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백제윤

1. 편의점

카운터 앞에서 담배들을 잠시 보는 남성, 그는 성연이다.

성연        LSS 3미리 하나 주세요.

알바가 담배를 건네고, 성연이 결제를 한다.


2. 편의점 앞

편의점에서 나오는 성연, 갑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고, 피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폰을 꺼내 이것저것 보기 시작한다. 그때 맞은편 건물 2층의 창문이 느리게 클로즈업되고, 창문 안쪽이 보이기 시작한다. 창문 안쪽에는 쌍안경으로 성연을 보고 있는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쌍안경으로 성연을 몇 초가량 보다가, 쌍안경을 눈에서 떼고 폰을 입에 가까이 한 채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때 화면이 암전되고, 자막으로 제목 <멀리서>가 등장한다.


3. 진술조사실

조사실에 마주 앉아 보고 있는 제희와 경찰 영호, 제희는 2씬에서 성연을 보고 있었던 남성이다.

영호는 눈싸움이라도 하는 듯 팔짱을 낀 채 제희를 쳐다보고 있다. 제희 또한 이에 지지 않으려고 계속 영호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제희는 눈이 아팠는지, 아니면 영호의 기에 눌렸는지 눈을 잠시 내린다. 그제서야 영호는 입을 연다.

영호        왜 따라다녔어?

제희는 계속 말이 없다.

영호        (거들먹거리며) 질문이 좀 어렵나. 그럼 사실 확인부터 하지 뭐. 따라다닌 건 인정하지?

제희가 이번에도 말이 없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영호        피해자 측 말로는 따라다니면서 계속 폰에 대고 뭐라 중얼대고 있었다는데, 이것도 맞아?

제희는 이번에도 말이 없다. 그러다가 입을 연다.

제희        피해자는 어떻게 알았대요?
영호        뭐, 중얼대는거?
제희        아니, 전부 다요.

영호가 잠시 머뭇거리는데 이를 말해야 할지 말하지 않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눈치다.

영호        피해자가 신고한 거 아니야. 피해자 친구가 한 거지. 피해자는 누가 자기를 따라다니는지도 몰랐대.

제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약간 내비치는데 그 모습이 안도하는 모습 같기도 하다.

영호        얌마, 그렇다고 안 따라다닌건 아니잖아. 이제 대답해봐, 왜 따라다닌거야?
제희        대답하면... 그걸 피해자한테도 알려줘요?
영호        그지, 지금 피해자도 궁금해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변명이라도 해봐야 될 거 아니야.
제희        닮아서 간거에요.
영호        뭐?
제희        그냥 아는 사람이랑 닮아보여서 따라간거에요.
영호        (헛웃음을 보인다) 아, 아는 사람? 그럼 아는 사람 사진 한번 보여줘봐, 얼마나 닮았는지 보게.
제희        ...
영호        그거 스토커들이 많이 쓰는 수법이야, 임마. 내가 이 바닥에 몇 년 있었는데.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너 흥신소에서 왔지?
제희        네?
영호        흥신소 말이야, 흥신소. 누구 의뢰 받아서 성연 씨 쫓아다닌거잖아. 그리고 의뢰인한테 계속 전화한거고. 아냐?
제희        그런 거 아니에요.
영호        아니라면 더 문제인데... 뭐 더 큰 범죄라도 저지르려 했나?
제희        (언성을 높이며) 그런 거 아니라고요.
영호        그럼 변명을 하면 될 거 아냐. 안 하면 우린 널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어.
제희        그냥...

영호가 호기심을 보인다. 제희는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이다.

제희        아니에요.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김이 빠지는 영호.


