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편소설 부문 심사는 행복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예년에 비해 응모작(53편)이 월등히 많았고 수준도 높았다. 문학에 대한 학생들의 열정이 이렇게나 뜨거웠던가 새삼 놀랍고 반가웠다. 팬데믹 기간을 거쳐서인지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건네고 고민을 나누고픈, 즉 세상과 소통하고픈 열망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열망에 비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언어와 형식에 대한 고민과 자의식이 아직 뒷받침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SF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소설들의 경우,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기발한 상상력이 평면적인 구성과 언어 속에서 그 빛이 바래는 사례가 눈에 띄어 아쉬움을 더했다.

이 가운데 「예리」는 언어와 주제 장악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소설은 성에 대한 사춘기 여성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경쾌하면서도 서늘한 감각으로 묘파한다. 여성의 성을 둘러싼 온갖 모순들 속에서 정신적, 신체적 성장이 아직은 불균형한 중학생 ‘예리’의 성적 탐구가 “싸늘한 부끄러움”으로 귀결되는 과정을 치밀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을 이견 없이 대상으로 추천했다.

우수작으로 선정된 「박피의 통증」은 흔한 변신물의 인상을 주면서 시작하지만 묵직한 반전을 심어 놓아 서사의 힘을 진득하게 입증시켜 보인다. “앵무새 설탕 조각”처럼 다소 허무맹랑하고 귀여운 소설인가 싶더니 아리송한 실존적 물음을 던지며 끝나는, 발랄한 유머 감각과 무거운 주제 의식이 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외에도 가작으로 추천된 두 작품은 대조적인 매력과 장점을 보여준다. 「자정 2」는 ‘농담 따먹기’와 ‘소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또 이것을 메타적으로 성찰하면서 놀라운 언어유희적 감각을 보여준다. 한없이 가벼워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이 ‘농담’ 같은 소설을 곳곳의 냉소가 간신히 현실로 붙들고 있다. 또 다른 가작으로 추천된 「라크리모사(Lacrimosa)」는 우화적인 색채가 짙어 다소 도식적인 느낌을 주지만, ‘동물 되기’의 면면을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진중한 상상력과 관찰력이 상당한 작품이다.

아쉽게도 수상하지는 못했으나 눈에 띄는 작품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주마등, 혹은 고苦의 진리」는 카프카와 말(馬)이라는 주제에서 출발해 인생의 고(苦)에 대한 불교적 성찰로 나아가는 사고의 힘이 놀라운 작품이었으나, 소설적 구성에서 미진한 점이 많아 아쉽게도 선정되지 못했다. 

수상자들에게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고, 비 수상자들에게도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방민호 교수 (국어국문학과)

이경진 교수 (독어독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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