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 만난 사람들 | SBS 배정훈 PD 인터뷰

‘오늘만 사는 PD’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다. 한발 먼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고 사건의 숨겨진 내막을 추적하는 남자.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찾기 위해 직접 뛰고, 얽히고설킨 사람의 서사와 맥락을 정교하게 방송으로 담아내는 남자.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를 거쳐 〈국가수사본부〉까지 16년간 탐사 보도 및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배정훈 PD의 이야기다. 지난달 27일 목동 SBS에서 배정훈 PD를 만나, 그가 카메라를 들고 걸어온 길과 신념을 따라가 봤다.

‘관찰’에 빠진 인류학도, PD가 되다

Q.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하셨어요. 학과 생활은 어떠셨나요?

동기들과 선후배들을 정말 좋아했죠. 학과 생활을 되돌아보면 학과 내 동아리 ‘애쓰는 필름’을 부활시키면서 사람들과 같이 보냈던 시간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인류학에서 활용하는 연구 기법인 에스노그라피(Ethnography)에서 착안한 이름인데, 같이 영화를 보거나 글을 썼고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영상 제작도 하면서 3~4학년을 보냈어요. 수업도 같이 듣고 술도 많이 마시면서 좋은 동료를 얻었고요.

인류학이라는 전공에도 많은 애정이 있었어요. 책을 읽는 것만이 공부가 되는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죠. ‘내가 저 사람, 저 집단, 혹은 저 사회를 이해해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타자를 이해하고 접근하려는 인류학의 방식이 좋았어요. 원래 우리는 자기 자신 외에는 모든 게 낯설잖아요. 그런데 그 낯섦을 책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면서 풀어나가는 학문이라는 점이 너무나도 흥미로웠어요.

 

Q. PD라는 꿈을 키워가는데 인류학과에서 배운 내용이 도움이 많이 되셨겠어요.

맞아요.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때 ‘현지 조사 방법론’이라는 인류학과 학생에게 중요한 과목이 있었어요. 관심 있는 주제의 서사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필드(field)에 직접 방문하고 관련 리포트를 제출하는 건데, 당시에 저는 주한미군 문제에 상당히 관심이 많아서 동두천에 있는 기지촌을 선택했죠. 그 필드를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휴학을 했고, 월세 15만 원 정도 하는 컨테이너를 하나 구해서 4~5개월 살았어요. 생활비는 동네 학생에게 과외를 해주면서 벌었고요. 

당시 동두천은 상당히 역동적인 공간이었어요. 기지촌이다 보니 미군도 많았고,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동남아인도 많았어요. 다양한 사회적인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지는 다이내믹스(dynamics)가 인상적이었는데 그래서 한편으로는 외부인인 저에게 배타적인 공간이기도 했어요. 특히 저는 카메라까지 들고 있어서 곤란한 상황을 더 많이 겪었던 것 같아요. 욕도 많이 먹었고, 어디 한 곳 찾아가면 자주 쫓겨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런 배타적인 벽을 하나하나 뚫어내는 연습과 그 과정에서 얻은 성취에서 보람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일을 업으로 삼는 다큐멘터리에 더 눈길이 갔죠.

 

Q. 이외에도 PD가 되기까지 거쳐 온 활동들이 있다면요?

학교 울타리 밖에서의 경험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푸른 영상’이라는 다큐멘터리 집단에 들어갔어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김동원 감독이나 젊은 친구들에게도 유명한 변영주 감독 등이 만드신 영상 집단인데, 촬영을 보조하고 잔심부름도 하는 막내 생활을 했죠. 활동한 기간 자체는 길지 않았지만 어떤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 편집과 촬영은 어떻게 하는지 어깨너머로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잠시 휴학한 다음에는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 파견 사원으로 입사해서 6개월간 조연출을 맡았어요. 그때 훌륭한 가치관을 가지고 교양 프로그램과 다큐멘터리를 기획하는 PD 선배들을 보면서 이 직업이 보람차다는 걸 느꼈죠. 조금 늦게 ‘나도 한번 PD 시험을 봐야겠다’ 하는 결심을 했고 SBS에서 시험을 봤는데, 첫 직장에서만 어느새 16년 2개월 차 PD가 됐네요.