4. 경찰서 화장실

소변을 보는 제희, 다 마친 뒤 세면대에 가 손을 씻는다. 손을 다 씻고도 물을 틀어놓은 채 거울을 본다. 본인의 눈을 응시하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때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이 화장실에 들어오는데, 그는 민수다. 민수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여유로운 듯 화장실에 들어와 소변기에 다가간다. 민수의 목에는 경찰증이 걸려 있다. 제희는 민수가 들어오자 거울을 통해 민수의 얼굴을 슬며시 보는데, 얼굴을 보자 눈빛이 달라진다. 그러고는 잠시 시선을 아래로 하여 무언가 생각하더니, 알아차린 것이 있는지 다시 시선을 원래대로 하여 민수를 본다. 제희는 상당히 놀란 눈치다. 그러고는 거울로부터 고개를 돌려 소변기에 있는 민수를 실물로 본다. 민수는 소변을 보고, 제희는 민수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 민수는 이런 시선에 아랑곳 않다가 마침내 신경이 쓰였는지 고개를 돌려 제희와 눈을 마주친다. 눈을 마주친 제희는 바로 눈을 피해버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이때 수도꼭지는 아직도 틀어져 있다.


5. 경찰서 복도

화장실에서 나온 제희는 복도에서 어슬렁거리는데, 꽤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한 손으로 턱을 잡고 어슬렁거리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발을 멈춘다. 가만히 몇 초 가량 있다가 진술조사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6. 진술조사실

박력 있게 들어오는 제희, 영호는 이런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제희를 바라본다.

제희        말할게요, 왜 따라갔는지.
영호        뭐, 아는 사람인줄 알고 갔다고 하려고?
제희        아뇨, 진짜 진실대로.

영호가 관심 있다는 듯이 눈빛을 달리한다.

제희        대신, 부탁이 있어요.


7. 진술조사실

전과 마찬가지로 제희가 피조사인석에 앉아있고, 그 맞은편에는 영호가 앉아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영호 옆에 민수가 앉아있다. 영호는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표정을 구기면서도, 민수의 눈치를 보는 듯 크게 행동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민수는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자기는 관찰만 하겠다는 듯이, 커피에만 관심을 쏟는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다가, 영호가 제희를 노려본다.

영호        너가 뭔데 이 분을 오라마라야?
민수        (영호를 말리며) 야, 너 왜 그래. (제희를 보며) 저기, 괜찮아요. 어짜피 쉬고 있었으니까. 근데 저도 궁금하네요. 왜 제 앞에서는 다 얘기할 수 있다는 거에요?
제희        절 이해해주실 거 같거든요.

잠시 모두 말이 없어진다. 제희는 이전 씬의 주저하던 기색들이 없어지고 이제는 진술할 준비가 되었다는 듯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

민수        음... 좋아요. 그럼 하나씩 물어보죠. (영호를 바라본다)
영호        (민수가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아, 예.. (국어책을 읽듯이 어색하게 말한다) 우선, 김성연 씨를 3일에 걸쳐서 미행한 것은 본인도 인정하시죠?
제희        (약간의 텀을 두고서) 아뇨, 4일입니다. 월요일부터예요.

영호가 키보드를 두드린다.

영호        4일 전... 월요일... 그럼 이제...
민수        (영호의 말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럼 이제, 어떻게 해서 따라다니게 된건가요?
제희        ‘어떻게’인가요, ‘왜’인가요?

영호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제희를 본다. 민수 또한 좀 당황한 듯 잠시 말문이 막힌다.

민수        하나를 얘기하면 하나가 해결되지 않나. 뭐, ‘어떻게’부터 들어보죠.
제희        그냥 정말, 우연이었어요.

제희는 천장의 CCTV를 본다. CCTV 렌즈가 화면을 채운다.


8. 노래방

화면을 채우는 제희의 눈, 화면이 바뀌고, 노래방의 넓은 방에 있는 제희의 모습이 보인다. 제희는 댄스 곡 MR을 틀어놓기만 하고, 본인은 야외가 보이는 창문 밖을 관찰하고 있다. 창문에는 블라인드가 있어 이를 비집고 밖을 보는 제희의 모습이 변태적이다.

