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암표 매매 규제의 사각지대

A씨는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직접 관람하고자 프로야구 관람권 예매 경쟁에 참여했다. 관람권 예매는 사람이 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마감됐고, A씨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원래 가격의 몇 배 이상으로 재판매되고 있는 관람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거래 아니면 OK? 고통받는 생산자와 소비자=일반적으로 암표는 ‘구매 가격보다 비싸게 재판매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데 이용되는 각종 표’로 인식된다. 생산자도 소비자도 아닌 제3자가 차익을 목적으로 표를 사고파는 암표 매매는 사용 기간이 정해져 있는 상품을 판매한다는 점에서 통상적인 되팔기와도 구별된다. 이런 암표는 판매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음레협) 윤동환 협회장은 “암표상은 표를 많이 잡아두고 마감 직전에 팔리지 않는 표를 취소해 관람권 판매에 지장을 준다”라며 암표 매매로 인해 생산자가 입는 피해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업계는 암표로 입은 손해를 보전하고자 표의 가격을 올려 결국은 소비자가 피해를 보게 된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암표의 주거래 현장은 온라인임에도 불구하고, 법률은 온라인 환경에서 이뤄지는 암표 매매를 규제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암표 매매를 규제하는 법률인 ‘경범죄 처벌법’ 제3조 제2항 제4호는 암표 매매를 ‘흥행장, 경기장, 역, 나루터, 정류장, 그 밖에 정하여진 요금을 받고 입장시키거나 승차 또는 승선시키는 곳에서 웃돈을 받고 입장권·승차권 또는 승선권을 다른 사람에게 되파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온라인 환경에서의 암표 매매는 공식적인 암표 매매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웃돈을 주고 표를 재판매하는 행위가 법망의 사각지대에 놓이면서, 온라인 암표 매매는 적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고나라 이채은 매니저는 “온라인 재판매 티켓은 현행법상 암표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플랫폼 차원에서 개인 간 거래에 직접 개입하기 어렵다”라고 전했다.

법률이 온라인 암표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는 동안, 암표 매매는 다른 범죄와도 연계돼 소비자의 피해는 배가되는 중이다. DKL파트너스 백세희 변호사는 “암표 판매업자가 양도를 위한 절차에 필요하다며 구매자의 개인정보를 취득해 이를 핸드폰 소액결제나 인터넷 은행의 소액대출 등에서 이용함으로써 구매자에게 수천만 원의 피해를 주기도 한다”라고 전했다. 

 

◇매크로, 암표 성행의 주범=‘매크로’(Macro) 프로그램의 확산은 온라인 환경에서의 암표를 더욱 성행시켰다. 매크로란 여러 개의 명령어를 키 하나에 묶어 사용하게 함으로써 반복 작업을 대체하는 자동화 프로그램이다. 이는 지정한 좌푯값에 맞춰 마우스 버튼을 클릭하거나 특정 문구를 입력하게 하는 등의 작업을 자동화하기에 오늘날 컴퓨터 게임, 댓글 입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특히 온라인 예매에 매크로를 활용하면 간단한 동작만으로도 클릭과 입력이 자동으로 이뤄져 짧은 시간 내에 많은 표를 예매할 수 있다. 매크로가 암표상들이 대량의 표를 손쉽게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이유다. 암표상들은 이렇게 구매한 표에 웃돈을 얹어 다시 판매한다.

매크로는 순수하게 관람을 목적으로 예매하는 소비자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법적 처벌은 어려운 실정이다. 이은희 교수(인하대 소비자학과)는 “재판매를 통한 이익 창출을 목적으로 매크로를 이용하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침해된다”라고 밝혔다. 

이에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입장권·관람권 등의 부정 판매를 금지하는 공연법 개정법률안이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이는 여전히 온라인상의 암표 매매를 완벽히 규제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닌다. 법안에 따르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입장권·관람권을 산 뒤 타인에게 웃돈을 얹어 판매할 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윤동환 협회장은 “매크로 사용을 어떻게 잡아내고 관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미비하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백세희 변호사는 “개정된 법안은 공연법에서 다루는 행사들에만 적용돼 스포츠 경기, 시상식, 팬 미팅 등 많은 행사는 여전히 법률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라고 지적했다. 

 

◇차라리 합법화? 그래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시민의식!=이처럼 암표 매매 규제가 난항을 겪자 웃돈을 붙여 표를 재판매하는 행위 자체를 합법화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김대일 교수(경제학부)는 “암표 매매는 돈을 더 지불하더라도 표를 구매하고 싶은 사람에게 구매할 기회를 주기에 마냥 나쁘게만 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미국은 정부가 공인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구매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표를 판매하는 것을 허용한다. 미국 정부는 표를 재판매해서 이익을 얻는 사람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암표를 통제한다. 이은희 교수는 “암표의 합법화를 위해서는 매매 가격의 상한선을 지정하는 등 제도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제도적 해결이 어려울수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윤동환 협회장은 “암표가 횡행한다면 산업 구조는 망가질 수밖에 없기에, 암표를 구매했을 때 일어날 피해를 생각해 소비자가 먼저 구매를 자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김승주 교수(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는 “암표 매매를 규제하는 기술적 대안이 계속 나오지만, 그에 맞춰 수법도 교묘하게 진화해 이를 완전히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암표를 보면 신고하고, 사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며 암표를 대하는 올바른 시민의식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웃돈을 주고 암표를 구매하는 풍토가 자리 잡는다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암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법적·기술적 혁신과 더불어 잠깐의 유혹을 뿌리치는 시민의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