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흠 방문연구원(아시아연구소)
백범흠 방문연구원(아시아연구소)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글로벌 기후변화, 즉 소빙기로 불릴 정도로 100여 년 이상 계속된 기온 하강이 병자호란 발발과 명나라 멸망의 최대 원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는 인구밀도가 높았던 명나라에는 농민반란으로, 인구밀도가 낮았던 청나라에는 명나라와 조선 등에 대한 침략전쟁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와 명나라의 경제봉쇄로 인해 식량 사정이 극히 좋지 않았던 청나라가 노동력과 물자를 약탈하기 위해 계획했던 전쟁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당시 유럽의 30년 전쟁도 기온 하강에 따른 흉작이 주요 원인이었다.

오늘날 기후변화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나타난다. 기온 상승이 야기한 가뭄의 형태로 나타나는 기후변화는 글로벌 식량안보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가장 충격이 심한 곳은 아프리카 사헬지역이다. 말리, 수단,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을 휩쓸고 있는 내전과 전쟁의 최대 원인 중 하나는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흉작에 따른 식량부족이다. 고갈된 사헬지역 수자원은 농업을 차치하고 주민들이 음용(飮用)하기에도 빠듯하다. 이 지역 주민들은 먹을 것을 찾아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한다. 심지어 유럽까지 이주하기도 한다. 또한 시리아 내전 발발과 이슬람 극단주의 이슬람국가(IS) 봉기 역시 대체로 기후변화로 인한 수자원 공급 위기에 기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후변화는 우리 농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사과와 인삼 경작지가 북상했다. 사과와 인삼 최대 생산지가 풍기, 홍천, 양구 등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인접 지역으로 바뀌었다.

기후변화가 가까이는 농업, 어업, 멀리는 전쟁에도 영향을 미치며 인류에 치명적 결과를 야기하는 글로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미국 서부와 호주 내륙, 심지어 아마존 유역조차 기후변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기 가뭄이 사헬지역과 중동, 미국 서부, 호주 내륙, 몽골 서남부 등에서 점점 더 빈번해지고 심화하고 있다. 가뭄과 홍수 등 강수 패턴 변화는 지력 쇠퇴와 농작물 병충해 확산으로도 이어지는 등 농업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특히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개발도상국 농민의 취약성을 심화시킨다. 글로벌 농업위기는 또한 애그플레이션(agflation)같은 식량안보 위기와도 직결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은 해양 생태계에도 변화를 야기했다. 명태와 오징어 등 우리가 흔히 먹던 물고기들이 우리나라 바다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고 있다. 이렇듯 기후변화는 농업, 어업은 물론 임업과 축산업의 생산성도 저하시킨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을 촉진하고 장려하며, 투자를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20.2%에 불과하다. 불리한 자연 여건과 낮은 경제성으로 인해 식량 자급이 사실상 불가능한 우리나라가 살길은 농축산물을 수입해 일부는 비축하고, 대부분은 가공해 재수출하는 길밖에 없다. 일례로 국토 면적이 우리나라의 약 40%에 불과한 네덜란드는 수입한 농축산물을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미국에 이은 세계 제2위 농축산물 수출국이 됐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도 석유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정제해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매년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북에 ‘새만금’이라는 농축산물 가공에 적합한 광대한 해안 부지를 갖고 있다. 새만금에 제분·제당 공장을 필두로 면류, 과자류, 유제품, 육가공, 해산물 가공, 사료공장은 물론 포장재와 식품가공 기계 공장 등을 일관적으로 집적·체계화한 종합식품 콤비나트를 구축한다면, 세계 인구의 약 51%가 거주하고 있고 지속적인 소득 증가가 예상되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등에 가공 제품을 대량 수출하는 농축수산식품 수출 전용 단지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농축산물 수출국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농축수산물의 단순 생산이 아닌 수입-재수출 방식만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문제도 해결하고, 일자리 창출과 국가 경제 발전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