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그린벨트의 역할과 필요성을 진단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지방경제의 활성화와 첨단산업단지 육성을 목표로 그린벨트를 대대적으로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찬반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국내에서 그린벨트가 규제 완화의 대상으로 지목돼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린벨트와 함께하는 도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지 짚었다. 

 

대도시, 초록색 안전벨트를 매다

흔히 ‘그린벨트’로 불리는 개발제한구역은 환경을 보존하고 도시 팽창을 억제하고자 대도시 주변에 조성된 녹지다. 김재현 교수(건국대 산림조경학과)는 “그린벨트는 생태계를 유지하고 도시의 열기를 덜어주며 탄소배출을 상쇄한다”라며 그린벨트가 지닌 생태학적 가치를 역설했다. 나아가 그린벨트는 도시의 여건과 필요에 맞게 녹지 공간을 조절해 도시의 무질서한 팽창을 억제하기도 한다. 정주철 교수(부산대 도시공학과)는 “도시의 과대한 확장은 도심 내 탄소배출의 증가와 교통체증, 난개발 등으로 이어진다”라며 “그린벨트는 도시의 불필요한 팽창으로 인해 시민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돕는다”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1971년에 1938년 제정된 영국의 그린벨트 법을 모델로 삼아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했다. 최봉문 교수(목원대 도시공학과)는 “영국의 도시계획가 아버크롬비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에 뒤이어 발생한 도시의 무질서한 개발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막고자 했다”라며 “도시 외곽에 녹지를 둘러 도시의 경계를 설정하는 도시 계획을 수립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 교수는 “1970년대 서울 또한 비슷한 형태로 과도하게 비대해지자 도시 팽창을 막기 위해 그린벨트를 도입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 결과 국내 그린벨트는 2022년 기준 전국 주요 7개 대도시권에서 3,793㎢를 차지하고 있다.

 

허울만 남은 국내 그린벨트,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런 그린벨트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그린벨트는 꾸준히 해제돼 왔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성급한 그린벨트 제도 추진 과정에서 미흡했던 사유재산권에 대한 고려를 지적한다. 임재만 교수(세종대 부동산학과)는 “개인의 재산권 고려가 부족했던 초기 그린벨트 제도는 자기 건물조차 수리하지 못하게 하는 등 과도한 규제로 구성됐다”라고 비판했다. 최봉문 교수는 “공유지를 그린벨트 구역으로 먼저 설정하는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그린벨트 제도를 설계했다면 그린벨트와 사유재산권이 양립하지 못하고 상충하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 아쉬움을 표했다. 이런 상충은 1998년 사유지에 대한 그린벨트 지정이 사유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이후 그린벨트 해체가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더욱 부각됐다. 최 교수는 “그린벨트 해제는 점차 시가지 근방의 그린벨트부터 비수도권에 있는 대도시에 존재하는 그린벨트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로 확대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린벨트가 성급히 조성되고 곧이어 해제되는 일이 이어짐에 따라, 녹지보존과 도시 관리라는 그린벨트 본래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최봉문 교수는 “개발 제한 규제가 쉽게 해제되며 그린벨트는 환경보전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나 규제 완화와 함께 값싼 땅을 공급해 줄 공급 지대 취급을 받았다”라며 “그린벨트 지역이 그린벨트 규제 해제와 동시에 매매가가 상승한다는 점을 노리고 해당 제도를 부동산 투기에 이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박준 교수(서울시립대 국제개발협력학과)는 “그린벨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성급히 제도를 도입하다 보니, 서울의 그린벨트는 들쭉날쭉한 간격으로 형성됐다”라고 짚었다. 일관되지 않은 형태의 얇은 두께로 조성된 국내의 그린벨트는 도시 경계 설정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그 결과 여전히 도시연담화*와 통근권 확대를 위한 무분별한 난개발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연담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대로 인해 근처 다른 도시들과 경계가 맞닿고 추후 거대도시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현상.

 

그린벨트에서 도시 녹지 공간의 미래를 찾다

그린벨트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린벨트를 지정하고 관리하는 방식에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그린벨트를 그저 자연이 존재하는 방치된 공간으로 둘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향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봉문 교수는 “개발 제한 자체는 유지하면서도 해당 부지를 단순히 방치하지 않고 국민에게 필요한 시설을 제한적으로 마련해 그린벨트의 가치를 더욱 높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박준 교수 또한 “영국의 그린벨트처럼 녹색공간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될 수 있도록 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성도 대두된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서는 그린벨트 제도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로 도심 주변의 녹지 공간을 지키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주철 교수는 미국의 포틀랜드를 예로 들며 “도시 주변 녹지 조성은 각종 인프라를 도시 내부에 집중시켜 도시 활성화에 기여한다”라고 설명했다. 김재현 교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의해 ‘녹지 총량제’라는 제도를 도입한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처럼, 녹지 공간에 대한 시민 의식은 공동체 전반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그린벨트 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를 통한 지방경제 활성화를 약속하면서 그린벨트를 발전의 장애물로 상정하고, 이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하지만 그린벨트는 도시의 발전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존재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오래도록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그린벨트, 나아가 녹지 공간이 우리에게 행하는 역할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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