제희는 창문 밖 길가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씩 관찰한다. 한쪽에서는 보드를 타는 청소년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정신 사나운 청소년들을 못마땅해하는 회사원이 혼자 걷고 있다. 다른 쪽에는 주부들이 옹기종기 모여 걸어가고 있고, 그 옆에는 한 커플이 걷고 있다. 그 커플을 살펴보는 제희의 눈은 호기심에 가득 차 보인다. 그러다가 커플 옆으로 백발의 깔끔한 옷차림을 한 노인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제희는 이 사람에 흥미를 가진 듯 유심히 본다. 노인 앞으로는 강아지와 산책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지나가는데, 노인은 자기 앞을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고 더럽다는 듯 정색하며 피하려 한다. 이 모습을 제희는 흥미롭다는 듯 본다. 노인이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때 길에서 작지만 제희도 어렴풋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유리 같은 것이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제희는 소리가 어디에서 났나 찾아보듯 눈을 돌린다. 그러다가 소리의 근원지를 찾은 듯 눈동자를 멈추는데, 전에 잠시 봤던 보드를 타던 청소년이 사람에 부딪혔고, 그 사람이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가던 유리로 포장된 커피가 깨진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회사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슥 보고는 가던 길을 간다. 부딪힌 사람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젊은 남성이고,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면서 그가 성연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성연은 잠시 정색하지만 사과하는 꼬마에게 괜찮다고 하고 다친 곳은 없냐고 물어본다. 이러한 성연의 친절한 모습을 꽤 흥미롭게 지켜보는 제희. 그는 성연을 보았다가 다시 백발의 노인을 본다. 노인은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성연을 보는데, 그가 유리 조각들을 정리하고 다시 어디론가 가려 한다. 제희는 깊이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다. 

제희가 다급히 방에 있던 가방에서 쌍안경을 꺼낸다. 블라인드를 잠시 아예 위로 젖히고 성연을 쌍안경을 통해 제대로 관찰한다. 관찰이 다 끝난 듯 쌍안경을 가방에 넣고는, 가방을 챙겨 다급히 방 밖으로, 카운터 앞으로 간다. 카운터에는 직원이 한 명 앉아있다.

제희        7번 방 다 썼어요.

제희가 노래방에서 나온다.


9. 노래방 건물 계단

제희가 계단을 다급히 내려간다. 이때 두 칸씩 뛰어내려가기도 한다.


10. 노래방 건물 앞

밖으로 나온 제희, 길가의 주차 구간에는 본인의 차가 세워져 있다. 제희는 주머니에서 키를 꺼내 차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본다. 그러다가 시선이 멈추는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연과 똑같은 인상착의를 한 사람이 걸어가는 것이 보인다. 제희는 차 시동을 켜고, 그 사람 쪽으로 가기 시작한다.


11. 진술조사실

영호        그렇게 해서 따라간 게...
제희        네, 김성연 씨에요.
영호        그럼 그냥 궁금해서 따라갔다?
제희        뭐, 그 중에서는, 그랬죠.
영호        그 중에서는?

영호가 헛웃음을 보인다. 한편 민수는 이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머릿속으로 무언가 정리하는 듯 보인다.

민수        그럼 성연 씨가 없었다면, 그 노인을 따라갈 수도 있었겠네요?
제희        ...
영호        다 말할 수 있다며?
제희        그랬겠죠.

민수는 제희에게 관심이 생긴 듯 자세를 고쳐 앉는다.

민수        이렇게 누구 따라다니는거, 처음 아니죠?
제희        (질문에 잠시 당황하다 침착함을 찾는다) 네.
민수        처음인 사람은 이런 식으로 따라가지 않죠.
영호        상습범이구만.

민수가 영호에게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참고 자기 말을 이어나간다.

민수        그럼, 따라다니면서는...
영호        너 도둑이냐?
제희        (어이없다는 듯) 예?
영호        누구 계속 따라다니면서 얘 뭐 훔칠꺼 없나 보는거지?
제희        그런 거 아니라...
민수        야!

민수가 영호에게 눈초리를 보낸다. 영호는 눈초리를 보자마자 태도를 고친다.

민수        죄송해요. 그런데 제희 씨께서 사실을 안 말하시면, 저희도 이런 추리를 배제할 수는 없어요. 따라다니면서는 무엇을 하셨죠?
제희        우선, 그 분에게 해 될 계획을 세운 건 전혀 아니에요.
민수        그럼...?

제희의 눈이 비춰진다.