 

궁금한 이야기, 배 PD의 여정이 알고 싶다

Q. 신입 PD로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조연출로 3년 남짓 일했을 정도에 〈모닝와이드〉라는 프로그램에 배정을 받았어요. 그때 팀장님이 특별히 연출해 보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시길래 사건을 취재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선뜻 코너를 하나 제작해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방송국에서 3년 차면 아직 어떤 코너나 프로그램을 맡길 수 있는 단계가 아닌데도요. 덕분에 〈모닝와이드〉 프로그램 안에 ‘날’이라는 취재 코너를 기획했죠. 13년이 넘게 아직도 그 취재 코너가 방송되고 있어요.

 

‐ 직접 만든 코너에 내는 첫 취재물은 의미가 더 각별할 것 같아요. 

첫 아이템을 동두천 취재로 기획하면서 그곳에 오랜만에 다시 가게 됐어요. 마침 동두천에 있는 고시원에서 미군이 성폭행이나 강도·절도를 벌이는 강력 사건이 벌어졌거든요. 그런데 사건도 사건이지만, 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던 기지촌의 슬픈 면들을 화면에 함께 담아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렇게 해서 만든 첫 취재물이 이달의 PD 상을 받았죠. 첫 취재물이 저한테는 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어요.

 

Q. 〈궁금한 이야기 Y〉, 〈그것이 알고 싶다〉와 같은 탐사 보도를 많이 준비하셨어요. 프로그램 한 회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떤가요?

아이템을 찾고, 취재하고, 편집해요. 이런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는 친구보다 경찰을 더 많이 만나는 게 일상이에요. 보도하고 싶은 사건을 수사한 강력팀이나 미제 사건 전담팀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봐요. 그렇게 라포르*를 쌓다 보면 강한 미련이 남은 사건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어요. 그러면 그 내용이 방송할 가치가 있는지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가지죠. 해당 사건과 관련된 자료도 받아서 검토해 보고, 당시 수사에서 어떤 점들이 미비했는지 등을 법의학자나 범죄심리학자와 같은 각계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해요. 적합한 아이템이라는 판단이 들면 이제 2~3주간 본격적인 취재를 진행하는 거죠. 

취재가 완료되면 여러 제작진이 힘을 모아서 편집 작업에 들어가요. 〈그것이 알고 싶다〉의 경우 보통 방송 일주일 전부터 편집 작업을 시작했어요. 토요일이 방송일이면, 금요일 정도에 김상중 씨가 스튜디오에 와서 내레이션 녹화를 했던 것 같아요. 그럼 토요일 오전에 음악도 넣고 그래픽도 넣으면서 종합 편집을 시작하고, 그날 밤에 방송을 내보내요. 제가 맡았을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는 6명의 PD가 6주 간격으로 방송을 했어요.

*라포르(rapport):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또는 그 친밀도.

 

Q. 〈국가수사본부〉는 역으로 어떤 피해 사건이 아니라 경찰의 수사 과정 전반을 추적하는 점이 흥미로워요.

앞선 프로그램의 반작용이었죠. 경찰 측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사건 혹은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서 종결되지 못했던 사건만 찾아다니다가 눈을 반대로 돌린 거였어요. 사실 경찰의 90% 이상은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훌륭한 분들이시거든요. 다만 원래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언론이 소위 권력 기관을 ‘띄워주는’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을 바꾼 거죠. 그렇다면 이 직업 안으로 직접 들어가서, 경찰이 얼마나 힘들게 범인을 검거해 내는지, 그 과정을 그들의 시선으로 보여주면 어떨까.

 

‐ 다른 직업군의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보니,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점들도 있을 것 같아요.

PD는 어떤 집단을 이해할 때 그들이 쓰는 언어를 이해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방송국에도 방송국만의 언어가 있고, 또 기자와 PD의 언어가 다르거든요. 마찬가지로 경찰이 쓰는 언어와 조직 폭력배가 쓰는 언어도 또 다르죠. 그 사람들의 언어를 맞춰 써야만 그들이 마음의 문을 빨리 열기도 하고 대화도 잘 통해요.

첫인상과 첫마디가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의 결과를 결정짓는 데 적어도 3분의 1 정도는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중요한 만남이 있을 때는 먼저 상대방이 구사하는 언어에 대해 이해하고 첫마디를 준비해가야 하는 거죠. 새로운 곳에서의 기선 제압을 위해서든 ‘난 여기까지 알고 있어’라는 암시를 하기 위해서든 그런 대화의 기술이 필요해요.

