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 졸업을 맞은 학생들의 이야기

황수하(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황수하(국어국문학과 석사 졸업)

절친한 벗이 제게 자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과시는 결핍에서 온다.” 제가 대학원생의 신분으로 공부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결핍에서 비롯된 일종의 과시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겉핥기에 그치는 공부가 아니라 깊은 지식을 쌓고 싶다는 욕망. 한 분야의 전문가가 돼 휘발되지 않는 나만의 것을 쌓고 싶다는 야심. 부끄럽지만 그런 것들이야말로 대학원 입학 당시 저의 솔직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학원 입학 후의 시간들은 더 큰 결핍들과 마주하는 일의 연속이었습니다. 세미나 수업에서 매끄럽게 요약한 발제문을 발표하고 싶었지만, 실상은 이론서를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되뇌이면 읽느라 시간에 쫓겨 겨우 구색만 갖춘 글을 들고 간 적이 많습니다. 또 교수님의 기습 질문에 유려하게 답변하고 싶었지만, 명료하기는커녕 머릿속에서 생각 정리조차 잘 되지 않아 더듬대며 원론적인 이야기만 되풀이한 기억도 수두룩합니다. 이처럼 제게 2년 동안의 석사과정은 성실하고 뛰어난 학우들에게 둘러싸여 모자람과 부족함을 매일같이 확인 받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아직 나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결핍에서 피어난 학문적 과시욕이 더 큰 결핍을 불러온 셈이지요. 

자연스레 저는 학술적 재능이 없는, 모자란 사람이라고 자책하게 됐습니다. 내가 읽고 공부하는 것과 내가 직접 쓰고 뱉어내는 것 사이에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간격이 존재한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공부는 평생 하는 것이라지만, 직업으로서의 공부를 과연 계속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은 곱씹을수록 짙어졌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대학원생의 삶은 이런 의문에 완전히 잠식될 틈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 자신의 모자람을 마주하면서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와 방식의 모자람과 부족함이 제 앞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결핍을 보완하는 데 몰두하기에는 미흡하고 부실한 부분들이 셀 수 없이 많아 그저 해나가는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무수히 반복돼 어느덧 모자람과 부족함의 사전적 정의, 즉 ‘기준에 미치지 못함’은 대학원생으로서의 정체성의 기본값이 돼 있었습니다. 대학원에서의 생활은 아마 끝없을 나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것을 아주 천천히, 조용히, 부지런히 채워가는 여정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해 졸업을 앞둔 지금 저는 제 자신이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모자라고 부족한 사람임을 과시하고자 합니다. 쉽지 않았던 석사과정 동안 고민해 온 바를 용기 내어 뱉는 주제에, 나름 가볍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결핍에서 온 과시욕이 있나 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혹은 어디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교정 안에서 배운 가장 값진 것은 본인의 모자람과 부족함을 대하는 스스로의 자세일 것입니다. 이제 막 석사과정을 마친 사람으로서, 모자라고 부족한 점이 너무나 많은 저는 앞으로도 스스로의 모자람과 부족함에 의연함을 잃지 않고자 합니다. 부단한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그것들과 계속해서 함께하다보면 무궁무진한 무지가 저를 어디론가 이끌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정과 교문과 학우들은 제 모자람과 부족함을 기억하겠지요. 교문을 나서는 저도 이를 잊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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