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현 씨(자유전공학부·22)
최서현 씨(자유전공학부·22)

정치 얘기 안 권하는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한때 대학은 정치로 가득 찼었다. 학생회와 세미나와 토론으로, 혹은 행진과 최루탄과 바리케이드로. 정치는 광장의 언어로 말해졌다. 학생들은 공공연한 정치담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거나 타인의 입장을 비판했다. 학생운동 시절을 미화하거나 은근히 운동권을 예찬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바람직한 논의의 형태인지는 여기서 판단하고 싶지 않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비(對比)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학생운동이 쇠퇴하며 정치는 광장의 언어에서 추방당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이제는 대부분 타인과 얼굴을 맞대고 정치담을 나누기를 꺼린다.

누군가는 이런 현상을 청년의 반(反)정치화라고, 누군가는 온라인 공간의 탄생이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문학도인 나는 이렇게도 생각해 본다. 이인삼각으로 함께하던 정치와 실존이 어느 순간 헤어졌다고. 실존이 정치를 뒤에 남겨두고 달리고 있다고. 정치적 자유가 없을 때 정치적 위기는 곧 실존적 위기로 다가온다. 1987년의 좌파 청년은 대선 패배를 ‘극도의 무력감과 패배감’(김영현, 「포도나무집 풍경」)으로 느끼지만, 2010년대의 대학생은 다르다. 정치는 중요하지만 실존에 비할 바는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관철하는 것보다는 오늘 하루의 안녕이, 친구와의 원만한 관계가 중요하다. 논쟁적인 정치담은 때때로 극도로 피로하며 ‘일련의 고문과도 같이’(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느껴진다. 결국 우리는 하나의 합의에 도달한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당신의 성향을 묻지 않겠다’는 합의. 당연히 숨은 전제는 ‘당신의 성향을 알면 당신을 사랑하기에 더 힘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당신의 성향을 아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대는 또 한 번 변화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여성들은 이렇게 외쳤다. “개인적인 것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 정체성이 정치적 담론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2024년.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에게 가장 논쟁적인 정치 담론은 이념도, 대북도, 노동도 아니다. 20대 대선의 유례없는 성별 간 격차가 말해주듯, 바로 정체성이다. 정체성 정치의 세계에서는 가정, 미소지니, 성폭력 같은 개인적인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문제로 다뤄진다. 이 중대한 전환은 상기한 숨은 전제를 깨버릴 것만 같다. 당신의 정치 성향을 아는 것이 곧 당신의 내밀한 고민을 아는 것인데, 어떻게 성향에 자유로이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가? 복지를 우선시하는 자는 경제 발전을 우선시하는 자와 친구가 될 수 있다. 각자의 정치적 성향이 아무리 극단적이더라도 관계를 맺는 데에 결정적인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아마도, 모든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자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나빠서도 아니고 어떤 정치인이 갈라치기를 유도해서도 아니다. 논의의 성격 자체가 그렇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므로, 우리가 친구나 연인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 규정하는 것도 정치적인 것이다.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친구가 될 상대방이 페미니스트가 아님을 증명해 주기를 원한다. 모든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자는 상대방이 나쁜 남자가 아님을 증명해 주기를 원한다. 둘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수정하지 않는 한 함께할 수 없다.

두 논의를 종합해 보자. 우리는 정치담을 불편해하지만 정체성 담론에서 입장의 다름은 관계 맺기를 어렵게 한다. 서로의 입장을 숨기고 잘 지낼 수도 없고 서로의 입장을 밝히는 토론에 적극적일 수도 없다. 그래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나와 같은 입장일 것이라 믿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정신병이라 생각하는 남자는 자신의 친구들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고서는 말한다. “내 주변에는 그런 말 하는 사람 없는데? 인터넷에서만 하는 얘기지.” 그렇지 않다. 라벨을 떼고 마시면 맛있게 느껴지는 싸구려 와인처럼, 서로를 알게 되면 무너질 것만 같은 기이한 관계와 기이한 침묵이 캠퍼스에 가득하다. 나는 오늘도 정치 얘기 안 권하는 대학에 등교한다. 입을 열면 사상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시작된다. 매번 실패하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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