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수 산학협력중점교원(공학연구원)
이종수 산학협력중점교원(공학연구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1979년까지 대한민국 평균 경제성장률은 8.5%였다. 이때는 일자리가 넘쳐났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권에 입사하면 과장부터 시작했다. 이런 메리트를 주지 않으면 대졸자들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창업을 시도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가업으로 사업을 물려받지 않는 이상 대졸자의 첫 선택지는 취업이던 시대다.

1983년 13.4%로 경제성장률 고점을 찍은 우리나라는 이후 성장률이 하락한다. 그래도 6%를 넘는 성장률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고학력 취업시장에 서서히 경쟁이 생기던 시기이기도 하다. 회사가 망하거나 해고당하면 마지막으로 선택지는 대부분 ‘장사’였다. 비교적 소자본으로 시작하기에 리스크가 낮았던 탓이다.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에 ‘장사’는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당시 법인을 설립하는 ‘사업가’가 된다는 것은 달랐다. 인생을 걸고 승부를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리스크가 매우 컸던 탓이다. 이런 인식은 자본조달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대부분 자기자본에 의지하거나 친지들에게 돈을 빌리거나 은행에 부동산을 담보로 융자를 받았는데, 실패했을 때 빚쟁이가 되는 구조였다. 사회적으로도 낙인이 찍혀 재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창업=빚더미 위에 앉기’라는 인식은 지금도 꽤나 공고하다.

1990년대 말부터 창업환경은 많이 달라졌다. 창업하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자금조달 방법들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예비창업패키지 △초기창업패키지 △청년창업사관학교 △신용보증기금 △액셀러레이터 △TIPS 프로그램 △벤처캐피탈 △엔젤투자 △신기술사업금융업자 등이 창업자를 기다리는 자금이다. 이런 자금들을 단계별로 모두 만날 수도 있고 몇몇은 건너뛸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벤처 자금과 창업자의 관계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창업의 동업자다. 설사 창업에 실패하더라도 빚쟁이의 굴레를 씌우지 않는다. 실패의 과정에 도덕적 문제가 없고 실력만 있다면 칠전팔기와 혹은 그 이상도 시도할 수 있다.

여기에 엑시트(Exit) 플랜까지 매우 좋아졌다. 엑시트는 창업자에게는 출구 전략이고 투자자들에게는 투자금 회수 전략이다. 엑시트가 활발할수록 창업생태계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과거 우리나라 창업생태계는 상장 기업공개(IPO) 외에는 마땅한 출구 전략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IPO 외에도 인수합병(M&A), 기업 매각, 우회상장, 지분 매각 등 여러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회사의 가치를 높여놓으면 언제든 그 가치를 사려는 사람들이 나온다. 멘토링 했던 학생 중에 창업한 지 2년 만에 회사를 20억 원에 매각한 사례가 있었다. 학생들은 각자 5억 원 정도 벌게 됐다. 20대 초반에 상당한 거금과 함께 자랑할 만한 스펙이 생긴 셈이다. 꼭 IPO에 성공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창업도 경력으로 평가하는 세상이다.

최근 모든 대학이 학생 창업을 장려하는 추세다. 대부분이 교내에 창업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이 창업을 장려하는 것은 모든 학생을 그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뜻이 아니다. 학생 창업도 재학시절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중요한 선택지라는 점이다. 창업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올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찾아갈 수 있으며 10년 이상을 준비할 수도 있다. 학생 창업을 강조하는 것은 창업을 둘러싼 제반 조건이 매우 좋아졌으니, 기회가 찾아왔을 때 망설이지 말라는 뜻이다.

창업을 염두에 두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시야가 달라진다. 다르게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기회가 찾아온다. 리스크는 낮아졌다. 제대로 알고 시작한다면 창업은 취업만큼 안전하다. 사업가를 다양한 직업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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