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이들에게 | 졸업생에 전하는 응원과 격려

배정한 교수(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배정한 교수(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졸업식 현수막이 걸린 캠퍼스를 걸으니 옛 기억이 떠오릅니다. 학부를 졸업할 때도, 석사를 마칠 때도, 박사 학위를 받을 때도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에 대 한 기대와 설렘도 있었지만, 더 지배적인 감정은 긴장과 불안이었습니다. 졸업은 익숙한 자리에서 미지의 영토로 넘어가는 문지방입니다. 이 경계를 넘어서면 안개가 걷힐까. 어떤 풍경이 나를 맞이할까. 

축하의 박수를 받으며 떠나는 여러분도 희망과 두려움이 절묘한 비율로 뒤섞인 감정에 당황하고 있을 겁니다. 변화가 밀려오는 과도기는 불안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안정한 경계의 시기를 통과하며 우리는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합니다. 역동의 과도기에는 창조력과 생명력이 힘차게 솟아납니다. 함민복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생태계는 경계의 경이로운 힘을 깨닫게 해줍니다. 숲과 들이 교차하는 지역에는 다른 곳보다 다양한 생물이 거주합니다. 여러 동식물이 서로 만나고 새로운 생명체가 번성합니다. 물과 뭍이 만나는 호숫가에서는 여러 유기물이 서로 먹이를 얻으며 활발하게 교류합니다. 졸업, 이 불확실한 시절을 통과하며 경계의 잠재력을 돌보고 가꾸면 우리 마음의 근육이 자라고 시야가 넓어질 것입니다. 

잠시 걷기만 해도 경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공원 한 곳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 학교 시흥캠퍼스에서 멀지 않은 시흥갯골생태공원입니다. 수명을 다한 소래염전이 불모의 땅으로 버려져 질곡의 세월을 겪은 뒤 다시 공원으로 거듭난 곳입니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은 바다가 대지를 부르고 대지가 바다에게 답하는 경계의 공간입니다. 갯골은 밀물과 썰물 사이에 바닷물이 들고 나며 잠겼다 드러나기를 반복하는 고랑입니다. 시흥 갯골은 서해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며 만들어낸 거대한 내만 갯골이며, 해양 생태계와 육상 생태계가 만나고 섞이는 이행대(移行帶)입니다. 경계와 이행의 지대인 갯골은 지역 생태계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젖줄이자 다양한 생물의 터전입니다. 

이행대로 번역되는 에코톤(ecotone)은 그리스어로 집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와 탄성을 뜻하는 토노스(tonos)를 합친 말입니다. 생태학적 긴장과 풍요의 공간인 이행대는 마치 두 지대를 잇는 다리처럼 불안정한 경계 너머의 생물들을 교류하게 하는 생태적 탄력을 띱니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의 저자 나탈리 크납은 생태학적 이행대의 잠재력에 빗대 인생의 과도기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그는 “불확실한 시기에 삶은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다”라고 말합니다. 전이와 이행의 생태계가 경이로운 풍경을 발산하듯, 졸업이라는 삶의 과도기는 불안정하면서도 창조적입니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의 아름다운 경관 밑에는 농게, 방게, 말뚝망둥어 같은 저서생물이 서식합니다. 이들을 먹이로 삼는 도요새, 쇠백로, 흰뺨검둥오리, 괭이갈매기, 왜가리, 저어새가 한 데 어울려 거주합니다. 개펄 속 생물이 바닷물 속 미생물을 흡수해 자체 정화를 하고, 소금기 많은 곳에 자라는 퉁퉁마디, 나문재,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 군락이 깨끗한 산소를 뿜어냅니다. 계절의 변화를 고즈넉이 전시하는 칠면초 군락, 바람 따라 춤추는 은빛 억새꽃, 개펄의 속살을 뚫고 들락거리는 게들의 분주한 군무를 보면, 생태학적 이해나 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이행대의 긴장감 넘치는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습니다. 갯골의 절정은 칠면초가 붉은색 옷을 입는 가을이지만, 졸업 시즌인 이른 봄의 갯골도 시련의 과도기를 통과하는 생명력으로 충만합니다. 

이른 봄은 가장 변화가 많은 계절입니다. 따뜻한 봄 햇살이 음습한 겨울 기운과 ‘밀당’을 벌이며 생명의 힘을 깨웁니다. 봄은 겨울을 견뎌내며 잠든 자연의 힘을 세상 바깥으로 힘차게 밀어냅니다. 역동하는 경계의 시간, 불안정하지만 그래서 더 창조적인 새봄에는 누구나 희망을 품습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이제 문밖으로 나서 봄을 감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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