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삽화: 김예라 기자 siksik0928@snu.ac.kr

최근 학술계에서는 MDPI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MDPI는 약 400종 이상의 과학 분야 저널을 간행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오픈액세스 기반 학술 출판사다. 이들이 논란에 휩싸인 것은 엄격한 동료 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은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고, 잦은 특별호 발행을 통해 지나치게 많은 논문을 찍어낸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일부 대학이 MDPI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연구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등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자, 지난 21일(목) MDPI의 CEO가 서울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 참석해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MDPI 논란과 관련해 현재 하이브레인넷 같은 국내 연구자 커뮤니티에는 좋은 학술지란 무엇인지, 그리고 연구자의 실적을 평가할 때 학술지가 어느 정도로 고려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MDPI를 향해 쏟아지는 세간의 비판이 다소 부당하다는 의견도 종종 눈에 띈다. MDPI에서 발행하는 저널이 여타 저널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며, 논문 리뷰 프로세스가 부실하게 이뤄진다는 지적은 MDPI만 아니라 국내에서 인정받는 상당수의 학술지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일각에서는 연구자의 개별 성과를 평가함에 있어 학술지 피인용지수 등 학술지 자체의 정량적 지표를 아예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목소리들은 좋은 학술지의 기준은 무엇인가를 넘어, 결국 지금의 연구자들에게 학술지는 어떤 의미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닿아 있다.

마침 편집을 맡아 학술지의 발간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던 나 역시 관련 기사를 접하며, 새삼 이 학술지라는 기이한 매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홈페이지에서 ‘한국어와 문학’ 분과의 학술지만 검색해 봐도 총 150종에 달하는 저널의 목록이 나타난다. 그러나 전공자인 나조차도 이름만 들어봤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는 학술지가 대다수다. 이는 논문 데이터베이스가 활성화된 지금, 동시대의 연구자라면 대부분 당연하게 느낄 만한 현상이다. 관심 주제나 관심 연구자의 논문을 검색해 찾아 읽는 것이 일상화된 이후, 학술지 단위로 논문을 읽는다는 것은 확실히 비효율적인 일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문을 꽉꽉 채운 뚱뚱한 학술지를 배포할 때마다, 이것을 한 권의 ‘책’으로 읽는 사람은 나처럼 편집자 역할을 하는 사람들뿐일 거라고, 결국 학술지를 책의 형태로 제작하는 관행은 언젠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 거라 생각하고는 한다.

MDPI 논란 또한 결국 학술지가 논문이 잠시 스쳐 가는 ‘플랫폼’으로 변화한 시대를 배경으로 불거진 현상이다. 연구자 개인을 위한 맞춤형 논문 추천 시스템이 날로 발전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앞으로 나올 학술지들은 점차 책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책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광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떠도는 논문들의 세계는 이미 우리 앞에 도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의 효율성을 인정하면서도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결국 인기 있는 주제나 이미 인정받은 연구(자)만이 더 많이 읽히는 시스템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학술지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났을 때만 발견할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이름들과 낯설고도 새로운 연구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미래의 우리 학술 생태계에서도 이처럼 책의 형식을 통해 가능해지는 우연한 만남이 구현될 수 있을까 상상해 본다.

 

허민석 간사

rabbi199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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