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진(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
김연진(분자의학 및 바이오제약학과)

시작하기에 앞서 드리고 싶은 말씀. 여러분이 「라크리모사」를 어떻게 해석하셨든 생각하신 게 맞습니다. 여러분이 느낀 게 정답입니다.

제가 쓰는 글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주제가 아니라는 건 자각하고 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는 글이 아니니까요. 오히려 삶은 고통스럽고 그럼에도 매 순간 삶의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는 입바른 소리에 가깝습니다. 그리 달갑게 들리진 않았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소설 속 여러 라크리모사를 통해서 여러분과 삶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라크리모사〉(Lacrimosa)는 클래식 음악의 제목으로 모차르트가 작곡한 레퀴엠의 일부입니다. ‘눈물의 날’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단편을 써보고자 이리저리 구상하던 중 유튜브의 〈창백한 달빛 속에서 악마와 춤 춰본 적 있나?〉라는 플레이리스트에서 이 곡을 접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노트에 손 글씨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를 일이군.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물렁한 피륙으로 이뤄진 한낱 인간이 말이야. 너는 정말 별 볼 일 없는 존재다. 너는 지렁이만큼 유연해질 수 있나? 개미만큼 성실하고, 나비만큼 아름다워질 수 있느냔 말이다. 그것들은 각각 너보다 뛰어난 존재들인데,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건 가장 하찮은 너로구나. 불쾌하군.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란 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야.”

다소 까칠한 모습의 악마 라크리모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악마가 있다면 응당 시련을 받을 인간이 있기 마련이라, 자연스럽게 주인공도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글 속에서 나비가 됐다가 거미가 됐다가 나름대로 고난을 겪었습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린 분도 계실 듯한데 저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릴 적부터 곤충을 좋아했던 터라 무의식중에 튀어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글이 결말부로 다가갈수록 라크리모사라는 존재가 분노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내비침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위 문장은 뺄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설을 쓰다 보면 그들에게 펜을 빼앗기는 순간이 있습니다. 직접 쓸 테니 나와, 하고요. 초반부를 제외하고는 계속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흘을 숨 가쁘게 끌려다녔습니다. 부족함 많은 작품입니다만 어떻게든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마친 것 같습니다. 

「라크리모사」가 던지는 질문은 뻔한 것들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낡은 고민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모두의 숙제가 아닌가 합니다. 제 글이 여러분의 숙제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부담 없이 슬쩍 들춰보세요.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라크리모사〉라는 곡을 따라가고 있으니, 잔잔하게 틀어놓으시면 조금 더 읽는 맛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은 기회 만들어 주신 대학문학상 관계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신 소중한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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