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을 나서며 | 졸업을 맞은 학생들의 이야기

김은혜(자유전공학부 졸업)
김은혜(자유전공학부 졸업)

“안녕하세요, 저는 자유전공학부 김은혜입니다.” 그때부터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자유전공학부는 뭐 하는 데냐, 전공은 없냐(아니요, 전공도 따로 있어요), 그럼 전공은 뭐냐, 졸업장에는 어떻게 찍히냐 등등. 처음 입학했을 때보다는 자유전공학부를 아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이런 질문을 올해도 받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물론 인지도에 상관없이 자유전공학부 자체의 모호함으로 인해 그 실체는 앞으로도 의구심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이런 질문들을 받는 것이 싫지 않다. 애초에 고등학생 때 자유전공학부를 지망했던 이유 중 하나도 모호함에 있었다. 당시 내게 비친 자유전공학부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곳’이었다. 학창 시절 또래와 비슷한 점보다 다른 점이 많았기에,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나다운 삶을 살고 싶었다. 반이나 학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난다면, 심지어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라면 분명 그렇게 살 수 있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겁 없이 이 학부에 발을 들였다.

나는 제도권에 얽매이지 않는 모호함을 원했고 자유전공학부에서 모호한 상태로 있을 기회를 얻었지만, 그 상태가 내포하는 바는 생각보다 잔인했다. 예전에 언어학을 전공하는 어느 자유전공학부 학생이 자신은 “언어학과 사람들한테는 자유전공학부라 하고 자유전공학부 사람들한테는 언어학과라 한다”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무척 공감한 적이 있다. 일단 ‘언어학과 사람에게 자유전공학부라 한다’는 부분은 어렵지 않게 납득할 수 있다. 자유전공학부 학생은 전공을 선택하더라도 소속을 전공 학과로 옮기지 않으니 말이다. ‘자유전공학부 사람에게 언어학과라 한다’는 부분이 핵심인데, 행정상 자유전공학부 소속으로 남아 있어도 전공 선택 이후에는 같은 전공 사람들을 준거집단으로 삼게 되고 자유전공학부 사람들과 교류할 일은 거의 없다. 이런 현실이 예외 없이 나에게도 닥쳤다.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아닌, 어디에도 소속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비슷한 고민을 한 자유전공학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은 천차만별일 테지만, 나는 전공인 언어학과에 완전히 마음을 주는 방법을 택했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고, 언어학과에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준 좋은 사람들이 많아 마음이 그쪽으로 이끌렸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을 언어학과라 소개하지는 않는다. 어느 자리에서든 나는 여전히 자유전공학부다. 이것이 단순히 행정적인 소속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내가 누구인지,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앞으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과 방황 속에서 내 손으로 한 땀 한 땀 수놓은 시간은 자유전공학부라는 이름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언젠가 자유전공학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실질적으로는 서로 단절돼 있었더라도 비슷한 고민의 역사를 공유하는 사람으로서 반가움과 유대감을 느낄 것 같다. 어쩌면 자유전공학부라는 이름을 지탱하는 것은 학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쏘아올린 작은 조명탄들일지 모르겠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내 학부도, 전공 학과도 그저 증명서 속의 건조한 기록으로 남아 그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학부와 전공을 어떤 이름으로 쓸 것인지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을 것이다. 서울대에서의 시간이 나 자신은 물론 모든 학우에게 헛되지 않은 시간이었기를 바라며, 이만 모든 추억을 매듭짓고 새로운 시간을 향해 나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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