 

Q. 취재 과정이 피로하거나 난처한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탐사 보도 프로그램을 10여 년 이상 하면 다른 프로그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질 좋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취재 대상 대부분이 범죄자거나 용의자니까요. 그들은 심지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끈질겨요. 상당히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범죄자가 단순히 법적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방송의 주목적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어떤 사건을 더 사실에 가까운 곳으로 위치를 옮겨줘야겠다 결심하고 방송하는 이유는 결국 피해자에게 있어요. 분명히 피해자가 존재하는데도, 모종의 이유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지 않은 채 용의자만 남거나 혹은 유력한 피의자가 무죄를 받는 일도 흔하잖아요. 저를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결국 피해자의 억울함에 있고, 그것이 다른 이들로부터의 겁박이나 스트레스를 버티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요.

 

‐ 그래도 가시적인 협박이나 위험에 노출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연락이 왔어요. 〈국가수사본부〉 4화에 평택 일대에서 조직폭력배가 마약 유통하는 과정을 경찰이 추적해서 검거하는 과정을 방송했는데, 이 사람들이 저번 주에 출소했거든요. 사과하지 않으면 직접 찾아오겠다길래 알아서 하시라고 하고 끊었는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요. 정말 예전에 보도했던 사건인데도 끈질기게 연락이 오는 경우도 많죠.  2012년도에 〈궁금한 이야기 Y〉 PD를 할 때 ‘원주 귀래 사랑의 집 사건’이라고 그곳에 갇혀 지내던 장애인 분들을 구출했던 회차가 있었는데, 방송 이후 그 시설을 운영했던 장 목사가 3년 6개월 형을 받았어요. 10년이 넘은 사건인데 아직도 저한테 내용증명을 보내고 저를 비방하는 영상을 올리더군요.

그런데 저는 사실 특정인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방송한 게 아니에요. 위기에 노출된 장애인 분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을 뿐이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권리를 되찾게 되면 그와 반비례하게 누구에게는 불행이 시작되기도 하는 것이 사람의 일이고 인생인 거죠. 어쨌든 그 중심에는 PD든 기자든 누군가 한 명이 서 있어야 하는 것인데,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Q. 반대로 보도를 통해 직업적인 보람을 느낀다면 언제인지도 궁금해요.

보람 있는 순간은 너무 많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제 방송으로 위로를 받거나 현실적으로 조금 더 나아졌다고 할 때, 그것 이상의 보람은 없거든요.

그런데 사실 방송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물론 문제를 환기해서 사회적인 분위기를 바꾸고, 재발 방지를 위해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 벽돌 몇 개를 두는 역할을 할 수는 있죠. 하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매번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방송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피해자 분들이 낙담하시거나 방송 전보다 더 힘들어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무거울 때도 많아요.

그러니까 이게 나중에는 다 빚인 것처럼 느껴져요. 당시에는 보람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문제 해결 과정에 진척이 없으면 빚이 되는 거죠. 이들에게 무턱대고 방송이 뭐든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약속할 수도 없는 일이잖아요.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이 일은 참 어렵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느 PD의 신념과 고민

Q. 제작자로서 프로그램을 기획·연출할 때마다 늘 되새기는 가치관이 있나요? 

사실 사안에 따라 달리 판단하는 게 맞고 실제로도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지기도 해요. 그래도 교양 PD라면 누구나 어떤 소재를 다루든 되도록 사회적인 약자들의 입장이나 그 사람들이 처해 있는 환경을 잘 이해하고 알려보자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언론 본연의 역할이 그것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다만 방송 관계자가 아이템이라고 부르는, 그런 적합한 소재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프로그램 한 편을 방송하기까지 PD는 상당히 외로운 줄타기를 해야 하니까요. 우선 알려지지 않은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고, 교양 PD는 이들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 가려는 사람이기도 해요. 그런데 현실, 이를테면 시청률이나 화제성에 갇힐 때도 있어요. PD에게 매일매일 주어지는 성적표를 깡그리 무시하기는 또 쉽지 않거든요. 매번 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 줄타기를 하는데, 가끔 후자로 치우치다 보면 처음 이 직업을 선택할 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잊을 때도 생겨요.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인지 반추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잠시 가지는 거죠. 내가 너무 그동안 ‘방송국 놈’처럼 굴었나 생각도 하면서.

