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도파민의 과학적 실체와 도파민 담론

최근 국내에서는 ‘도파민 돈다’, ‘도파민 터진다’ 등, 강렬한 자극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도파민’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밈(meme)을 활용하는 것이 유행이다. 그러나 이런 용어는 도파민을 정확히 이해하고 쓰인 것일까? 도파민이란 무엇이고, ‘도파민 밈’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도파민이란 무엇인가=도파민은 신경세포 간 시냅스*를 오가며 신경회로를 활성화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뇌과학연구소 남민호 연구원은 “도파민은 신경회로를 활성화해 운동조절과 보상심리 등 다양한 뇌 기능에 기여한다”라고 설명했다.

그중에서도 도파민의 핵심적인 역할은 뇌에서 보상회로를 활성화해 쾌감과 욕구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한국뇌연구원 구자욱 책임연구원은 “보상회로는 전전두엽, 해마, 측좌핵, 편도체, 복측피개 영역을 아우르는 뇌의 회로로, 도파민은 그 분비량에 따라 보상회로의 활성화에 기여한다”라고 설명했다. 도파민이 다량 분비돼 보상회로가 활성화되면 쾌감과 욕구가 발생한다. 이때, 뇌는 쾌감을 느끼고 욕구를 지속적으로 충족하고자 도파민이 분비되게 한 행동을 반복하고 학습한다.

*시냅스: 신경전달물질이 수용체와 만나면서 신호가 전달되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의 연결 부위.

 

◇‘도파민 중독’, 학술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일까=최근 뇌과학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도파민의 용례가 확장되면서 ‘도파민 중독’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동시에, 스스로 ‘도파민 중독’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파민을 줄이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이른바 ‘도파민 디톡스’도 함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도파민 중독’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독의 매커니즘은 강렬한 외부 자극에의 반응으로 도파민 분비량이 늘어나 도파민 수용체의 개수가 증가하고, 늘어난 수용체의 개수를 충족하지 못하면 도파민을 분비시키기 위한 자극 탐색이 반복되는 것이다. 구자욱 책임연구원은 “이미 수용체가 늘어난 상태에서 도파민 공급이 급격히 줄어들면 극단적인 만족과 쾌락을 찾는 금단증상에 빠지는데, 이것이 중독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도파민은 중독의 매커니즘에 관여하는 물질일 뿐 정확히는 도파민 그 자체에 중독되는 것이 아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도파민 중독’이 아니라 도파민을 과다하게 분비시켜 발생하는 보상회로의 교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래혁 교수(글로벌사이버대 뇌교육학과)는 “단기적으로 쉽게 얻은 도파민 자극은 보상회로를 교란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재익 교수(UNIST 생명과학과)는 “숏폼 콘텐츠와 같이 빠르게 전달되고 사라지는 보상이 과도하게 제공되는 경우, 우리 뇌는 일상에서 도파민 분비를 유발하는 다양하고 평범한 자극들에 반응하기 힘들어진다”라고 전했다. 보상회로가 교란돼 자극의 역치가 높아지면 일상적 자극에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도파민 사회’의 속살은=‘도파민 중독’이 정확한 학술적 용어가 아님에도 최근 들어 급격히 유행하는 것은 우리가 도파민 분비를 유발하는 외부 자극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 속에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장래혁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는 숏폼 콘텐츠 등 적은 노력으로 도파민 분비를 자극하는 외부 환경이 많아졌다”라고 평했다. 특히 오늘날 빅테크 기업은 이익을 위해 소비자들의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중독으로 이끄는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김병규 교수(연세대 경영학과)는 “빅테크 기업은 소비자들이 계속 서비스를 사용해야 이익을 얻는다”라며 “중독을 이익으로 전환하는 중독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쾌락을 추구하는 사회의 단면은 마케팅에서도 드러난다. 마케팅 학계의 새로운 학술개념 ‘펀슈머’는 재미(fun)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소비활동을 할 때 재미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소비자를 일컫는다. 펀슈머는 대중들이 상품을 소비하며 재미를 경험하고 SNS를 통해 이를 공유하는 등 소비 행위 자체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경향을 강조하는 단어다. 제품을 출시할 때 밈을 활용하거나 예상하지 못한 업체 간 협업을 통해 소비자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 펀슈머 마케팅의 대표적인 예시다.

도파민은 쉼 없이 움직이는 현대 사회의 상징이기도 하다. 장래혁 교수는 “20세기 동안 줄곧 논의된 ‘도파민 사회’ 담론에서는 욕망을 바탕으로 성공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게 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도파민에 빗댄다”라며 “끊임없이 노력하고 탐닉하는 현대 사회의 속도감은 도파민이 과다 분비됐을 때 더 큰 도파민을 얻기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과 비슷하다”라고 비유했다. 

 

도파민의 용례가 확장되는 현 상황은 도파민으로 상징되는 쾌락 추구가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피로가 사회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증거라 볼 수 있다. 뇌과학에서 사용되는 학술적 개념으로서 도파민을 넘어, 우리 일상으로 들어온 도파민 담론이 자극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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