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수(재료공학부·22)
조민수(재료공학부·22)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학식 메뉴에서부터 취업과 진학에 대한 고민까지, 많은 선택지를 마주하며 살아간다. 선택이 온전한 내 의지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오늘의 시간은 어제까지 내가 선택한 순간들의 결과다. 이 글이 기고를 신청했던 선택의 결과인 것처럼. 우리는 지난 선택들은 과거로 남겨둔 채 오늘을 마주하지만, 가끔은 이미 지나친 선택의 길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갈림길에 남겨두고 온 것들을 다시 마주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지나간 일에 새로운 눈물을 낭비하지 말자.’ 일기장 한 귀퉁이에 적힐 법한 이 문장은 영화 〈신과 함께〉에서 인상 깊었던 한 대사다. 진부해 보이긴 해도, 이 말은 과거는 묻고 다가올 미래에 시선을 두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아픈 과거는 재빨리 씻어내고 내일을 낭비하지 말자는 말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반면, 시간이 지나서도 지난 아픔을 곱씹는 것은 과거에 얽매여 미련해 보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삶의 모습은 대체로 후자에 가깝다. 적잖은 연인들이 헤어진 지 수년이 지나 재회하고, 지긋한 나이의 어른들은 직장을 그만두고 예술혼을 불태우곤 한다. 이렇듯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비범하거나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모한 일이 아니라 보통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그중 어떤 선택들은 특히나 쉽게 잊히지 않을 때가 있다. 떠나간 사람을 잡지 못했던 안타까운 기억과 솔직한 마음을 삼켰던 순간, 우왕좌왕 허둥대다 소중한 기회를 놓쳐버린 일들은 시간이 지나도 나를 떠나지 않고 종종 찾아와 마음을 긁어 놓곤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가끔 실망감과 자책감에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기도 한다.

이번 겨울, 필자는 제주에서 서른세 살 약대생 형을 우연히 만났다. 6년 넘게 공부한 생명공학을 뒤로하고 늦깎이 편입을 결심한 형과 사계해안도로를 달리며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너무 늦은 듯한 선택에 불안하지는 않았냐는 물음에, 이미 해버린 선택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에 최선을 다한다는 대답이었다. 문득 수험생 시절 교재 한 귀퉁이에서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내가 한 선택이 맞는 것이라고 믿고 가는 것, 그게 삶을 살아가는 정답입니다.’ 삶에 정답이 있겠냐마는, 과거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에 대한 불안과 후회 섞인 자책이 익숙했기 때문에 그제야 문장 속 숨은 뜻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만큼 선택 앞에서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후회하고 싶지 않아, 그토록 애를 써가며 나의 최선을 증명하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문단 끝에 이야기가 여기까지라는 표시를 남긴다. 미처 풀어내지 않은 것들은 뒤로 한 채, 단호한 점 하나(.)를 찍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한다. 반면, 아직 마칠 준비가 되지 않은 문장 중간에는 꼬리를 늘어뜨린 점 하나(,)를 찍고 숨을 고른 뒤, 남은 이야기를 마저 이어간다. 단번에 찍은 점 뒤에 미련을 담은 꼬리 하나를 살며시 그려,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까만 점 하나로 문장을 마치듯, 우리는 한순간의 결심으로 많은 시간을 매듭짓기를 원한다. 나를 떠난 사람에 대한 마음도, 도저히 내 손에 잡히지 않던 바람도 더는 내 곁을 맴돌지 않고 떠나가기를, 마침표의 단호함을 담아 바라곤 한다. 그러나 마침표는 문장을 마칠 수 있을 뿐, 어쩌면 우리 삶의 마침표는 온점보다는 쉼표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지나 보낸 과거의 내 마음이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다시 찾아오는 일을 마주하며, 내 삶의 문장들은 꼬리를 길게 끄는 쉼표에서 점점 마침표에 가까워져 간다. 그러니 지나간 것을 단번에 매듭 지워 정리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그건 우리가 마침표를 찍을 준비가 돼있지 않아서나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아주 보통의 마침표를 찍어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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