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문화 | 2024 서울대 미술관 소장품전 〈삶에서 건진 아름다움의 지분〉

2024 미술관 소장품전이 지난 1월부터 시작돼 오는 10일(일)까지 미술관(151동)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소장한 조각 및 회화 작품 중 일부를 꼽아 △예술과 기증 △삶과 인물 △절제와 새로움이라는 주제로 재구성해 소개한다. 〈삶에서 건진 아름다움의 지분〉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손에서 탄생한 아름다움을 기증자와 미술관을 거쳐 관람객에게 나누고 있다. 

 

◇기증, 예술을 처음 나누는 마음=미술관의 본질은 많은 사람과 예술을 함께하는 것에 있다. 미술관이 예술을 나누기 위해서는 다양한 예술 작품을 대중과 나누려는 누군가의 마음이 있어야 하고, ‘기증’은 그런 마음의 산물이다. 그래서 나눔에 주목하는 이번 전시는 ‘예술과 기증’으로 시작한다.

배찬효 작가의 〈서양화로 뛰어들기〉.
배찬효 작가의 〈서양화로 뛰어들기〉.

첫 번째 전시관이 위치한 2층으로 올라가면 최근 3년간 미술관이 기증받은 200여 점의 작품 목록이 기증자별로 분류돼 적혀있다. 대표적으로 삼성 故 이건희 선대회장 유족은 초기 서울대 미술관의 정체성 확립에 영향을 준 이종상, 김병종 화백의 작품을 기증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1세대를 이끈 故 서세옥 화백의 유작 중 61점은 유족의 뜻에 따라 서울대 미술관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 층 더 올라가면 주류 문화에 도전하는 사진 작품으로 잘 알려진 배찬효 작가의 기증 작품 〈서양화로 뛰어들기〉가 멀리서부터 황금빛으로 번쩍이며 관람객을 맞이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술관 오진이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하는 일은 작품이 영원히 지낼 집을 선택하는 일”이라며 “훌륭한 기증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작품이 가장 빛을 볼 수 있는 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한다”라고 기증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번 전시에서는 기증자에 대한 예우를 나타내고자 미술관이 최근에 기증받은 작품들을 첫 번째 전시관에 배치하고 기증자의 성함을 작품 아래에 돋보이게 기재했다”라고 밝혔다.

 

◇예술은 무엇을 나누고자 하는가=예술 작품을 나누는 기증자에 주목한 첫 번째 전시관을 지나면, 두 번째 주제인 ‘삶과 인물’을 통해 삶에서 건진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관람객과 나누려는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다. 전시장 복도를 지나면 바로 만날 수 있는 최종태 작가의 〈회향〉은 올곧게 선 채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소녀의 모습을 청동으로 조각한 것이다. 작품은 청동처럼 굳게 품고 있는 고향을 향한 마음을 소박하고 꾸밈없이 담아낸다. 한편 윤호중 작가의 〈사과를 든 모녀상〉은 한복을 입은 두 여성의 모습을 나무로 조각했다. 이 작품에 대해 오진이 학예연구사는 “조각 작품으로는 드물게 195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작품 표면에서 생생하게 느껴지는 나뭇결과 조각칼이 지나간 자리에서는 긴 세월을 뛰어넘는 섬세한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허산 작가의 〈검은 비닐 봉투〉.
허산 작가의 〈검은 비닐 봉투〉.

이와 동시에 예술은 경계에 관한 질문을 관람객과 나누고자 한다. 긴 복도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전시관에서는 ‘절제와 새로움’이라는 주제 아래 예술 작품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묻고 있다. 전시관 한구석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정광호 작가의 〈항아리〉는 구리선을 사용해 조각 작품의 새로운 무게감을 보여준다. 작가는 얇은 구리선을 촘촘하게 엮어 커다란 항아리의 형상을 만들었다. 조형물이 갖는 부피는 유지하되 질량을 줄이는 색다른 방식으로 전시장의 공간을 점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바로 옆에 놓인 허산 작가의 〈검은 비닐 봉투〉는 실제 비닐봉지와 외관이 흡사하지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는 무거운 질량으로 바닥을 누르고 있다. 이처럼 통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절제되고 응축된 작품들은 관람객을 예술의 정의에 대한 고민에 빠뜨린다.

 

이민희 한국수어통역사가 오진이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통역하고 있다.
이민희 한국수어통역사가 오진이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통역하고 있다.

◇예술의 지분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다=이번 전시는 예술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지분을 다양한 몸을 가진 관람객들과 나누기도 한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 전시장 곳곳에는 저시력 시각 장애인의 전시 관람을 돕는 릴루미노 글래스가 배치됐다. 릴루미노 글래스는 빛의 양을 조절해 잔존 시력이 있는 저시력 시각 장애인이 착용할 경우 사물의 윤곽선이 강조되고 사물 인식률을 높여 보여준다. 한편 지난달 28일에 진행된 큐레이터와의 전시 관람에는 한국수어통역사가 동행해 큐레이터의 설명을 통역하기도 했다. 이에 관악구수어통역센터에 등록된 농인 10명이 미술관을 찾아 다른 관람객들과 함께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통역을 맡은 관악구수어통역센터 이민희 한국수어통역사는 “농인 관람객이 먼저 작품에 쓰인 소재를 묻고 큐레이터의 답변에 놀라는 등 전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라며 “이해하기 어려웠던 예술 작품을 설명과 함께 감상할 수 있어 좋아하셨다”라고 전했다.

다양한 몸에게 열린 전시는 더 많은 관람객에게 예술을 나눌 수 있다. 오진이 학예연구사는 “미술관은 관람객에게 다양한 감각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라며 “장애가 있는 사람도 스스로의 감각을 통해 충분히 아름다움의 지분을 나눠 가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배리어프리 미술관에 대한 활발한 논의와 미술관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단계”라며 “이번 전시의 시도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밝혔다.

 

오는 10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에서는 예술가의 손끝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이 기증자와 미술관을 거쳐 다양한 관람객에게 공유되고 있다. 바쁜 학기 초지만 잠시 미술관에 들러 예술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의 조각을 손에 쥐어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 김부송 기자 

love307373@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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