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림 총장이 임기 2년 차를 맞았다. 유 총장 취임 이후 1년 동안 서울대는 교육, 행정 등의 분야에서 크고 작은 변화를 맞았다. LnL 시범 사업을 필두로 첨단융합학부, 학부대학 등이 교육 변화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는가 하면 행정 분야에서도 지난 6월 총장 직속의 제도혁신위원회가 신설돼 신뢰 기반 거버넌스 구축의 발판이 되기도 했다. 

유홍림 총장 취임 이후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가 시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내 구성원 간의 민주적 관계 구축을 통해 공동체의 질적 도약을 추동할 수 있는 인권헌장 제정 논의는 좀처럼 진척이 없는 모양새다. 인권헌장은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 발표와 토론회’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대학신문』 2019년 11월 18일 자) 기획연구과제로 진행된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인권헌장 및 대학원생 인권지침 제정(안)에 관한 공청회’가 열리고, ‘서울대학교 인권헌장에 대한 미래세대 인식조사’(인식조사) 정책 포럼이 진행되는 등 본부 차원에서 다방면으로 인권헌장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의견을 모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외에도 오세정 전 총장이 퇴임 직전 인권 담화문을 발표하며 부분적으로나마 인권헌장의 외연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오 전 총장의 인권 담화문은 말그대로 담화문인 만큼 구성원이 규범으로 삼을 인권헌장 논의가 지속돼야 했음에도 유 총장 취임 이후 본부 차원의 조사나 공청회 등 인권헌장 제정 논의는 지금까지 전무한 상태다.

이제는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진전된 공론 과정을 마주해야 한다.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을 포함한 다양한 정체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제3조에 대해 학내 구성원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일각의 주장은 그간 인권헌장 제정 논의에 걸림돌이 돼 왔다. 하지만 인식조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학생 중 90% 이상이 제3조에 동의하고 76.5%가 인권헌장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밝힌 만큼 인권헌장 제정 논의 추진 동력은 충분하다. (『대학신문』 2022년 12월 5일 자) 2016년 인권 가이드라인의 공식 규범화가 무산된 후 인권헌장을 본격적으로 다시 논의하기까지 약 4년이 걸린 것처럼, 인권헌장 제정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전시키지 못한다면 또다시 많은 시간이 지난 뒤 처음부터 인권 조항 논의를 시작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실무협의체를 만들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조사 및 공청회 등을 진행하는 등 실질적인 공론화를 이어가야 할 때다.

유홍림 총장은 취임사에서 ‘진정한 박애 정신의 실천’을 강조한 바 있다. 박애의 출발점은 구성원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인권 의식의 제고에 있다. 유 총장이 취임 100일을 맞아 『대학신문』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인권헌장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향후 공론장을 형성하고 학내 의견을 수렴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할 예정이다”라고 답했던 것이 무색하게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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