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크리스천 퀴어와 앨라이를 만나다

한국의 보수 교회에서 성소수자라는 것, 그리고 그들을 지지한다는 것은 죄악으로 취급된다. 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예수교장로회 등 국내 주요 개신교 교단의 법에는 퀴어의 존재를 부정하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지난해 총신대에서 한 학생이 성소수자 인권 동아리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무기한 정학 징계를 받고, 허호익 전 교수(대전신학대 신학과)가 성소수자에 대한 책을 썼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출교되는 등 한국 교회에서는 아직도 많은 퀴어와 그들의 앨라이*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한다. 한국 교회에서 크리스천 퀴어, 그들의 앨라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교회에 다니는 퀴어 당사자 동혁 씨(가명·44), 앨라이 이동환 목사,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비움 씨(가명·64)를 만나 그들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내가 사랑하는 종교가 나를 혐오할 때

시스젠더* 게이인 동혁 씨는 5살부터 가족과 교회에 다녔다. 동혁 씨처럼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는 이들에게 교회는 자신의 인간관계 전반이 형성된 삶의 터전으로 작동한다. 그는 “나는 사람과 사회를 인지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교회와 같이 살았다”라고 지난 삶을 돌아봤다.

많은 크리스천 퀴어는 이 터전에서 거부당하며 겪는 정체성의 혼란과 고독을 크리스천 퀴어로 살아가며 겪는 가장 힘든 점으로 꼽는다. 동혁 씨 역시 20대 중반에 자신의 성적 지향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자신의 고민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와 지인은 자신의 존재를 죄라 일컬었으며 그의 정체성을 혐오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그는 당시의 시간을 회상하며 “진실한 예배를 하지 못하고 죄의식을 갖게 됐다”라며 “나의 가장 큰 고민을 털어놓지 못한 채 거짓으로 모두를 대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퀴어 집단 내부에서도 기독교라는 종교적 신념은 편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동혁 씨는 “파트너에게 크리스천임을 밝혔을 때 대부분은 반응이 좋지 않다. 게이가 게이를 혐오하는 종교를 믿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라고 털어놓았다.

크리스천 퀴어에게는 자신을 배척하는 교회를 떠나거나, 사랑하는 종교가 자신을 혐오하는 것을 견디며 교회에 남는 두 선택지가 주어진다. 동혁 씨는 3년간의 고민 끝에 자신이 크리스천 퀴어라는 것을 인정하고 교회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삶의 큰 영역을 차지하던 종교가 나를 싫어하고 배척하는 상황이 됐다. 3년 동안 수도 없이 내가 믿었던 종교가 무엇인지 되물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그는 크리스천 퀴어로 남기로 결정했다. 그는 “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고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천 퀴어와 앨라이와의 연대는 외로운 길을 걷던 동혁 씨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앨라이 목사와 퀴어를 인정하는 교리를 접한 후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신앙을 지키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동혁 씨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과 함께 지내며 교회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이 교회의 이익이나 무지 때문에 벌이는 잘못된 행태라는 판단도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현재 동혁 씨는 크리스천 퀴어 활동 단체 네트워크인 무지개예수에서 활동하며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하는 등 동료 크리스천과의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도 모여서 무언가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라며 연대의 힘을 강조했다.

*앨라이(ally): 동맹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성소수자가 아님에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사람을 의미함.
*시스젠더(cisgender): 타고난 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성별 정체성이 동일하다고 느끼는 사람. 

 

차별과 고난에 맞서 연대하기

 

인터뷰 중인 이동환 목사.
인터뷰 중인 이동환 목사.

크리스천 퀴어를 지지하는 앨라이 역시 수많은 차별과 혐오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이동환 목사는 ‘동성애에 찬성하거나 동조했을 때 정직, 면직, 출교 징계를 내린다’는 감리교의 ‘교리와 장정’ 제3조 제8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장장 3년간 교회 재판을 받은 후에 출교당했다. 

이동환 목사는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보수적인 교회에 다니며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랬던 그가 퀴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4년경, 같이 지내던 성도가 커밍아웃한 후부터다. 차마 친하게 지내던 성도에게 ‘당신은 죄인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목사는 그제서야 퀴어가 뿔 달린 외계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교회가 퀴어를 배척하는 것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그는 신학을 공부한 끝에 인간은 모두 하나님께 평등하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고,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이동환 목사는 “2019년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동성 연인에게 축복식을 진행하며 용기를 내자는 말을 전하고 꽃을 뿌려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감리교는 이를 두고 교단법 제3조 제8항을 위반했다며 이동환 목사를 교단의 최고 입법 기관인 감리교 총회에 고발했다. 3년간 이어진 교단재판과 뒤이은 행정재판은 이 목사의 삶을 크게 뒤흔들었다. 이 목사는 “2년간의 교단재판 끝에 정직 2년 징계를 받았다. 징계가 끝나자마자 정직 기간 동안 퀴어 단체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다시 교단재판에 회부됐고, 최고형인 출교 결정이 내려졌다”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교단은 출교당한 이 목사에게 재판비용 2,800만 원, 기탁금 700만 원, 총 3,500만 원을 청구했다. 재판 위원인 목사와 장로의 교통비, 식비, 주차비, 수고비 등을 합친 금액이라는 것이 명목상의 설명이지만, 교단재판에서 이렇게 큰 금액이 청구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목사는 “10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의 목사였던 나에게 이런 큰 금액을 청구하는 것은 괘씸하니 패가망신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라며 “어떻게 교회가 이럴 수 있나 싶었다”라고 허탈해했다. 

