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삽화: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나의 배우자는 낮에는 직장을 다니고, 밤에는 글을 쓴다. 그는 내게 자주 말한다. “너무 바빠. 글 쓸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겠어.” 

“시간이 없다”, “바쁘다”라는 말은 우리 문명의 상투어가 됐다. 관련해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한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볼 수 있고, 빨리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짧은 모바일 영상이 유행한다는 것이다. 길고 지루한 것은 집중 받지 못하고, 짧고 자극적인 것만 살아남는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태에 위기감을 느끼고 ‘요즘 사람들’에게 긴 글을 읽을 수 있는 문해력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소리치거나, 스스로 디지털 자극을 멀리하는 ‘디지털 디톡스’를 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작가 요한 하리는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조금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루 일과 끝에 지쳐 널브러져 영상을 넘기게 되는 까닭은 단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의 유혹에 굴복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밤늦게까지 깨어있느라 수면이 부족해서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려서며, 다양한 (그리고 때때로 쓸데없는) 업무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유튜브를 끊겠다는 개개인의 의지나 결심이 아니라, ‘주4일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휴식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그래도 되는 사회인 것이다.

야근에 지쳐 침대에 누워 짧은 영상을 넘기는 사람에게 긴 시간을 들여 민주적 시민의 의무를 다하라고, 저 깊은 예술의 세계를 맛보라고, 가족을 더 길게 돌보라고, ‘갓생’을 살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아파도 점심시간에 빠르게 병원에 달려가 약을 잔뜩 먹고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 삶을 더 개선할 노력이 부족하다고 소리 지를 수는 없는 법이다. 

한국은 아프면 쉴 수 있는 권리, 유급병가가 법적으로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OECD 안의 거의 유일한 국가다. 한국의 노동자는 독일이나 프랑스의 노동자보다 연간 400~500시간 넘게 더 일한다. 포괄임금제는 회사가 전혀 부담 없이 공짜 야근을 시킬 수 있는 주범으로 일터마다 만연하다. 그러는 와중에 내 배우자가 글을 쓸 시간, 회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가족과 긴 휴가를 떠날 시간, 지역에 출마한 정치인에게 찾아가 질문하고 유세를 들을 시간, 자기 자신을 돌볼 시간, 그리고 아이를 낳고 돌볼 이런 시간들이 ‘사치’처럼 여겨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정치 사상가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지금 같이 과로가 일반화된 사회나 직장에서의 쓸모 이외의 다른 가치들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을 그저 ‘교통체증에서 앞으로 나가는 데의 방해물들’로 간주하는 사회에서는 정말로 실현되기란 어렵다고. 그 와중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을 ‘가치관이 이기적’이거나 ‘열정과 노력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사회가 지속된다면, 우리는 그저 소통 없이 끝없이 지쳐나갈 뿐이다. 말하자면 ‘동료 시민’들을 위해서는, 주4일제가 필요한 것이다. 

 

강승 간사

kang9309@snu.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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