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진우 기자(뉴미디어부)
노진우 기자(뉴미디어부)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고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이제 너 앞에서는 함부로 카톡도 못하겠다”라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다. 정치학도 앞에서 한국 정치의 지론을 펼치기 괜히 숙연해지듯, 국문학도 앞에서는 자연히 카톡 말투까지 신경 쓰게 된 것이리라.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혹자는 국어국문학과를 국어에 통달해 사소한 맞춤법으로 왈가왈부하는 21세기 선비 집단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맞춤법이란 국어국문학도에게도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맞춤법은 대체로 난도가 높지만, 한국어를 학습하는 외국인들은 그중에서도 경어체와 띄어쓰기가 가장 어렵다고 토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밥’은 청자와 화자의 관계에 따라 ‘식사’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진지’가 되기도 한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띄어쓰기다. 신문으로서는 최초로 띄어쓰기를 실천한 「독립신문」은 “구절을 띄어 쓰는 것은 알아보기 쉽도록 함이다”라고 창간호에서 밝혔다. 그러나 현대에 띄어쓰기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더 혼란스럽게 한다. 예컨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라는 속담에서 ‘바늘 도둑’은 띄어 쓰는 것이 맞지만, ‘소도둑’은 붙여 쓴다. 이는 두 단어의 사전 등재 여부에 따른 것이다. 소도둑은 하나의 단어지만, 바늘 도둑은 그렇지 않다. 

단순하지 않으면서도 강제적인 어문규정은 한국어 사용자의 피로도를 높인다. 그럼에도 한국 어문 규정은 획일성을 강제하고 있다. 과거 1999년 표준국어대사전이 출간된 뒤 많은 민간 사전들이 자취를 감췄다. 표준이라는 명목 하에 언어가 생동할 가능성이 지워진 결과다. 우리는 자유를 내려놓고 표준을 취했다. 그러나 제정된 지 30여 년이 지난 그 ‘표준’은 언중들의 언어생활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국립국어원에서는 2016년 10월 5일 ‘우리말샘’을 개통했다. 우리말샘은 개방형 국어사전으로 ‘함께 만들고 모두 누리는 우리말 사전’이다. 국립국어원은 띄어쓰기의 경우 우리말샘 사전을 참고하라고 권하고 있다. 갑갑한 규정 속 숨구멍을 만들어놓은 셈이다. 그러나 이런 노력만으로는 한국어 사용자의 피로를 해소하기 어렵다. 우리는 단순하고 친근한 규범이 필요하다. 이를 만족시킬 수 없다면, 국립국어원은 표준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표준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 학습자에게 하나의 정립된 기준을 제시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혼란스럽고 강제적인 규범으로 ‘문법 나치’와 같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고, 지역 방언까지 소멸해가는 시점에서 지나친 표준은 오히려 폭력이다. 폭력을 막는 방법은, 표준임을 포기하거나 피로도가 낮은 규범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현재 그 두 가지 중 무엇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 들여온 ‘표준’에 대해 이제는 다시금 고민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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