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예술의 비전은 어디에,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가 드러내는 시선

비약적 기술 발전과 산업 확장 속에서 배제됐던 존재와 다시 마주한 순간, 인류가 그었던 경계는 허물어진다. 지난 10월 20일부터 SBS문화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공동 주최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 1층 2, 3, 4전시실에서 진행 중인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가 내년 3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올해의 작가상’은 2010년부터 매년 한국 현대미술의 변화하는 담론에 발맞춰 예술의 가능성과 비전을 제시해 왔다. 올해의 전시는 갈라 포라스‐김, 권병준, 전소정, 이강승 네 작가의 총 100여 점의 작품으로 구성되며 이듬해 초 최종 심사를 거쳐 한 명을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다. 네 개의 이어지는 전시에서, 관람객은 경직됐던 인간의 시선 밖으로 뻗어나가는, 세계로 향하는 서로 다른 길을 마주한다.

 

갈라 포라스‐김: 현재가 외면한 과거에 시선을

갈라 포라스‒김 작가는 현재 우리 인류의 이해와 상식이 단 하나의 절대적 시선이라고 간주하는 폭력적 태도를 넘어, 복수(複數)의 관점에서 존재를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2전시실의 첫 번째 공간으로 발을 내디디면 나란히 놓인 세 점의 그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는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고인돌의 형상을 중앙에 두고, 그 좌우로 고인돌에 묻힌 사람의 시선과 이끼와 식물로 고인돌을 뒤덮어 온 자연의 시선이 담긴 고인돌을 각각 그려낸다.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갈한 문화재의 형상은, 죽음을 대비하는 제례의 절차로서 고인돌을 쌓아 올린 고대인과 억겁의 시간 동안 그 주위에 생태계를 형성했던 자연에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다. 고대인이 바라보는, 새카만 어둠과 자연이 바라보는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이끼를 고인돌의 모습이라 하는 것은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작가는 우리의 시선 역시 다른 존재에게는 생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갈라 포라스‒김 작가는 특히 예술과 존재의 역사성을 부각하는 한편 잊힌 제의(祭儀) 가치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 그의 작품은 제의의 존중을 현대인에게 요청하는 편지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나타내는 구조물·그림이 쌍을 이루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테오티우와칸 태양의 피라미드의 제의 요소들의 재구성을 위한 제안〉은 멕시코 피라미드의 꼭대기에서 박물관으로 옮겨진 제의용 거석 두 개를 복제해 다시 피라미드의 빈 구멍에 돌려놓을 것을 제안한다. 한편, 〈우리를 속박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탈출〉은 사자의 사후세계에 대한 희망과 무관하게 유해가 박물관에 전시되는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국립광주박물관 관장에게 편지를 보내 사자의 소망과 박물관의 사명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을 것을 요청한다. 또한 죽은 자가 스스로 캔버스 위에 잉크를 움직여 흔적을 남김으로써 죽은 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사후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그림을 전시한다.

▲갈라 포라스-김 작가의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갈라 포라스-김 작가의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

 

권병준: 기술이 배제한 비효율을 다시

기계장치와 발전한 기술은 같은 시간 내에 더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일을 하는 능력인 효율성을 세상의 최고 가치로 응고시켰고, 그렇게 탄생한 근대에서 효율성은 신격화됐다. 하지만 효율성의 삭막한 단조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기계장치는 다시 근대성을 넘어설 실마리로 변신한다. 4전시실에 전시된 권병준 작가의 로봇들은 외나무다리를 건너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일반적인 사다리는 인간이 땅 위로 걸어 오르기 위한 장치로 여겨지지만, 〈춤추는 사다리들〉에서 사다리들은 스스로 접고 펴는 것을 반복하며 위가 아니라 옆으로 나아간다. 〈오체투지 사다리봇〉과 〈부채춤을 추는 나엘〉에서 로봇들은 비효율적이지만 놀랍도록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춤사위를 선보인다. 작가의 작품 속에서 효율성의 상징이던 기계장치는 다시 효율성의 성벽을 무너뜨리며, 궁극적으로 포스트휴먼 시대에서 로봇과 인간이 함께 춤출 가능성을 제시한다.

권병준 작가는 인간의 경계를 확장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의 연대를 가능하게 할 또 다른 수단으로 음악을 제시한다. 〈오묘한 진리의 숲〉은 관람객이 관람하고 있는 장소에 맞춘 음악을 들려주며 공간이 음악과 어우러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옆 공간에 있는 〈마네킹의 유체이탈〉은 지배당하는 작은 인형의 이야기를 음악, 괴뢰사의 도구와 손 모형, 움직이는 여섯 인형, 그리고 거대한 인형을 통해 표현한다. 작품 속에서 인형들은 소리를 내는 주체이자 음악 그 자체의 일부가 된다. 음악을 듣는 이가 이를 매개로 다른 공간, 인간, 비인간과 섞이면서 공존의 감각은 극대화되며, 화합의 가능성을 향한 희망이 타오른다.

