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열 교수(사회학과)
이재열 교수(사회학과)

1980년대까지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을 넘지 못했지만, 희망이 넘쳤다. 의식주의 심각한 결핍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밀물이 차오르면 개펄에 얹혀있던 배들이 떠오르는 것처럼, 경제성장은 가장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이들의 생활도 나아지게 했다. 그런데 현재 국민소득은 3만 불을 훌쩍 넘었고,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 평가받지만, 국민의 생활 만족도는 최악이다.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 최저 수준의 출생률, 세계 52위권으로 하락한 국민행복도 등은 경제적 풍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어두운 현실을 잘 드러낸다. 

왜 이같은 ‘풍요의 역설’이 생겼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필자는 과거 물질재(material good) 공급의 확대로 풀어갈 수 있었던 의식주의 결핍과 달리,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격렬해진 지위재(positional good) 경쟁에서 그 주된 이유를 찾고자 한다. 지위재의 효용은 공급의 확대로 늘어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가 원하는 지위를 동시에 원하느냐에 따라 그 효용이 결정된다. 따라서 지위재 경쟁은 울타리로 둘러친 닫힌 지위를 차지하기 위한 제로섬 경쟁의 성격이 강하다.

대표적인 지위재는 대학 졸업장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소위 ‘SKY대학’의 졸업장을 둘러싼 입시 경쟁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다. 전국에 빈집이 남아돌지만, 강남의 아파트값은 불패 신화를 이어간다. 모두가 원하는 지위재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것은 노동시장이다. 자격증을 요하는 전문 직종이나 공공부문 정규직, 그리고 대기업 입사를 둘러싼 지위 경쟁은 어느 때보다도 심해졌다. 과거 대졸자들은 이런 직업을 쉽게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 진학률이 급증한 후, 제한된 좋은 직업을 둘러싼 경쟁은 훨씬 치열해졌다. 다른 한편 중소기업의 생산직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는데, 아예 취업을 포기한 대졸 니트(NEET)족은 적게는 50만, 많게는 100만을 헤아린다.

30년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차이는 심하지 않았다. 대학 진학률이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졸자들은 큰 어려움 없이 전문직, 공공부문,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8년의 외환위기를 계기로 비교적 평등한 직업분포에 단절이 생기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도 확대됐다. 세계화 물결 속 닫힌 경제가 급속히 개방된 후, 대기업은 더 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 투자를 대폭 확대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관계는 대기업의 일방적인 부담 전가로 악화됐다. 저수익, 저임금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은 좋은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혁신역량도 소진됐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도 극대화됐다. 노조로 보호받는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이 100이라면, 조직화 되지 않은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40에 불과하다. 악순환이다.

문제는 이런 격차사회가 한국을 살기 어려운 곳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마크 맨슨은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IMF 총재를 지낸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집단자살사회’라고 불렀다. 받아들이기 불편하지만, 초저출생과 높은 자살률을 감안하면 부인하기 힘든 지적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문제는 고질적이고 구조적이고 장기적 처방을 요하는데, 정치는 권력을 둘러싼 승자독식 게임에 몰두해 있고, 집권하면 임기 내 생색낼 수 있는 단기 처방만 남발한다는 점이다. 기득권을 가진 민주노총은 비정규직까지 챙기는 연대 임금 보다는 기업별 노조의 지대공유형 임금인상에만 몰두한다. OECD에서 인구 대비 의사 수 최소지만,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료계의 거센 저항이 넘쳐난다. 지위재 경쟁의 승자들이 보이는 비타협적인 기득권 수호에 대해 마이클 샌델은 ‘공정하다는 착각’이라고 일갈했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이 약해진 지금, 함께 사는 공동체를 세워갈 ‘공화’의 비전이 절실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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