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아름(협동과정 의료정보학전공)
한아름(협동과정 의료정보학전공)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블랙박스 모형이 있다. 오랜 시간을 거치지 않고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원인과 결과를 뚜렷하게 잡아내거나 설명할 수 없어도 알 수 있는 감각, ‘감’. 그러나 때로는, 긴 시간을 들여 관찰해 뚜렷한 원인에 따른 결과가 눈에 보이더라도 그 원인을 진정한 원인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있다. 관찰 연구에서 중요한 보정 대상으로 거론되는, 교란변수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나와 잘 맞을 것이라는 결론에 닿는 데는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관심사, 외모, 신체 조건, 대화 방식과 취향, 성격, 정치적 견해, 함께 나누는 경험과 배려. 기준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에 따라 도출된 결론이 언제나 현실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점수를 준 사람이 어느 순간 최고의 친구가 되기도 하는 반전. 학교나 직장에서 늘 마주치는 일상에 대한 인상이 180도 변하는 경우는 흔하다. 관찰되지 않았던 요소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다른 결과를 낳는 교란변수로 작용한 것이다. 우리는 보다 정확한 결론을 위해 매 순간 새로운 요소를 판단의 근거로 삽입한다.

원인과 결과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교란변수를 보정하는 시도는 수평적인 일상에서 나아가, 공정성이 필요한 채용 시에도 나타난다.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활발하게 적용돼 온 ‘블라인드 채용’은 직무 능력과 관계있는 요소만을 지원자 평가에 사용하는 제도로, 현재 회사뿐 아니라 대학 지원자를 선별할 때도 널리 쓰이고 있는 방식이다. 지원자의 다른 배경을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직무 능력으로 지원자를 평가하는 원칙을 고려하면, 비뚤어진 결론을 만드는 교란변수는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5년 전 금융권에서, 이 방식이 무색할 정도의 채용 비리 문제가 우후죽순 쏟아지는 일이 있었다. 2016년 하반기, A은행의 신입 채용에서 상위권 대학 출신 지원자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임원 면접 점수를 조작한 사실이 밝혀졌다. 잇따른 감사 결과 B은행에서 2015년에서 2017년 사이 임직원들이 신입 행원 또는 인턴 채용 절차에서 여성 지원자들의 합격률을 낮추기 위해 심사위원들이 부여한 평가 등급을 조정했고, C카드에서는 블라인드라는 명목하에 2017년 신입 사원 공채 과정에서 7:3의 성비를 바탕으로 서류 전형 합격자를 선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블라인드’가 아닌, 지원자의 배경이 합격의 교란변수가 된 것이다.

사람은 보이는 것을 바탕으로 믿음을 가진다. 믿음의 근거는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블라인드 너머의 진실을 모르는 눈은 불투명한 세상만을 경험한다. 첫 만남에서 최악의 평가 이후 새로운 정보를 접하지 못한 이는 영영 그 타인의 이면을 알 수 없다. 면접장으로 향한 지원자들은 비리를 알기 전까지 준비가 부족했을 자신에게서 책임 소재를 찾았을 것이다. 한정된 정보 수집에 따른 믿음은 타인의 취향과 성격을 파악하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앞으로의 인생을 설계하는 방향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에 영향을 끼친다. 알지 못하는 수면 아래의 진실들이 거짓된 원인을 지목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관찰 연구 분야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변수를 수집해 결론을 내려, 관찰되지 않은 변수로 인한 비뚤림마저 보정됐으리라 간주하는 보정 방법이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결과를 뒤집을 열쇠를 쥔 변수들은 무작위적으로 많은 변수를 모은다고 파악되지 않는다. 그들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우리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차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까. 관찰되지 않은 역학 관계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원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다각도의 창이 필요하다. 공동의 시선으로 감시해, 믿음이 더 이상 비뚤림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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