 내용은 일전에 발표했던 다음의 두 글을 부분적으로 참고했음을 밝힌다. 안세진, 「미로를 빠져나가면 죽는 쥐: 들뢰즈와 울리포(OuLiPo), 그리고 만남-기계」, 크리틱-칼, 2021.5.9. (http://www.critic-al.org/?p=6544); 안세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 박솔뫼 론」, 콜리그, 2022.6.28. (https://www.colleague.co.kr/forum/view/688822). 
10) 산책의 특징 중 하나는 그것이 별개의 목적지를 전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주 이후”의 주체가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 “내 앞으로는 몇 개의 장막이 쳐져 있고 나는 그 앞으로 직선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그럼 무얼 부르지」, 152)이라면 주체에게는 이제 끝없는 우회만이 가능한 것이다. 
11) 박솔뫼, 「우리의 사람들」, 『우리의 사람들』, 창비, 2021, 22쪽.
12) 위의 책, 23쪽.
13) 박솔뫼, 「이미 죽은 열두 명의 여자들과」, 위의 책, 113쪽.
14) “진리는 결코 미리 전제된 적극적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사유 안에서 행사된 폭력의 결과이다 – 이것만큼 프루스트가 강조한 테마는 없다. (…) 사유된 것의 필연성을 보장하는 것은 마주침의 우연성이다.” (질 들뢰즈, 『프루스트와 기호들』, 이충민 역, 민음사, 2004, 41쪽.)
15) “배운다는 것, 그것은 분명 어떤 기호들과 부딪히는 만남의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 김상환 역, 민음사, 2004, 71쪽. 번역 일부 수정.) 만남의 테마로 들뢰즈를 읽어내는 발상에 대해서는 고쿠분 고이치로,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동아시아, 2015. 3장의 내용을 참고함. 
16) Pierre-André Boutang, 
“C comme Culture,” L'Abécédaire de Gilles Deleuze avec Claire Parnet, 2004. (스크립트 번역은 권구윤·이여로)
17) 강보원, 「작품 해설: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 『우리의 사람들』, 창비, 2021, 257쪽.
18) 박솔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우리의 사람들』, 창비, 2021, 205쪽. 이후의 인용에서는 쪽수만 밝힌다. 
19) 강보원, 앞의 글, 243쪽.
20) 작중 아키비스트의 입을 빌려 설명되는 이두현의 영화론 역시 주목할 만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두현의 영화에서는 “무척 인상적으로 찍힐 것이 분명하고 중요해 보일법한 장면들이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는 경우”(201)가 자주 등장한다. 그 일례가 그의 영화 「강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제사 장면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제사 풍경은 중요한 장면인 듯하지만 관객은 영화 속에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단서도 발견할 수 없다. 이두현은 이후 인터뷰에서 그것은 자신이 영화를 찍으러 간 집 이웃이 제사를 지내고 있길래 “보이는 것을 찍었”(202)을 뿐이라고 답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찍고 그것을 설명하지 않으며 정작 중요한 것을 프레임 밖에 남겨두는 이두현의 영화는 박솔뫼의 소설과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단지 과거에 죽은 이들이 있고 현재 그것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는 단순하고 분명한 사실”(201)만을 관객에게 알리고 있을 뿐이다. 
21) 이와 같은 구조에서 “광주 이후”를 살아가는 주체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감수력(感受力, patiency)’인 것처럼 보인다: “감수자(patient)는 (무언가를) 하는 자가 아니라 겪는 자이다. 행위가 아닌 수난(passion)과 수동성(passivity)의 주체이다. 감수능력(patiency)은 외부로부터 가해진 작용을 견디고 겪어내는 힘, 참고, 침묵하고, 받아들이고, 그럼으로써 서서히 변화해갈 수 있는 역량을 가리킨다.” (김홍중, 「인류세의 사회이론: 파국과 페이션시(patiency)」, 『과학기술학연구』 19, 한국과학기술학회, 2019.11., 26-27쪽.)
22) 박솔뫼의 많은 소설에서 기면은 질병처럼 반복되고 ‘나’는 손 쓸 수 없이 분열하며 뻗어나간다. 주체는 가수면 상태에서 습관처럼 무언가를 자꾸 흥얼거리고 최소한의 문장조차 이루지 못하는 망가진 언어들이 툭툭 떨어져서 바닥을 뒹군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을 자폐의 증후로 읽는 것은 박솔뫼의 소설에 대한 완벽한 오진이다. 박솔뫼의 주체는 닫혀있기 보다는 지나치게 열려있고, 바로 그 열려있음 때문에 분열하는 것이다.
23) 박솔뫼, 「매일 산책 연습」, 앞의 책, 189쪽.
24) 박솔뫼,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 앞의 책, 222쪽.
25) 방향을 바꾸어 박솔뫼에게 ‘보이지 않는 것’의 면면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는 것 역시 가능할 것이다. 박솔뫼는 광주에서 ‘길을 가다 사람들을 만나 기뻤고 빵을 주니 빵을 먹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만, 총칼에 찔려 금남로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보지 못한다. 박솔뫼는 길에 사람들이 우르르 다니니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 문밖으로 구경을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지만, 그 너머 벌어지고 있는 열띤 시위의 현장은 보지 못한다. 왜 박솔뫼에게 광주의 ‘대부분’은 보이지 않는가? 박솔뫼는 세 차례에 걸쳐 광주에 스스로를 기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혁명과 학살의 현장은 결국 포개어지지 않는다. 박솔뫼가 그가 마주하는 기억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를 선택한 기억이 언제나 우회적이고 주변적인 성격의 것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왜 그는 광주의 많은 부분을 볼 수 없는가? 그것은 왜 보이지 않는가?
26) 박솔뫼, 「겨울의 눈빛」, 『겨울의 눈빛』, 문학과지성사, 2017, 84쪽.
27) 박솔뫼, 「그럼 무얼 부르지」, 『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2020, 149-150쪽.
28) 박솔뫼, 「9월 도쿄에서」, 『겨울의 눈빛』, 문학과지성사, 2017, 246쪽.