 

‐ 프로그램 소재를 찾을 때 주의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한 토막의 정보를 가지고 전체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을 금기시해요. 누군가로부터 편하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경우가 많아서 반드시 꼼꼼하게 검증하고 보도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제1원칙으로 둬요. 

 

‐ 구체적인 방법이 있으신가요?

어떤 눈길이 가는 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그분이 어디에 계시든 꼭 당사자를 직접 만나려고 해요. 시간이나 비용이 들더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다각도로 들어보고 나서야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볼 수 있죠.

사실 ‘재미’는 좋은 가치잖아요. 어떻게 제대로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려면 이야기의 재료가 많아야 하는데, 단순히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고 몇 마디 전화로 듣거나 서면으로 답을 받는 정도로는 부족해요. 말하는 사람의 표정도 볼 수 없죠. 그래서 제가 관심이 있고 힘줘 전하고 싶은 요소가 있다면 저는 반드시 그 사람을 만나는 편이에요.

결국 PD는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스토리텔링’하는 사람이잖아요. ‘스토리’를 잘 ‘텔링’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건을 둘러싼 맥락을 잘 알아야 하거든요. 사회나 지역 속에서의 맥락이나 그 사람 주변의 관계 말이에요. 이걸 잘 파악하고 구성해서 전달하는 게 우리의 직업적인 역량인 것 같아요.

 

Q.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룰 때는 연출에 상당히 주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피해자 분들은 대체로 그들이 사건의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아요. 사건을 취재하고 방송할 때 마주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인데, 그렇다고 감언이설로 그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잖아요. 대신 “최대한 여러분의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보호하겠지만, 저희의 의도와 달리 신원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솔직하게 전해요. 대신 피해자와 유가족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죠.

그런데 이따금 피해자 혹은 유가족 측이 본인의 신원을 노출하면서 방송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어요. ‘왜 피해자가 숨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 전반의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최근의 경향인 것 같아요. <국가수사본부> 1~2화에서 나오는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 사건’을 취재하면서 남편 분을 만나 촬영할 기회가 있었어요. 저는 사건이 너무 참혹했기 때문에 두 여성의 모습을 모자이크 처리할 계획이었는데, 남편분께서는 방송에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딸의 웃는 얼굴이 되도록 활짝 웃는 표정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더라고요. 얼굴을 가려도 된다고도 말씀드렸는데,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답하셨어요. 이 경우는 가족이 원했으니까 공개하는 것이 맞겠죠.

신상은 피해자의 명예와 같은 거잖아요. 그래서 이를 제작자가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은 당연히 그대로지만, 그 표현 방식은 어쩌면 좀 바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시청자가 이런 탐사 보도 및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받아들이시기를 바라시나요?

최소한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뚜렷한 제작자의 의도를 담고 있지는 않아요. 영상 속 피해자의 진술이 의도라면 의도겠죠. 있는 그대로, 피해자의 이야기를 최대한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저희가 그들에게 카메라를 대는 이유예요.

그런데 때때로 댓글창이나 특정 게시판에서 제작자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시청자의 반응이 조성되는 경우가 생겨요. 작성자의 의도가 더 선명한, 그래서 다분히 폭력적인 그런 글들이 콘텐츠에 달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죠. 단순히 ‘좋아요’를 받기 위해 폭력적이거나 자극적인 댓글을 적는 사람도 너무 많고요.

 

‐ 이런 현상을 지켜보는 마음이 가볍지 않을 것 같아요.

저희가 제작한 콘텐츠 밑에 그런 자극적인 글이 나열되는 것을 보면 제작자로서 내 방송이 어쨌든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편할 때가 있어요. 영상을 촬영한 입장에서 저 역시도 어쨌든 하나의 필터가 됐을 텐데, 시청자의 또 다른 의도가 개입되면서 이야기가 뒤틀리고 왜곡되기도 하니까요. 특히 대체로 댓글의 비방이 제작자에게 향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들과 같이 제작자가 보호해야 할 사람을 향하잖아요. 내가 만든 콘텐츠로 인해서 누군가 또 어떤 아픔을 겪는다는 죄책감이 들죠.

