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삽화: 박재아 기자 0204jaea@snu.ac.kr

매년 벌어지는 예산안 지각 처리가 올해에도 어김없이 일어났다. 지난 1일(금)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합의안을 끌어내지 못한 채 활동 기한이 종료됐다. 이어 국회법에 따라 정부가 제시한 2024년 예산안 원안이 본회의에 그대로 부의됐지만 결국 국회 본의회에서 논의되지 못했다. 헌법 제54조 제2항에 따르면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지난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하나, 올해도 어김없이 이 시한을 넘기면서 국회는 최근 10년간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매년 헌법을 어기는 행태를 보이고 말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올해 마지막으로 예산안 의결을 하게 될 21대 국회는 2021년 예산안을 제외하고는 모든 예산안을 제때 처리하지 못했다. 작년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장관 탄핵 이슈가 예산안 처리와 연계되면서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계속되다가 결국 예산안은 새해를 겨우 열흘 정도 남기고 통과됐다. 재작년에는 이보다는 나았지만 해군 경항공모함 사업과 소상공인 손실보상 지역화폐 규모 증가 등의 이슈로 예산안에 대한 갈등이 심화돼 여야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민주당의 단독 수정안이 그대로 통과됐다. 그 전 해인 2020년에는 코로나19 창궐로 인해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이나 백신 접종 등 코로나19 대책 관련 예산이 증액됐다. 코로나19로 인한 예산 증액에 반대의견은 나오긴 힘든 상황이었고 예산안은 기일 내에 처리됐다. 이런 특수한 상황 속에서야 예산안이 제때 통과될 수 있었다.

여야는 올해에도 반복된 예산안 지각 처리를 서로의 책임으로 미루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회 제1당인 야당이 예산안 처리와 같은 민생은 뒷전으로 미룬 채 방송통신위원장 및 검사 탄핵 사안에만 혈안이 된 것이 예산안 처리가 늦어진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반대로 지난 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이렇게까지 예산처리에 관심이 없는 정부와 여당은 처음”이라면서 “여당이 야당을 설득해 예산안을 통과시킬 노력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라며 정부와 여당을 비판했다. 이처럼 여야가 예산안 처리 지연의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고 있고, 최근 여야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잘못하면 새해를 불과 열흘 앞두고 2023년 예산안을 처리했던 작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시선이 많다.

민주당은 정부가 제시한 예산안을 그대로 통과시킬 생각은 없으며, 자체적인 수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알려졌다. 민주당은 최근 서울대 학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R&D 예산을 비롯해, 청년 일자리 예산, 새만금 지원 예산, 지역상품권 예산 등을 증액할 예산으로 보고 있다. 일부를 제외하곤 현 정부가 제시한 예산안과 대치되는 내용이다. 국회 고유 권한에 따라 국회에서 예산안에 대해 감액은 가능하나 결국 증액은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하므로 예산안 논의 과정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지각 처리 자체도 문제지만 정쟁으로 인해 예산안 처리가 연말까지 지체돼 예산안을 제대로 논의하지 못한 채, 쫓기듯 처리한다면 그것도 큰 문제다. 그러므로 늦었지만 예산안 처리를 위해 이제라도 여야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여야 모두 서로의 주장이 있고 그것이 정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자신들의 책무를 다한 뒤에 해야 할 것이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예산안 의결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여동하 간사

lyrikosstb@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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