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순헌무용단의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가 탐색하는 한국무용의 가능성

지난 1일(금)부터 3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전통 한국무용과 실험적 창작무용을 선보이는 순헌무용단의 작품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가 실연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표적인 공연 제작 지원사업인 ‘공연예술창작산실’에서 올해의 신작 무용으로 선정한 이번 공연은 관객이 극장의 로비에서 백스테이지, 본 무대까지 이동하며 관람하는 이머시브 공연* 형식을 취했다. 한국무용에 사유의 몸짓을 담아낸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는 무용수의 몸짓에 몰입하고 탈일상(脫日常)의 사유 공간에 온전히 이입할 수 있도록 우리를 서서히 안내한다.

*이머시브 공연: 공연자, 무대, 관객의 경계를 허물고 관객을 공연의 상황에 참여시키도록 하는 공연.

 

일상의 공간에서 탈일상의 공간으로

▲ 극장 로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 극장 로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의 공연이 시작되는 공간은 일반적인 공연과는 다르다. 극장의 입구인 로비에서부터 공연이 시작되는데, 이는 관객들이 무용수의 몸짓에 더욱 감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무용수가 관객의 공간에서 공연을 시작함으로써 무대와 객석의 간극을 허물고자 시도한 것이다. 이때 순헌무용단 차수정 예술감독은 관객 사이를 돌아다니며 “무용수를 터치하세요”, “무용수 옆에 계세요”라는 말을 직접 건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차 예술감독은 “관객과 예술가가 춤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통했으면 하는 마음에 긴장의 벽을 깨트리려고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극장 로비에서 펼쳐지는 무용수들의 춤은 관객이 티켓을 받고 공연을 기다리는 일상적인 공간을 낯선 탈일상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불교에서 마음을 고요하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좌종*의 소리와 함께 무용수들이 걸어 나온 후 관객 사이에 놓인 붉은 카펫 위에서 ‘사유의 움직임’을 시현한다. 좌종의 소리에 관객은 저절로 숨을 죽이고, 그 자리에 있는 관객이 아닌 시민들도 그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들의 몸짓을 바라보게 된다. 검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붙인 반가사유상의 수인(手印)을 따라한 무용수의 움직임에서는 깨달음과 번뇌 사이에 있는 보살의 사유가 느껴진다.

*좌종: 불전도구로 번뇌를 씻을 수 있다는 맑고 청아한 소리를 가진 종. 

 

무용수의 공간에서 만나는 ‘무용수의 몸’

▲ 모래 오브제를 뿌리고 있는 무용수.
▲ 모래 오브제를 뿌리고 있는 무용수.

로비에서 공연장으로 걸어들어온 관객은 본래 무용수만의 공간인 백스테이지에서 시간을 보내며 무용수의 내면을 이해할 기회를 얻는다. 무용수와 함께 줄지어 백스테이지로 들어가면 허공에 매달린 돌과 모래, 그 사이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를 마주한다. 이 공간에서 관객은 무용수와 함께 춤추며 교감하고, 오브제로 사용된 모래를 돌 위에 뿌리며 공간과 무용수에 익숙해진다. 이를 통해 백스테이지는 무용수만의 독점적인 공간을 넘어 관객과 무용수가 공유하는 공간이 된다. 

백스테이지에서 마주하는 무용수의 춤사위는 자유로움과 생명력을 상기시킨다. 이들은 특정한 안무를 수행하는 대신, 배경에서 들려오는 전통 현악기와 자연의 소리에 맞춰 몸이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럽게 춤을 춘다. 그 과정에서 무용수는 관객의 발걸음에 따라 관객에게 다가가거나 멀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무용수는 즉흥적으로 춤사위를 바꾸며 관객과 교감하는 것이다. 차수정 예술감독은 “관객은 자신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고 변화하는 무용수의 반응을 체험하며 무용수의 몸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관객에게 춤을 추는 행위가 낯선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원초적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춤과 사유의 결합

▼ 본 무대의 수조 속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 본 무대의 수조 속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사진제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옥상훈)

백스테이지를 통과한 관객은 드디어 본 무대에 다다른다. 본 무대는 조명이 비추는 얕은 물과 그 뒤로 은은하게 떠오르는 준초이 사진작가의 반가사유상 사진, 그리고 물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로 구성된다. 무대 바닥을 적신 물은 무용수의 몸짓에 따라 일그러지고 튀어오르다, 좌종의 소리에 맞춰 일순 차분해진다. 물과 몸짓이 동일한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것을 보며 관객은 일상의 여러 자극으로 차 있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비우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전 단계에서 낯설게 느껴지던 무용의 정서적 호소력은 물과 춤이 조화를 이루는 이 무대에 이르러 전면에 드러난다. 차수정 예술감독은 무용의 힘에 대해 “무용은 원초적이고 감정적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성을 소통하는 철학적인 면이 있다”라며 “무용은 사유하는 몸을 표현할 수 있고, 나아가 무용 자체가 사람들에게 생각할 계기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강조했다.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는 사유와 무용을 하나의 관계로 엮어내며 만인에게 새로운 사유의 공간을 제시한다.

 

넘쳐나는 이미지와 비현실적인 속도로 가득한 현대사회 속에서 고즈넉한 사유의 시간을 마련하는 일은 버겁다. 탈일상의 사유 공간에 들어가보는 경험은 우리에게 지친 일상의 번뇌를 씻어내는 정화의 감각을 전달할 것이다. 〈반가: 만인의 사유지(思惟地)〉를 준비한 순헌무용단의 여정은 전통 한국무용을 창조적으로 녹여낸 공연, 〈필묵으로 펼쳐지는 한국춤〉으로 계속될 예정이다. 

 

사진: 박선영 사진부장

leena120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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