 

[참고문헌]

1. 기본자료
박솔뫼, 『겨울의 눈빛』, 문학과지성사, 2017.
          , 『그럼 무얼 부르지』, 민음사, 2020.
          , 『우리의 사람들』, 창비, 2021.

2. 단행본
진태원, 「김남주 이후」, 『을의 민주주의』, 그린비, 2017.
國分功一郎, 『고쿠분 고이치로의 들뢰즈 제대로 읽기』, 박철은 역, 동아시아, 2015.
Deleuze, Gilles, 『차이와 반복』, 김상환 역, 민음사, 2004.
Deleuze, Gilles, 『프루스트와 기호들』, 이충민 역, 민음사, 2004.
Rothberg, Michael, Traumatic realism: the demands of Holocaust representation, Univ. of Minnesota Press, 2000.

3. 논문 및 비평
김홍중, 「인류세의 사회이론: 파국과 페이션시(patiency)」, 『과학기술학연구』 19, 한국과학기술학회, 2019.11.
안세진, 「미로를 빠져나가면 죽는 쥐: 들뢰즈와 울리포(OuLiPo), 그리고 만남-기계」, 크리틱-칼, 2021.5.9. (http://www.critic-al.org/?p=6544).
_______,「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 박솔뫼 론」, 콜리그, 2022.6.28. (https://www.colleague.co.kr/forum/view/688822). 

4. 기타 자료
김부겸, 「제41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기념사」,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데이터베이스, 2021.5.18. (https://www.korea.kr/archive/speechView.do?newsId=132033221).
Boutang, Pierre-André, L'Abécédaire de Gilles Deleuze avec Claire Parnet,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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