이건 제작자와 시청자, 우리 모두의 숙제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시청자가 콘텐츠 하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좋은 이야기만 나누자는 건 당연히 아니에요. 다만 건설적인 비판이 오갔으면 좋겠어요.

 

‘PD 배정훈’의 2부가 방영됩니다

Q. 앞으로의 목표가 있으신가요?

제작을 오래 하고 싶어요. 보통 방송국에 입사해서 20년 정도 다니면 더 이상 제작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회사의 간부가 돼서 관리자의 길을 가는 것 또한 주어지는 역할이니까요. 저는 이제 16년 2개월 차에 접어들었는데, 〈국가수사본부〉까지는 제작에 참여했지만 지금 배정된 〈TV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팀장을 맡고 있어요. 현장에 직접 나가거나 별도의 촬영 혹은 편집을 하지는 않는 상태인 거죠. 어느덧 제작자와 관리자 사이 갈림길에 와 있나 봐요.

방송국 판에서 제작자보다 관리자의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못 본 거 같아요. 보통은 제작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 하는데, 한 가지 문제라면 콘텐츠를 만드는 직업의 생명은 짧다는 거죠. 시청자가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그에 따른 방송의 문법도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이걸 잘 따라가지 못하는 제작자가 만든 콘텐츠는 금방 구식이 돼요. 그래서 최대한 늙지 않고, 현실 감각을 유지하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두고 있어요.

 

‐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을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준비 중인 프로그램도 있어요. 10여 년간 죽이고 찌르고 훔치는 현장을 쫓으면서 감흥을 느낄 여유도 없이 최선을 다했던 것 같아요. 회사는 저한테 범죄 관련 콘텐츠를 계속 해보자고 하고 경찰청에서도 〈국가수사본부〉 시즌 2를 준비해 보자고 제안을 주는데, 물론 해오던 일을 더 잘할 수는 있겠지만 이제 ‘재밌는’ 프로그램을 도전해 보면서 2막을 시작하고픈 마음도 있어요. 조금 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웃고 ‘힐링’할 수 있는 그런 콘텐츠요.

 

‐ 지금 연출하고 계신 〈푸바오와 할부지〉도 그런 색다른 시도 중 하나군요.

시험 무대였죠. 제가 동물농장 팀에 와서 〈푸바오와 할부지〉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웃더라고요. 당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세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 유일하게 경험해 보지 못한 프로그램이 〈TV 동물농장〉이어서 이쪽으로 발령받겠다고 했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푸바오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어쨌든 3개월째 열심히 새로운 조직에 적응 중이죠. 지난주에 〈푸바오와 할부지〉 1화가 나갔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저도 준비하면서 많이 힐링할 수 있는 것 같고, 이전 탐사 보도 프로그램과는 또 다른 느낌의 피드백이 돌아와서 신기해요.

 

Q. PD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의 한 말씀 해주실 수 있나요?

주변 사람의 이야기나 많은 일을 우리는 뉴스나 친구들의 이야기, 혹은 SNS를 통해 접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보고 들은 것이 전부라고는 믿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중에 본인이 눈길이 가고 더 알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직접 한 번 알아보려는 노력을 해봤으면 좋겠고요. 

저도 학생 때는 신문이나 인터넷이 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하면 그것이 그 사건에 관한 사실이라고 착각했었어요. 그런데 그 현장에 조금만 가까이 가 봐도 미디어가 담아내지 못한 거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을 때가 있고 흥미로운 포인트를 포착하게 될 때도 많거든요. 스토리텔링을 하는 직업을 가지려면,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수집하고 나누는 태도가 너무나 중요해요. 그리고 이 과정이 재미있다면 이 직업을 선택해도 좋겠죠. 사건 사고가 발생한 곳은 어떤 특징이 있고, 그 인근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돌고 있는지 파악하고, 알게 된 내용을 한 명의 이야기꾼처럼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이것이 PD가 하는 일이거든요.

 

*인터뷰에서 언급된 사건이 궁금하다면?

배정훈 PD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던 2012년 원주 귀례 사랑의 집 사건.

평택 일대에서 마약을 유통하던 조직폭력배를 검거하는 과정.

피해자를 보도하는 방식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 부산 양정동 모녀 살인사건.

 

 

사진: 최수지 기자 

susie200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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