12. 골목

제희의 눈이 비춰진다. 제희는 차 운전석에 앉아있다. 차는 길가에 세워져 있으며, 앞부분 차창에는 햇빛 보호용 가림막이 설치되어있다. 옆 차창에는 양쪽 모두 블라인드가 쳐져 있으며, 제희는 블라인드 사이를 비집고 밖을 관찰하고 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 한 고깃집이 보인다. 그는 쌍안경을 이용하여 고깃집 내부를 관찰하고 있다. 고깃집에는 사람이 꽤나 있고, 알바 두 명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손님들을 상대한다. 알바는 전의 그 친절한 남성, 바로 성연이다. 제희는 성연의 분주한 모습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을 짓는다. 성연은 계속 손님을 상대하다가, 사장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불러 그곳으로 간다. 사장에게 어떤 말을 듣고는, 가게 밖으로 나와 주류상자들을 찾는다. 사장 앞에서는 공손한 얼굴을 한 성연이었지만, 밖으로 나오니 짜증을 내는 얼굴로 바뀐다. 제희는 이를 보고는 미소를 짓는다.

성연이 상자를 들려다 말고 가게 문을 열어 다른 알바 한 명을 부른다. 그 알바가 밖으로 나오는데, 그의 표정은 성연이 사장 앞에서 지었던 표정과 흡사하다. 성연은 다른 알바에게 명령하듯 뭐라고 말하고, 본인은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다른 알바는 묵묵히 상자를 든다. 그러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이만 놓치고, 상자와 그 안의 주류들은 떨어지고 만다. 성연은 매우 짜증나는 표정으로 그 알바를 본다.

제희는 이 모든 과정을 쌍안경을 통해서 보고, 쌍안경을 잠시 내려놓는다. 오랫동안 쌍안경을 통해 봐서 눈을 깜빡거린다. 그리고 차에 세워진 폰을 들고는, 녹음기 앱을 켠다. 그리고 앱의 빨간 버튼을 켜고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모습이 차의 후방 창문 너머로 백미러를 통해 보이는데, 그의 말은 화면에서 들리지 않는다.

제희(NA)    녹음을 좀 했어요. 그 사람에 관한...


13. 진술조사실

민수        그게 그, 피해자 측에서 말한 ‘중얼대는거’인가요?
제희        아마도요.
민수        알겠습니다.

그때 영호가 민수에게 귓속말을 한다.

영호        (귓속말) 이걸 믿어요? 따라가서 녹음만 하고 말았다는 걸?

그러나 제희는 이게 다 들리는 듯하다.

제희        그냥 녹음은 아니에요.

민수와 영호가 제희에 집중한다.

민수        어떤 녹음이었죠?
제희        (좀 머뭇거린다) 그 사람에 관해서... 안 좋은... 그니까 헐뜯는 말을 하는 녹음이었어요.
민수        네?
제희        그냥,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간에 욕을 한다고요.

민수와 제희는 심각하다는 듯이 잠시 서로 눈을 마주친다.

영호        그 녹음, 아직 있나요?
제희        (고민하다가) 네.


14. 경찰서 계단

영호와 민수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민수        너 아까부터 그렇게 함부로 단정 지을래?
영호        이래야 술술 분다니까요. 보세요, 지금도 제가 밀어붙이니까 녹음도 준 거 아니에요.
민수        그게 밀어붙인거냐. 그나저나 이상해.
영호        얘요? 여기 오는 사람 중에 안 이상한 사람이 있나요.
민수        아니, 그렇다고 특정 형사 앞에서만 진술하겠다고 하는 애는 없었잖아.
영호        진술할 때 겁먹는 애들 많아요. 그래서 일부러 착해보이는 사람 찾아가서 진술하는 놈들도 있대요.
민수        그럼 내가 호구라는 거냐?
영호        (당황한 듯) 아뇨, 뭐,,, (제희의 핸드폰을 꺼내면서) 녹음이나 들어봐요.

영호가 제희의 핸드폰을 켠다. 녹음기 앱이 틀어져 있다. 많은 녹음들이 있다.

영호        뭐가 이리 많아...

영호는 녹음을 재생한다. 집중하여 듣는 영호와 민수, 녹음을 들어가면서 둘의 표정은 점점 굳어간다. (녹음 소리는 영상에서 나오지 않는다.)


15. 진술조사실

혼자 앉아있는 제희, 조사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시선이 멈추고, 생각에 잠긴 듯하다.


