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현 편집장
전상현 편집장

얼마 전, 음원사이트를 뒤적거리다 흥미로운 제목의 힙합 노래를 하나 발견했다. 한 법무법인에서 제작한 《Rap in 형사소송법》이라는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법대로 해〉라는 곡이었다. ‘법대로 해 법대로 / 생각하지마 니들 멋대로’라는 가사로 꽤나 도발적인 도입부를 내세운 이 곡은 2분 59초 동안 ‘법대로 해 법대로’라는 가사를 염불 외듯 수도 없이 반복한다. 노래 말미에 이르러서는 ‘제발 내 말 좀 들어!’라고 외치는 듯한 작사가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법대로 해 법대로’ 가사만 6번 반복하며 노래는 끝맺는다. 이 앨범이 형사소송법에서 보장하는 무죄추정의 원칙부터 증거재판주의까지, 사법 체계 속 국민의 권리를 쉽게 풀어 법이 대중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고자 발매된 것임을 생각하면 제작에 참여한 법무법인과 레이블의 참신한 시도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왜일까. 이 노래가 불편하다. 여느 힙합과는 달리 욕설과 자기 과시가 단 한마디도 없지만, 오히려 구구절절 ‘법적으로’ 맞는 말만 하지만, ‘법대로 해 법대로’라는 가사에 꽂혀 마음 한켠에 이 곡에 대한 씁쓸함이 남는다.

‘법대로 하자.’ 우리나라를 떠받들고 있는 법치주의의 투박한 구어체이자 참 많이 들어봤을 관용구다. 누군가 이 말을 꺼냈을 때, 섣불리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다수의 이성에 따라 만들어진 법은 항상 옳다는 전제 아래, 법은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명제는 우리의 사회적 DNA에 깊숙이 박혀 있다. 그렇기에 법대로 하자고 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비겁함, 부정함, 비이성의 표식이 된다. 동시에, ‘법대로 해’라는 말이 반복될수록 법의 절대성은 공고해지며 법은 점차 신격화된다.

그렇다면 법을 신격화해도 되는 것인가. 법 전문가는 아니니,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그 결론은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니 구태여 법의 불완전성을 언급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법이 신격화되는 사회적 현상 자체는 분명 문제다. 신이 지배한 중세 유럽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신을 믿기만 했는가? 사람들은 신을 이용했다. 신은 곧 무기였다. 모든 행동과 말 앞에 ‘신의 이름으로’만 붙이면 죄 없는 사람을 마녀로 몰아도 됐고 전쟁을 일으켜도 됐다.

법도 마찬가지다. 신격화된 법은 무기가 된다. 무기가 된 법은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강자에게는 천군만마지만 그렇지 않은 약자에게는 유독 칼날이 날카롭다. 재작년 취임한 한 대법관이 부장판사 시절 800원을 횡령한 버스 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내린 것이 회자되며 청문회에서 크게 논란이 됐던 장면이 수억 원을 편취하고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많은 누군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그런가 하면 ‘법대로 해’라는 말로 신격화된 법은 지적 게으름의 명분이 되기도 한다. 법 만능주의는 개인이 갖는 입체성과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가장 쉽고 빠르게 ‘합리성’으로 포장된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결국 이런 지적 게으름 앞에서 개인은 뭉게지고 해체되며 궁극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를 잃어버린 공동체는 물리적 결합에 그치게 될 것이다. 법대로 하는 게 능사는 아닌 이유다.

괜히 이상한 청자한테 걸려서 뜻하지 않게 비판의 대상이 된 〈법대로 해〉의 프로듀서진과 가수 김현근 씨께 조금은 죄송한 마음이 있다. 그래도, 법대로 해라는 말은 여전히 불편하다. 우리 사회가 ‘법’ 말고도 다른 건전한 해결방식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갖춰나갔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