퀴어와 그 앨라이들을 노골적으로 배척하는 한국 보수 교회의 현실을 마주한 이동환 목사는 한국 교회가 우리 공동체 구성원을 포용하는 대신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현실이 우려스럽다고 말한다. 이 목사는 “성경에 동성애를 언급한 부분은 6~7구절로 극히 일부다”라며 “성경 말씀 전부를 그대로 따르자면 노예제도 역시 온당한 것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소수자만을 유독 배척하는 것은 오늘날 교회가 가장 외부자인 성소수자를 적으로 상정해 내부인을 결집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비판했다. 

이동환 목사는 교회가 상대를 존중하고 사랑을 나누는 단체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고된 재판과 수많은 비난을 마주한 후에도 퀴어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그가 조직한 크리스천 퀴어 활동 단체인 ‘큐앤에이’는 퀴어 친화적인 목회를 위한 예배 자료를 제작하거나 크리스천 퀴어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크리스천 퀴어 권익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큐앤에이 김유미 간사는 “큐앤에이의 활동은 우리가 교회의 차별 행위로 인한 피해 당사자로서만 목소리 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교회 내 변화를 만들어 내는 주체로 일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사랑이 변화를 가져올 날을 기다리며

 

성소수자부모모임 행사에서 활동 중인 비움 씨(오른쪽). (사진제공: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부모모임 행사에서 활동 중인 비움 씨(오른쪽). (사진제공: 성소수자부모모임)

퀴어의 가장 곁에서 함께하는 크리스천 부모는 어떨까. 20대 미국 유학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비움 씨는 한국의 모 교회에서 성가대 단장을 맡아 활동하고 안수 집사에 선출되기도 할 정도로 열정적인 교인이다. 때문에 그의 자녀가 MTF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비움 씨는 그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까지 몇 주가 걸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상황을 “아내는 일주일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울기만 했고, 나는 아이를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회상했다. 

비움 씨 부부는 우연한 계기로 유튜브에서 시청한 한 시간가량의 영상을 보고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서는 한 정신과 의사가 트랜스젠더는 환자가 아니며, 트랜스젠더에게 차별적인 사회 속에서 스스로 정체화한 성을 따르는 것이 이들에게 얼마나 간절하고 힘든 일인지를 설명했다. 비움 씨 부부는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가 무엇인지 배웠고 그들의 존재를 거부하는 시선 탓에 많은 트랜스젠더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비움 씨는 “우리 아이도 자살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부모마저 자녀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이는 온 세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아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비움 씨는 “이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는 단순한 취향이나 기호가 아니라 정체성의 일부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이 먼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비움 씨 부부가 자녀를 지지하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가 일가친척에게 다큐멘터리를 보여주고 자녀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했지만 신실한 형님은 자녀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비움 씨는 성소수자의 부모라는 사실 때문에 다니던 교회에서 안수 집사 자리를 거부당하기도 했다. 나이가 많은 교인이 단체 카톡방에 종종 ‘동성애 반대 운동’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기도 했다. 비움 씨는 “이런 메시지를 올리는 교인들에게 ‘당신의 가족이 그들 중 하나일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이 땅에서 가장 소외되던 이들을 사랑하던 분이었다’라는 개인 메시지를 보내 설득하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그는 성가대 단장 임기를 한 달 남기고 몇십 년간 다니던 교회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비움 씨가 다시 교회에 다니기로 결정한 것은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는 것이 교회의 변화와 자녀의 행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친하게 지내던 교인이 ‘당당하게 교회에 나오면 제2, 3의 커밍아웃 부모가 나오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면 한국 교회가 변하지 않겠냐’라고 말해준 것이 큰 힘이 됐다”라고 떠올렸다. 이어 그는 “아직 가족에게조차 거부당하는 성소수자가 많다”라며 “꿋꿋하게 우리 존재를 알려 언젠가는 차별로 고통받는 이가 없어지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MTF(Male to Female) 트랜스젠더: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사람.

 

가까이 지내던 친구나 사랑하는 자녀가 성소수자임을 알게 됐을 때 그의 면전에 ‘당신은 죄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박희규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과)는 “교회가 퀴어 집단을 배척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멀고 이질적인 집단이라고 느껴서 그런 것”이라며, “그들과 친밀한 관계를 나누다 보면 평생을 ‘동성애는 죄’라고 알고 지낸 사람도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혐오보다는 사랑을 믿는 삶의 방식이 교회에 전해질 날을 기다려 본다. 사랑은 늘 이기기 때문이다.

 

사진: 손가윤 기자 

yoonpat2701@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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