16. 플래시백

쌍안경으로 무언가를 보는 제희, 제희는 이번에도 블라인드가 설치된 차 운전석에 앉아있다. 제희는 무언가를 따라가듯 시선을 천천히 돌린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이 비춰지는데, 성연이 아닌 다른 남성이다. 그러나 초점이 흐려 남자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는다.


17. 진술조사실

제희가 앉아있는 가운데 영호가 박력 있게 조사실 안으로 들어온다. 뒤이어 민수도 들어온다. 영호는 앉아서 제희의 폰을 내려놓는다.

영호        그냥 변태인줄 알았는데, 위험한 놈이었네?

제희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침착하다. 민수는 뒤이어 앉아 팔짱을 낀 채 차분히 지켜본다.

영호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싫어할 수가 있나?
제희        ...
영호        하나 물어보자. 사람 가지고 이런 녹음을 할 정도로 그 사람을 싫어하는데, 범죄를 계획하지 않고 따라다니기만 한다는 게 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제희        너무 가까이만 가지 않으면요.
영호        그럼, 녹음을 하고, 다 따라다녔으면 ‘이제 끝’ 이러고 안 따라다니는거냐?
제희        다른 사람을 따라다녀요.

민수의 눈빛이 달라진다. 영호 또한 당황한 기색을 드러낸다.

영호        뭐?
제희        매주 월요일마다 사람 하나 정해서 따라다니는거에요. 그리고 일요일까지 이런 식으로 따라가서 녹음하는 거고요. 그 다음주 월요일에는 새로운 사람을 정해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영호        이게 재밌냐? 이게 취미야?
제희        습관이죠.
민수        그럼... 지금까지 몇 명 정도를 그렇게 따라다닌거죠?
제희        세진 않아요.

다시 침묵이 흐른다.

민수        자, 우선 피해자한테는 이 녹음에 대해 말할 거에요. 성연 씨는 자기가 범죄라도 당하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고 있거든요.
제희        아니에요, 그러지는 마세요.
영호        이건 너가 관여할 부분 아니야.
제희        그냥 닮은 사람인 줄 알아서 따라간거라고 전하세요.
영호        야! 넌 대답만 하라고.
민수        그리고 우리는, 성연 씨 얘기는 이제 알겠으니까, 다른 사람들 얘기를 좀 합시다. 이전에 따라다녔던 사람들이요. 다 성연 씨와 똑같은 방식이었나요?
제희        네, 걸린 점만 빼고는.

민수와 영호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하다. 둘 모두 무언가 얘기하려 하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제희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그러면, 기억에 남는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 얘기를 해볼게요.
민수        좋아요.
제희        한 2년 전쯤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거기가 대략... 영등포 쪽이었는데.

민수는 영등포라는 말에 눈빛이 달라진다.

제희        그때도 남자였어요. 밖에서는 소문도 좋고 다들 좋아하지만, 집에 들어오면 되게 외로워보이는 사람이었죠. 혼자 사는 사람이었거든요.
민수        (호기심을 보인다) 그리고요?
제희        그리고...


18. 골목

16씬의 플래시백과 이어진다. 제희는 한 남성을 쳐다보고 있다. 남성은 초점으로 인해 잘 보이지 않는다.

제희(NA)    저녁쯤마다 커피를 끼고 계속 산책했던 걸로 기억해요. 때문에 저도 따라다니느라 계속 움직였죠. 그냥 차도 옆만 계속 걸어다닐 때도 있었고, 드물게 공원까지 갔을 때도 있었어요.
하루는 그 사람이 산책할 때 커피가 아니라 술을 곁들였던 기억이 나요. 사실 술을 한다고 산책의 모양새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은 달랐어요. 길 가다가 사람한테 말도 걸기도 하고, 갑자기 흐느껴 울기도 했어요. 좀 위태로워보였죠.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결국 끝에 가서는 쓰러졌고 응급실에 갔죠.


19. 진술조사실

민수의 표정이 상당히 굳어져 있고, 크게 당황하는 모양새다. 제희는 이를 보고는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듯 여유로운, 그러나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한편 영호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듯 떨떠름해하며 듣고 있다.

