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인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다시 한번 유예될 위기에 놓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 사고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제정돼,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는 등 법령에서 정한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을 요지로 한다. 해당 법률은 지난해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 이후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 단체들은 올해 초부터 꾸준히 추가 유예를 요구해 왔으며, 정부와 여야 또한 이에 호응하고 있다. 여당은 법률의 전면 시행을 2026년까지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지난 7월 발의했고, 고용노동부는 국정감사에서 중소기업에게 준비시간이 필요하다며 유예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지난달 23일 민주당도 △정부의 사과 △구체적인 안전 계획 △유예 후 확실한 적용 약속 등 3가지 조건을 전제로 유예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전면 적용 유예 시도는 하루빨리 개선이 필요한 한국의 심각한 산업재해 현실을 도외시하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근로자 10만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OECD회원국)」에 의하면 2020년 기준 한국의 근로자 10만 명당 업무상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4.6명으로 OECD 27개국 중 3번째로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그중에서도 적용 유예의 대상이 되는 5인~49인 사업장에서의 2022년 사고사망자는 고용노동부 「산업재해 현황」 기준 총 365명으로,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중 41.8%라는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때 사업장에서 사고 사망 원인 상위 3가지가 떨어짐, 부딪힘, 끼임이라는 사실은 기본적인 안전 의무 준수조차 지키지 않는 현장의 부실한 모습을 드러낸다. 

기업 측은 경영자의 사법 리스크 증가로 인한 기업 활동 위축 우려와 안전시설 등 관리 체계 구축의 준비 부족으로 인한 법안 적용 유예 필요성을 주장하나,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해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에 대해 1심 판결된 11건의 판례를 살펴보면, 11건 중 10건이 집행유예로 판결됐고 대부분 기본적인 안전 수칙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주로 선고됐다는 사실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사업주의 사법 리스크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정도는 아님을 드러낸다. 나아가 기업이 기본적인 안전 관리만 준수하면 중대재해처벌법에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기업은 준비 부족을 주장하기에 앞서, 준비 태만에 대한 반성을 충분히 행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시급한 문제 해결이 가능한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상황은 매우 실망스럽다. 정부와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민생 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도 이를 적극 반대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민생인가? 중대재해처벌법이 유예되고 있는 지금도 노동자의 생명은 위험에 처해있다. 사람의 생명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근본적 가치를 반추하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적용에 적극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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