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원 차장(취재부)
신승원 차장(취재부)

2021년 관악학생생활관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 한 분이 돌아가셨다. 그 빈자리를 두고 날이 선 말들과 무거운 물음들이 메아리쳤다고, 그 시절의 기사들에서 읽었다. 3년이 다 돼가는 지금, 이번에는 내가 그 이어지는 물음들을 안고 그곳으로 돌아갔다. 누군가의 죽음에 관해, 그 대가로 만들어진 변화에 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들에 관해 물어야 했다. 망자는 말이 없으니 그 지독한 물음을 받아내는 것은 주변의 몫이다. 보통 이런 주제를 꺼낼 때는 흔들리는 분위기에 나가떨어져 버리지 않으려고 몸에 힘을 준다. 누군가는 그때 너무 시달려서 이제 그만 말하고 싶다며 다른 사람에게 인터뷰를 부탁하라고 했다. 누군가는 기자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무슨 문제 있어요?”라며 자리를 떴다. 언론에 무언가를 얘기했다가 소위 ‘찍힌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완곡히 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마치 한 마리 파리가 된 양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며, 앵앵, 덤벼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씁쓸하게도, 취재와 물음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면 이를 정당화할 이유가 필요했다. 그 이유가 없다면 제아무리 원석 같은 이야기를 찾아내서 좋은 문장으로 써낸다 해도 끝내 ‘기레기’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으리라. 취재 초반에는, 말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말할 자리가 없는 사람을 찾아 그의 이야기를 수면 위에 띄우는 것으로 충분하겠다고 생각했다. 또는 문제인 듯 아닌 듯 애매하지만 분명 누군가가 느끼고 있는 소외감과 불편함을 또렷하게 만드는 것이면 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적절한 입을 빌려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기자의 입장이었다. 실상 내 앞에는 문제의 결과나 징후를 보여주는 ‘빌린 입’으로 요약될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 있었다. 결국 먼저 누군가의 삶을 물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당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런 고민들을 혀뿌리에 매단 채, 나는 어떤 질문들보다 먼저 “안녕하세요?”하고 입을 뗀다. 

정현종 시인은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라고 물으며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라고 우리를 부른다. 그래,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빚지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서로의 안녕을 물을 의무가 있다. 그러나 사람 인(人)자에서 언제나 오른쪽 획이 왼쪽 획을 받치고 있듯, 구조적으로 더 많은 빚을 지는 사람들이 있다. 잘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에게 기자 명함을 내밀며 바란다. 어떤 질문보다도 먼저 당신의 안녕함을 묻는 나를, 부디 ‘기레기’로 느끼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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