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송 기자(사진부)
김부송 기자(사진부)

영화는 일종의 신화다. 신화소들이 모여 일련의 내러티브를 통해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듯, 감독은 다양한 장면을 엮어 몽타주와 미장센을 통해 그만의 독특한 세계를 보여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프레임을 배치하며 우리 마음속 저편에 깊게 자리한 ‘괴물’의 이미지를 끌어와 관객에게 끊임없이 괴물이 누구인지를 밝혀내도록 재촉한다. 여기서 그쳤다면 여느 영화와 다를 것 없겠지만 영화 〈괴물〉이 유독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런 괴물 신화를 계승하기보다 아예 비틀어 전복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세 개의 시선을 보여준다. 부모의 시선, 호리 선생님의 시선, 미나토와 요리라는 두 아이의 시선. 관객은 똑같은 사건을 두고 다양한 관점에서 조망하며 괴물의 정체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 유력한 후보로 미나토를 지목하다가 호리 선생으로 바뀌고 얼마 못가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이마저도 각자의 사정이 밝혀지면서 결국 괴물이 어디에도 없다는 결론에 치닫고 만다. 그렇다면 정말 괴물은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괴물은 존재한다. 괴물은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규범에 도전하는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다. 처음에 괴물이라고 누명 썼던 인물들 역시 지배적인 사회규범에 어긋나는 존재들이다. 싸움과 분란을 발생시키고, 선생님이 학생을 학대하고, 특이한 성 정체성을 지니는 등 저마다 안정된 사회에 불안과 혼란을 일으킨다. 따라서 마치 우리 사회에서 꼭 제거돼야만 하는 괴물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표면적 존재로서의 괴물’이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 너머를 봐야 한다. 가령 잘못을 알고도 이를 묵인하는 학교 시스템은 등장인물들을 역으로 괴물처럼 보이게 만들어 관객이 괴물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한다. 바로 이런 것들이 ‘이면적 존재로서의 괴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마음속에서 상상한 괴물을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된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우리가 영화 속에서 그토록 찾던 괴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기존에 믿고 있던 괴물의 존재가 뒤바뀌면서 관객들은 어딘가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을 느낀다. 아마도 스스로의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사회에 혼란을 야기하는 존재를 괴물로 규정하며 이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것이 안정된 사회를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일종의 신화를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그 신화를 전복시켜야 할 때다. 반드시 악(惡)을 찾아내야만 직성이 풀리고 마는 성향은 미나토와 요리같이 무고한 아이들을 괴물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괴물〉을 통해 이런 태도의 위험성을 보여줬다. 무언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항상 고민해 보자. ‘누가 잘못했는지’가 아니라 ‘누가 만들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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