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부성우선주의의 맹점을 짚다

“안녕하세요. 이00입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기본은 성명을 밝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성은 원칙적으로 부(父)의 성을 따라야 하고, 모(母)의 성을 따르는 것은 예외로 간주한다. 즉, 우리나라는 부성우선주의를 따른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온 부성우선주의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엄마 성 쓰고 싶은 사람 여기 모여!

▲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아버지 정민구 씨(44)와 딸 김정원 양.
▲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아버지 정민구 씨(44)와 딸 김정원 양.

여성의 날이던 지난 8일(금), 서울가정법원 앞에서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는 자신의 성을 모의 성으로 바꾸고 싶은 사람들과 모의 성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엄마 성을 물려줄 수 있는 권리 모임’에서 활동 중인 송세이 활동가는 “아이를 낳으면 모의 성을 물려주고 싶은 사람으로서 부성우선주의 폐지라는 대의에 공감해 참석했다”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김정원 양(4)도 함께해 고사리손으로 ‘엄마 성 따라도 하늘 안 무너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었다 내리기를 반복하며 눈길을 끌었다. 출생 당시에는 부의 성을 따라 ‘정정원’이었으나 성·본 변경 청구를 통해 ‘김정원’이 된 김 양은 성평등을 이유로 성·본 변경 청구가 허가된 첫 사례자다.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는 모의 성을 쓰고 싶은 성인들이 자신의 성·본 변경 청구를 준비하는 프로젝트다. 청구 당사자이자 프로젝트 기획자인 김준영 작가는 “모의 성을 쓰는 아이들이 자신이 소수라고 느끼지 않고, 부의 성만큼이나 모의 성을 쓰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성·본 변경 청구를 제기하면서 부성우선주의를 재고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버지와의 정서적 단절을 이유로 모의 성을 따라 황 씨가 되기를 희망하는 조상은 씨(26)는 “이번 성·본 변경 청구를 위해 소명 자료만 11가지를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라며 “국가가 부성우선주의보다 개인의 복리를 우선했으면 좋겠고, 가벼운 의사 표명 정도로도 성·본 변경이 가능한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엄마 성 쓰기 참 어렵다

한국에서 모의 성·본을 쓰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물론 모의 성·본을 쓰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2005년 호주제 폐지 이후 민법이 개정되며 현행법상으로 모의 성·본을 쓸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됐다. 그러나 국내에서 모의 성·본을 쓰는 사람은 여전히 소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혼인 신고 시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협의해 신청한 건수는 2017년 198건, 2018년 254건, 2019년 379건으로, 같은 기간 혼인 신고 건수가 약 25만 건 내외였던 것을 고려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처럼 모의 성을 쓰는 사람이 적은 현실은 부의 성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제도에 기인한다. 태어날 때부터 모의 성을 따르려면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따라 혼인신고 때 부모가 협의해야 한다. 이 경우 가족관계등록법 제71조에 따라 별도의 협의서까지 작성해야 한다. 윤지영 교수(국립창원대 철학과)는 “현 제도는 모의 성을 따르는 일을 별도의 노고가 필요한 예외 사항이자 특이한 양태처럼 설정해 많은 사람이 부의 성을 당연하게 이어받도록 유도한다”라고 지적했다. 법률사무소 의림 원의림 변호사 또한 “태어난 아이가 부의 성을 원칙으로 따라야 하는 제도는 전적으로 가부장적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혼인신고 후 자녀가 모의 성을 따르려면 부, 모 또는 자(子)가 가정법원이나 지방법원에 성·본 변경을 청구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원의림 변호사는 “성인이 자신의 복리를 이유로 모의 성·본으로의 변경을 허가받는 것은 쉽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민법 제781조 제6항은 자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다고 명시하지만, 그 쓰임을 가족관계의 변동이 있는 미성년 자녀의 성·본 변경을 어머니가 청구할 때로 한정하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에 김준영 작가의 어머니는 이 조항을 근거로 김 씨에 앞서 성·본 변경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바 있다. 김 작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자의 복리를 판단하기 위해 다양한 요건이 적용될 수 있지만, 어머니는 구체적인 이유 없이 기각됐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제도적 현실은 성차별적인 가부장제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성을 결정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윤진수 명예교수(법학과)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부성우선주의를 규정한 민법 제781조 제1항이 우리나라가 비준한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규정된 ‘여성의 자녀 성을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정부에 개정이나 폐지를 권고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송효진 연구위원은 “외국에서는 성을 인격권과 행복추구권 실현의 관점에서 성명권이라는 권리로서 보장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민법 제781조 제1항: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

 

엄마 성을 자유롭게 쓸 날을 기다리며

모의 성을 따르는 절차가 복잡하고 다수가 부의 성을 따르는 현실에서, 모의 성을 쓰는 소수의 사람은 주류에 속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을 마주하기도 한다. 송효진 연구위원은 “현재는 주로 아버지가 외국인인 다문화가정이나 아버지를 알 수 없는 비혼 가정 아이들이 모의 성을 따른다”라며 “이른바 정상 가족이면 부의 성을 따르는 것이 원칙처럼 여겨지는 상황이기에 모의 성을 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지적했다.

모의 성을 따르는 선택이 당연한 권리로 여겨질 날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2021년 3월에 민법 제781조 제1항에 대해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 △인격권 △자기결정권 △부모가 자녀의 성명을 지을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 등으로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됐다. 그러나 2022년 11월 법무부는 해당 조항이 가족의 동일성과 결합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고, 자녀의 성·본을 결정하는 시기가 혼인신고 때가 아니라면 출생 신고 시기가 늦어질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해당 심판을 기각해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에 대해 원의림 변호사는 “실제로 형제끼리 성이 다른 가족이 있지만, 그런 가족은 결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윤지영 교수도 “다양한 형태로 가능한 가족 간 연대와 유대, 결속의 형성은 아예 부인하는 것과 같다”라고 반박했다. 또한 윤진수 교수는 “법무부는 부부가 자녀의 성에 관해 합의하지 못할 경우를 우려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추첨을 통해 결정하거나 법원이 결정하고 부모 성을 모두 쓸 때는 알파벳 순으로 협의한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오랜 문화와 전통이 차별적인 제도를 유지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에 뜻을 모은다. 윤진수 교수는 “2005년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 당시 전통과 문화는 차별적인 법 규정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히 판시됐다”라고 말했다. 윤지영 교수도 “가정 내에서부터 모두가 동등한 위상을 인정받는 성평등 문화와 다양한 가족 구성권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부성우선주의 법 조항은 개정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준영 작가는 기자회견에서 처음으로 바지를 입은 여성 아멜리아 블루머의 사례를 들며 “여성이 바지를 입는 모습이 더없이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라며 “어머니의 성을 쓰는 것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 성이 빛날 미래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박선영 사진부장

leena120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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