▲권병준 작가의 〈부채춤을 추는 나엘〉. 손전등을 머리로 한 로봇은 부채를 들고 관람객과 같은 공간에서 역동적으로 춤을 춘다.
▲권병준 작가의 〈부채춤을 추는 나엘〉. 손전등을 머리로 한 로봇은 부채를 들고 관람객과 같은 공간에서 역동적으로 춤을 춘다.

 

전소정: 속도가 어긋난 틈새의 사람들

전소정 작가는 영상 작업과 조형물을 통해 전형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특히 이주민의 정체성 문제에 주목한다. 2전시실의 두 번째 공간에 상영되는 전 작가의 영상작품 〈Syncope〉는 국외로 나가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는 이민자의 삶을 드러낸다. 작품은 다중언어를 다루며 언어를 탐구한 인물, 프랑스로 입양인 한국인 작곡가 등 서로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가는 여러 삶의 모습을 미지로의 횡단과 교차를 상징하는 시베리아 대륙횡단 열차에 빗대어 보여준다. 한편, 영상과 나무로 이루어진 배 모형 구조물이 조화된 작품 〈광인들의 배〉는 익숙했던 나라와 지역으로부터 강제로 이주당했거나, 자신의 선택으로 낯선 공간으로 나아간 사람들을 표현한다. 관람객은 각자 다른 속도로 낯섦을 향해 이행하는 이주민을 바라보며 전형적인 삶의 방식이 포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가치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전소정 작가의 〈광인들의 배〉의 한 장면.
▲전소정 작가의 〈광인들의 배〉의 한 장면.

 

이강승: 규정치 않아도 그곳에 있음을

규정되지 못한 사람은 경계 밖으로 내쫓기는 시대에 이강승 작가는 그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말한다. 이 작가는 성별 이분법의 세계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퀴어의 삶을 기록하며 그들이 존재를 이어가기 위한 연대의 실마리를 찾는다. 3전시실에 들어서면 보이는 편지와 신문, 잡지의 스크랩들은 왜곡되고 억압받는 현실 속에서도 한 명의 인간으로 약동하며 잊힐 것을 두려워한 퀴어의 역사를 드러낸다. 그는 이처럼 단순히 퀴어의 흔적을 한데 모으는 것을 넘어, 시간과 공간, 문화를 초월한 연대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무제(라자로, 호네 레오닐슨)〉는 브라질의 개념미술가 호네 레오닐슨이 퀴어의 고통과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한 의복 형태의 설치미술 〈라자로〉를 한국의 삼베로 재현한다. 나아가 영상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에서 현대의 무용수들은 해당 삼베옷을 입고, 퀴어 안무가 고추산의 발레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된 한국 정다은 안무가의 춤을 춘다. 이를 통해 과거 에이즈로 사망했던 두 예술가 호네 레오닐슨과 고추산은 역사 속에 박제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지인 한국의 예술가와 손을 맞잡고 도약한다.

이강승 작가는 ‘돌봄’을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기억이 지속될 근원적 조건으로 제시한다. 미국의 퀴어 운동가이자 정치인인 하비 밀크가 암살당했을 때, 그의 애인은 그가 키우던 선인장을 이어 키웠다. 자라난 선인장의 줄기들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고 하비를 기억하는 상징이 됐다. 이 작가는 이런 연쇄적 돌봄과 전달의 끝에 탄생한 6세대 선인장 〈무제(하비)〉를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한다. 하비가 잊히지 않고 그의 선인장이 퀴어 커뮤니티 곳곳으로 전달된 것은 누군가의 돌봄이 이어져 가능했던 일이다. 영문 작품명의 수화 손동작을 자수로 수놓은 〈누가 우리를 돌보는 이들을 보살피게 될까〉는 죽어가고 스러지는 이들의 삶을 보존해 준 그 모든 돌봄 행위자에게 보내는 헌사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돌봄이 아닌 상호적 돌봄이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는 포용적 연대의 방법이자 진정한 기억의 방식임을 일깨운다.

▲이강승 작가의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의 한 장면.
▲이강승 작가의 〈라자로(정다은, 네이슨 머큐리 킴과의 협업)〉의 한 장면.

 

한국 현대예술 담론의 시선을 드러내는 네 명의 예술가들은 각기 다른 방법과 대상을 취하고 표현하고 있지만, 모두 인류가 창조해낸 독선적이고 고정된 세계관에 균열을 일으키고자 한다. 지금의 주류라 불리는 인간만을 중심에 놓는 사고를 넘어, 과거와 자연, 비인간과 기술, 이방인과 퀴어가 함께하는 미래가 다가온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