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윤석열 대통령이 김현숙 전 여성가족부(여가부) 장관의 사표를 5개월 만에 수리하면서 여가부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대통령실은 여가부를 당분간 차관 체제로 운영할 것이라며 총선 이후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가부 폐지는 윤 대통령이 여가부가 성평등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타 부처와 사업 중복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후보 시절부터 내세운 공약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아무런 설명 없이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글자만을 SNS에 게재하는 등 지지율을 위한 소위 ‘성별 갈라치기’를 겨냥하고 여가부 폐지를 거론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왔음을 고려하면, 지금의 일방적인 여가부 폐지 논의가 과연 합당한지 의문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부처 쇄신은 필요하지만, 여가부 폐지를 국회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행하려는 대통령의 시도는 권한 남용이다. 법률상 행정 조직을 개편하거나 폐지하려면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다수당인 야당의 반대로 무산되자, 대통령은 타 부처 인사를 여가부에 임명하고 장관직을 공석으로 두는 등 여가부가 스스로 기능을 잃은 식물 부처로 남게끔 사실상 편법으로 기능을 멈추고 있다. 대통령이 행정 조직의 임명권자더라도 국회와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국정 운영에 책임을 다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여가부 폐지가 여전히 논쟁적인 사안임에도 조직 개편에 대한 면밀한 진단과 국회를 통한 숙의 없이 법적 절차마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편법적으로 여가부가 폐지된다면, 기능이 이전된 부처에서 여가부의 역할을 온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2022년 조직개편안을 통해 여가부를 폐지하되 여가부 기능은 고용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산하 신설 부서로 이관해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가부가 폐지돼 독립 부처에서 지위가 격하될 경우 법률 제안권 등 그동안 여가부가 독자적인 부처로서 가졌던 권한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의 위계와 업무 분담을 생각하면 여가부의 본래 기능은 주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복지부에 ‘여성’을 지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를 신설해 여가부의 기능을 이관하겠다는 계획에서 드러나듯이, 여성 정책에 전문성을 띤 독립된 부처가 없어짐에 따라 성평등 실현의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어려워질 것은 자명하다. 특히 여가부가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취약계층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음을 생각하면, 여가부를 공연히 반으로 쪼개는 것이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양산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여가부 폐지 논의가 진정으로 저출산, 성차별 등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설적인 장이 아니라, 혐오를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는 수단이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부디 정치적 고려보다 정책적 고려를 우선해 가족·청소년·성평등 문제 해결에 공백이 생기지 않는 결정을 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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