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과 시나리오는 각각 극장이라는 물리적인 공간과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배우의 몸을 매개로 구현될 때 비로소 그 목적을 완수하는 장르다. 무대화 또는 영상화되었을 때의 효과를 늘 염두에 두고 입체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글쓰기보다도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이 부문에 도전한 모든 응모자들의 열의와 노력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싶다. 올해 대학문학상 희곡 및 시나리오 부문에는 각 장르별로 세 편씩 총 여섯 편이 응모했다. 응모작이 많지는 않았지만 각자 뚜렷한 개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이 중 우수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관찰과 권력 사이를 오가는 시선의 문제를 다룬 시나리오 <멀리서>다. 작품은 쌍안경으로 타인의 일상을 훔쳐보는 시민과 제도권을 대변하는 경찰 간 권력의 주객전도를 통해 관음적 시선에 내재된 욕망과 그 정치적 함의, 관찰자적 시선이 표방하는 익명성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상상된 관계성에 대한 질문들을 던진다. 영화의 시선에 대한 메타적인 접근이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고 각 장면을 컨트롤하고 디테일을 배치하는 능력에서 영화 매체의 특수성과 작동 방식을 잘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글의 구성이 치밀하고 흡입력이 있어서 읽는 내내 완성된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매체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 장르를 다양한 문제의식을 담는 그릇으로 발전시켜가기 바란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을 둘러싼 승객간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 약자와 공정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내는 <초록색 의자>는 공간 배경과 상황 설정이 효과적이며 시의성 있는 주제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들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극장을 공론의 장으로 만드는 점이 돋보인다. 다만 관점을 제시하는 방식이 대부분 대사 전달에 기대고 있어서, 몸의 현존이 드러날 때 가장 효과적인 공연예술의 특징을 더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이 너희가 __하는 길이겠으리>는 고전적인 극장 사실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상징물과 비사실적 요소들을 활용하여 죽음과 애도라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낸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대사 배치, 객석 공간의 활용 등의 시도가 눈에 띄지만 효과 면에서는 의문이 남고 결말의 카타르시스로 가는 과정이 다분히 도식적인 데가 있다. 글쓴이가 여러 가지 극작술을 시험해 보고 있는 것 같아 연습을 거치면 좋은 후속작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희생>은 인공 언어를 도입하는 새로운 시도에 비해 익숙한 내러티브가 반복되고 있어서 내용이 형식을 따라주지 못한 점이 아쉽다. <죽은 사랑을 위하여>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다소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무대 언어가 강한 인상을 남겼고, <곁눈>은 아기자기한 소품의 맛이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 시나리오였다. 내년에도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은하(영어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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