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교수(생명과학부)
이준호 교수(생명과학부)

2023년 노벨상을 받은 mRNA 백신은 어떻게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었을까. mRNA가 일으키는 염증 반응이라는 부작용을 막지 않으면 백신으로 쓸 수 없다는 문제를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은 이미 팬데믹이 오기 15년 전에 간파하고 투지와 끈기로 중요한 발견을 이뤄냈다. 세계를 구원한 mRNA 백신은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기초연구 끝에 탄생한 빛나는 결과물이다. 노벨상으로 대표되는 인류사적 발견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기초과학의 토양에서 호기심과 끈기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란 아름드리 나무와 같은 것이다. 

2024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전반적인 감소 상황에서도 과학기술의 토대가 되는 기초연구 지원 예산만큼은 작년 대비 약 2% 증액된 2조 6,326억 원 규모로 확정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정말 이상적인 체제를 갖추는 방향으로 됐는지는 면밀히 살펴야 한다. 첫째, 기초연구 지원 예산은 소액 증가했으나 현장에서는 기존에 선정된 ‘계속과제’의 연구비가 설명 없이 삭감됨으로써 확정돼 있던 예산도 언제든지 줄어들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예측 가능한 안정적 연구 수행이 힘들어졌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정부와 과학자 간의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예측 가능한 연구 지원 방침의 회복이 절실하다.

둘째, 더 큰 문제는 개인 소액 과제 지원은 일몰 사업으로 지정될 정도로 현저하게 약해졌다는 점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기본과제와 교육부가 주관하는 ‘학문균형발전’ 사업이 올해 신규 과제를 뽑지 않는 일몰 사업이 됐다. 비전임 교원을 포함하는 신진 연구자, 지역 우수 과학자 그리고 보호·융합 연구 등을 지원해 오던 학문균형발전 사업은 대학 기초학문 분야의 토대 연구라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또한 기본과제는 중견 연구자들이 지속가능한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2024년 기초연구 예산의 또 다른 문제는 교육부 중점연구소 사업의 일몰화다. 중점연구소 사업은 대학의 연구소를 통해 학문 후속 세대 양성과 연구 기반을 튼튼히 하는 사업이었다. 타 연구기관과 달리 대학의 연구소는 R&D를 넘어 학문 후속 세대들이 핵심 연구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산실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서울대 자연대에서는 자율운영 중점연구소 사업을 통해 최우수 학문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한 ‘SNU Science Fellow’ 박사후연구원 제도와 학부생들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자율적 연구지원 형태를 일몰시킬 것이 아니라 대학 연구소 중심으로 오히려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2024년 기초연구 R&D 예산안이 가장 기초적인 성격의 사업들에 대한 지원을 홀대한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연구지원사업이 단시간 안에 성과를 가시적으로 내지 못해 수월성이 떨어지는 예산 낭비 사업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기초학문 분야는 그 성격상 당장의 목표 달성을 지향하는 연구가 아니다. 기초연구 분야는 이유 없이 나눠먹기 식으로 연구비를 뿌려 주는 분야가 아니라 의도적으로라도 다양성을 키워야 하는 분야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런 철학이 있어야 첨단과 수월성이 설 수 있는 기초를 튼튼히 할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이 이민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한인 학생이 큰 목소리로 의견을 냈을 때 오바마 대통령은 이 학생을 끌어내려는 경호진을 제지하고 그 자리에 머물게 하면서 용기를 존중한다는 말과 함께 이민 정책은 큰 소리로 외치는 것만으로 해결되기에는 훨씬 복잡한 문제임을 설득해 큰 박수를 받은 바 있다. 우리도 대통령이 다양한 자리에서 R&D 예산의 대폭 증액 방침을 밝히기도 한 만큼,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가 기초과학계를 포함한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지혜를 모아 간다면 기초연구의 혁신적인 발전 방안을 현명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주 단순한 문제일 수도 있다. 튼튼한 기초가 있어야 수월성의 날개를 펼칠 수 있음을 잊지만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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