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서 기자(취재부)
김민서 기자(취재부)

누군가 LnL(Living&Learning)에 관한 기획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냥”이다. 수습기자로 근무를 시작해 기사 소재를 찾는 과제를 받았고, 기삿거리가 될 수 있는 학내 사안을 찾다 보니 LnL이 눈에 띄었고, 마침 사수인 다현 기자도 LnL을 소재로 기사를 구상 중이라길래, 그냥 했다. 생각해보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하니까, 그냥 하는 일이 편했다. 그래서 ‘해보고 싶다’는 가치 판단은 들어갈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취재를 통해 만난 LnL의 Learning은 바로 그 ‘해보고 싶다’의 연속이었다. LnL 멘티들은 오직 해보고 싶다는 이유로 전시를 기획하고, 인터뷰를 진행하고 그 내용을 책으로 엮었으며,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했다. 하필 작년에 입학한 신입생들이 유달리 능동적이고 친화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단 해보자”, LnL 지도 교수들이 지난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했던 말이라고 한다. 멘티가 내민 활동 기획안을 터무니없다며 물리치지 않고 “일단 해보자”라며 이끌어 준 프록터와 멘토, 교수들이 있었기에 작년의 LnL이 가능했다.

LnL을 취재하며 뒤집힌 또 하나의 생각은 함께 생활하는 것에 대한 신념이다. 지난 3년간 기숙사에 살며 정립된 내 신념은 바로 ‘최고의 룸메이트란 방에 들어오지 않는 룸메이트’라는 것이었다. 학기 초 첫 만남에서 온갖 방정을 떨며 친해져도, 종국엔 화장실 수챗구멍에 낀 머리카락 같은 일로 멀어지고 마는 것이 룸메이트 사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LnL에서는 같이 사는 것도 모자라 같이 배워 나가기까지 한단다. 함께 ‘배우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이 두 층위의 일이 만나면 어떤 참극이 벌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인터뷰를 진행하니 이런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게 됐다.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는 만큼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사건들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함께 살면서 서로 미워하지 않을 수 있구나, 미워하지 않으면서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있구나, 내심 부러웠다. 

물론 LnL에 밝은 면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안다. LnL 관련 인터뷰에 응한 사람은 대체로 LnL 생활에 만족한 사람들로 치중돼 있을 것이고, LnL에 아예 참여하지 못한 재학생의 의견은 기사에서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nL에 응원을 보내고 싶은 이유는, 아마도 내가 ‘LnL 세대’를 직접 만나 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살면서 스스로 배우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희망에 차 있는 그들을 보며, 나도 한 번은 터무니없는 기대를 걸어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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