제희        밤에는 이렇게 따라다니는 재미가 있었는데, 낮에는 정말 재미없었죠. 일만 했거든요.
영호        (시큰둥하게) 어디서 일했는데요?


20. 플래시백

18씬과 이어진다. 남성에 대한 초점이 서서히 맞춰진다. 점점 남성의 얼굴이 보이고, 다 드러난다. 그는 민수다.

제희(NA)    형사였어요.


21. 진술조사실

영호        형사..?
제희        (민수를 보며) 넵.

민수는 충격을 받은 듯하다.

제희        실려갔던 병원 이름은 아직도 기억나요. 한사랑병원...
민수        (중얼거리듯) 그래서... 날 불렀다...
영호        그게 무슨 소리에요?

민수는 몸이 많이 움직이지는 않지만,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민수        나에 관한 녹음도 있나?
제희        그렇겠죠.
민수        왜..?
제희        병적인 거에요. 다만 이걸 형사님이 알 필요는 없었잖아요. 성연 씨도 마찬가지라고요.

민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제희        이걸 모르고도 잘 살아왔잖아요. 성연 씨도 그럴 수 있다고요.
민수        그럼 어떻게 하라는 소리야?
제희        닮은 사람인줄 알고 쫓아갔다, 이게 가장 좋겠네요.
영호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지금 둘 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민수        잠시 나갔다 올게.
영호        같이 나갈까요?

민수가 조사실을 나간다. 영호는 벙찐 채로 나간 민수를 본다.


22. 경찰서 복도

밖을 향해 걸어가는 민수, 영혼이 없는 듯, 생각이 많은 듯 터벅터벅 걸어간다.


23. 경찰서 앞

민수가 경찰서 밖으로 나온다. 무엇을 해야 할지, 왜 자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쩔 줄 몰라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 몇 명이 지나가고 있다. 민수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이려 한다.

민수는 잠시 동작을 멈추고,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이 다 민수를 쳐다보고 있다. 민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씩 본다. 그 사람들은, 심지어 작게 보이는 행인마저도 민수를 쳐다보고 있다. 민수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인다.

담배 연기를 내뿜고, 민수는 연기에 가려진 아까 그 사람들을 보려 한다. 연기가 걷히고, 사람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처음처럼 그냥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그때 멀리서 보이는 한 남자만은 민수를 보고 있다. 민수는 차분한 얼굴로 그 남자를 응시한다. 민수가 그 남자를 응시하자 남자는 무언가 들키기라도 한 듯 서둘러 시선을 돌리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24. 경찰서 복도

민수가 복도로 나왔을 때보다 차분해진 듯한 표정으로 걸어들어간다. 이때 복도의 의자에 앉아있는 한 사람이 보인다. 성연이다. 민수는 걸음을 멈추고 성연의 얼굴을 몇 초간 본다. 성연은 누가 자기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는지 민수를 쳐다보고, 민수는 바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는 진술조사실로 걸어간다.


25. 진술조사실

영호와 제희가 앉아있다. 제희는 자기가 우위에 있다는 듯 영호를 조소 가득한 시선으로 보고 있고, 영호는 그런 제희의 모습에 분해 있다.

영호        뭘 한거야?
제희        .....

민수가 조사실로 들어온다. 영호는 마침 잘 왔다는 듯이 민수를 반긴다.

영호        대체 무슨 일이에요?

민수가 앉는다. 민수는 제희를 오랫동안 쳐다본다. 제희 또한 민수를 쳐다본다.

민수        닮은 사람을... 쫓아간거지?

제희가 희미하게 웃는다. 영호는 이 과정을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지켜본다.

제희        넵.
민수        그렇게 전달하면 되나?
제희        넵.
영호        지금 뭐하는 거에요?

침묵이 흐른다.

민수        몰라도 돼. (제희에게) 가봐.

제희의 얼굴이 비춰진다.


26. 노래방

6씬과 동일한 노래방에서 댄스곡 MR을 틀어놓고 가만히 앉아있는 제희, 25씬의 표정과 연결되어 무언가 생각하는 듯 보인다. 그러다가 일어나서 가림막 커튼 쪽으로 간다. 커튼 사이를 비집고 바깥을 둘러보는 제희, 제희의 시선이 멈춘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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