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과일 가격 상승의 원인과 영향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등이 켜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3.1% 상승했다. 최근 물가 상승을 견인하고 있는 것은 과일을 포함한 신선식품 가격의 폭등이다. 지난달 기준 신선과실과 신선채소의 물가 상승률은 각각 41.2%, 12.3%를 기록했다. 특히 사과의 가격은 전년 대비 71% 증가하고, 대체재 관계에 있는 배의 가격은 61.1%, 딸기의 가격은 23.3% 상승하는 등 과일 가격의 상승이 눈에 띈다. 이처럼 폭발적으로 높아진 식료품 가격 앞에 저소득층의 식탁 사정은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사과 하나에 5,000원이라고요?

지난 12일(화), 기자는 관악구의 한 마트를 찾았다. 마트는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북적였지만, 과일 코너 앞은 한산했다. 기자가 과일을 구매하러 가보니 사과는 하나에 4,980원, 배는 하나에 7,500원, 귤은 한 팩에 16,800원에 판매되고 있어 섣불리 손이 가지 않았다. 다른 마트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기숙사에 거주 중인 길현영 씨(인류학과·23)는 “원래는 아침으로 사과를 먹었지만 최근에는 너무 비싸서 먹지 못하고 있다”라며 “대신 요즘은 파인애플과 키위 조각 등이 담긴 작은 컵 과일을 먹는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와 같은 과일 가격 상승은 지난해 기상이변으로 과일 생산량이 급감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최철 교수(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는 “지난해 상반기 냉해와 폭우가 심각했고, 병해충 피해까지 이어지며 작황이 부진했다”라고 설명했다. 김한호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열매가 맺히던 시기 기상이 불안정해 사과와 배의 생산량이 평년 대비 약 30%에 그쳤다”라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이어 “한국의 과일 생산자는 대부분 명절 특수를 노리고 모양이 예쁜 소수 품종만 생산하기 때문에 사과와 배 등의 품종 다양성이 부족해, 한 번의 타격으로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노동력 감소에 따라 농지 면적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 과일 산업의 당면 문제가 과일 가격 상승에 반영됐다는 분석도 있다. 김한호 교수는 “과일은 기계로 수확하기 어려워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데, 노동력이 고령화되며 경지 면적이 줄어드는 추세다”라고 말했다. 김상봉 교수(한성대 경제학과) 또한 “코로나19 이후 외국 인력이 부족해져 노동력이 감소한 것도 생산량 감소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물량을 관리하기 어려운 신선식품의 특성상 정부가 쉽사리 물가 안정을 위한 대처에 나설 수 없었던 것도 급격한 과일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쌀과 같은 곡물은 정부가 공공 비축 물량을 관리하지만, 과일은 오랜 기간 비축하기 어렵다. 최철 교수는 “신선식품의 특성상 미리 많은 물량을 비축하고 공급이 위축되면 풀어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껑충 뛴 식료품 가격, 저소득층은 더 힘들다

다른 소득계층에 비해 저소득층에게 생활물가 상승은 더욱 뼈아프다. 저소득층일수록 식품비가 실질소득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김정식 명예교수(연세대 경제학부)는 “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필품 구매를 위해 소득의 많은 비중을 지출해야 하니 저소득층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상효 연구위원은 “코로나19의 여파로 고물가가 지속되던 상황에서도 고소득층은 식품비가 크게 변하지 않았으나, 저소득층은 식품비를 줄였고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자 즉각적으로 식품비 지출을 늘리는 양상을 보였다”라며 실질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소득계층 간 식품비 지출 양상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부의 취약계층 농식품 지원체계 개선방안」에서 발췌.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정부의 취약계층 농식품 지원체계 개선방안」에서 발췌.

결국 생활물가의 상승은 저소득층의 영양 불균형과 직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정부의 취약계층 농식품 지원체계 개선방안」에 따르면 소득이 적은 가구여도 곡류는 일정 수준 이상을 소비하지만, 과일류는 전체 가구 월평균 지출액의 78.6%만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상효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은 식품비 지출이 줄면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건강하지 않은 제품을 소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저소득층의 영양 불균형을 우려했다. 김한호 교수 역시 “생활 물가가 상승하면 저소득층은 저가의 곡물 위주로 섭취하게 돼 식단 불균형이 초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저소득층 부담 덜어줄 현물 지원 필요해

정부는 과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여러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6일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다음 달까지 농·축·수산물 할인지원에 600억 원을 투입하고, 오렌지와 바나나 등의 주요 과일을 직수입해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한호 교수는 “단기적으로 과일 할인 판매가 가능하도록 정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대책은 단기적인 효과를 발휘할 뿐, 과일 가격 파동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상효 연구위원은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농축산물 할인 지원은 소비자 구입가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근본적인 농수산물 가격 안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라고 예측했다. 최철 교수는 “우리 농가에서 재배되던 과일이 수입 과일로 얼마나 대체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라며 “과일은 품목 자체에 수급 불안정 요인이 내재해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꾸준히 발생할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농식품 바우처 제도와 같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현물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김한호 교수는 “현재 정부 대응과 같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일괄적인 할인 정책도 필요하지만, 생활 물가 상승에 더 큰 타격을 받는 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별도의 할인 쿠폰을 지급하는 등의 정책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낮은 소득계층을 선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라며 “보조금을 지급해 저소득층의 소득감소분을 보조할 필요가 있다”라고 짚었다. 농식품바우처 제도는 저소득층의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 중위소득 50% 이하의 가구에 채소, 과일, 육류 등의 식품을 구매할 수 있는 바우처 카드를 지급하는 제도로, 현재 전국 24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김상효 연구위원은 “취약계층 농식품 바우처 사업과 같은 제도가 확대 시행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재난의 피해는 평등하지 않다. 물가 상승은 저소득층에게는 더 가혹하게 다가온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장기화될 과일 가격 파동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때다.

 

삽화‧인포그래픽: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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